'부럽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던데, 머리카락이 희끗한 예순 중반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것도 세계인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안나푸르나(해발 8091m)를 걷고 왔다 하고, 게다가 재미나고 알찬 정보까지 담은 책을 내놨으니 읽는 내내 그랬다.
책 <가자, 안나푸르나>(세종출판사 간) 이야기다. 이도정 오지여행가, 강재규 인제대 교수(법학), 조동희 주부, 문종대 동의대 교수(신문방송학), 정흥식 한의사, 강종구 한국마사회 부경유캔센터장이 2023년 12월 22일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9박 11일간 안나푸르나 걷기(트레킹)를 다녀오고서 6인 6색의 시선으로 쓴 글과 사진을 담아 책으로 펴냈다.
다섯은 진주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이고 주부는 일행 중 한 사람의 배우자다. 고교 동창들이 몇 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 여정으로, 처음에는 몇 명 더 있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지면서 최종 여섯이 의기투합해 누구나 함부로 감행할 수 없는 멀고 높은 그곳을 다녀왔다.
네팔 북중부에 있는 안나푸르나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이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이들은 등반 보다 트레킹을 즐겼고, 고산병으로 힘들었지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손에 잡힐 듯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을 보면서 버텨냈다.
이들은 일반적인 히말라야 트레킹과 달리, 소수민족 구릉족이 생활하는 마을 향자곳(해발 1400m)을 방문해 일정을 보내기도 했다. 명상걷기와 병원 방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 이야기를 마치 안나푸르나에 같이 있는 것처럼 들려주고 있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낀 네팔과 히말라야 그리고 안나푸르나가 실시간 영상처럼 전해진다.
'나마스테'와 '비스따리'... 문재인 "겁낼 것 없다"
앞서 몇 차례 네팔을 다녀오기도 했던 이도정 '하늘동그라미' 고문은 "적당한 코스가 정해지고 보통 열흘 내외로 산길을 걷고 난 후에는 가급적 관광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마을을 찾아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현지인이 된 듯 며칠을 머문다"라고 했다. 네팔 여행에서 "굳이 필요한 게 있다면 열린 마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사말 '나마스테'와 '비스따리(천천히)'를 언급한 그는 "나마스테가 상대에 대한 공경이라면 비스따리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전자가 밖을 향한 예의라면 후자는 안을 향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네팔 음식 '달밧'과 술을 소개한 그는 "멀리 노을에 물드는 설산이 바라 보이는 농가의 툇마루에서 원주민들과 함께한 한나절의 유쾌한 술자리는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라고 전했다. 또 그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구경하는 재미도 걷는 것 못지 않게 쏠쏠하고 눈이 호강한다"라고, 가이드와 포터에 대해서는 "평등한 도반(길동무)으로 대우함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다녀온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
자랑'하기도 했던 강재규 교수는 "출발할 때 내복을 껴입고 두꺼운 바지를 입은 채 트레킹을 시작했다. 위에도 몇 겹의 옷을 껴입는 바람에 20℃ 내외의 네팔 기후에 한증막 속의 트레킹이 되고 말았다"라며 "실제로는 내복도 필요없고 얇은 등산바지 차림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라고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들춰내기도 했던 강 교수는 "더운 물 샤워를 하는데 고도에 따라 비용이 올라갔다"라며 "닦기만 하고 더운 물 샤워를 하지 않았으며 수염은 그대로 길렀다. 그래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회고했다.
강 교수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그게 삶의 이치이고 자연의 섭리이니. 일행 중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았다"라며 "우리는 비스따리(천천히)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결국 해냈다"라고 했다.
유일한 여성으로 참여했던 조동희씨는 "고산병에는 특효약이 없고 하산만이 답이라고 했지만, 죽을 만큼의 고통은 아닌 듯해서 일단 참아 보기로 했다"라며 "이틀을 괴롭혔던 고산증 두통은 아래로 내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라고 했다.
안나푸르나 걷기가 "오래된 미래로의 여행"이었다고 한 문종대 교수는 "시간여행은 걷는 것이 제일 좋다. 걸으면 짧은 여행도 긴 여행이 된다. 한발 한발 내딛는 그 순간이 모두 나의 시간이다. 눈을 돌리면 풍경이 달라진다. 지나온 풍경을 되돌아 보아도 풍경이 다르다. 다르면 느낌이 달라진다. 그만큼 감성도 풍부해진다"라며 '비스따리 걷기'를 강조했다.
"어쩌다 떠난 안나푸르나 걷기"를 하고 왔다고 한 정흥식 한의사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즐겁고 재밌고 유익하기까지 했다. 진료실 입구에 네팔에서 가져온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보이는 멋진 풍경화를 걸어둬서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라고 뿌듯해 했다.
강종구 센터장은 "안나푸르나 트레킹, 10년 꿈의 도전"이었다고 하면서 "오금 저리는 지누단나 출렁다리"라든지, "뱀부(2335m)에서 데우랄리(3200m)까지 명상 걷기" 등에 대해 정리해 놨다. 또한 '하산의 미련'에 대한 철학도 다음과 같이 들려줬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안나푸르나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을 뇌리와 마음에 새기고서 하산 준비를 위해 '롯지'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서 시선은 자꾸만 자꾸만 안나푸르나 영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의지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인간은 이를 미련이라 이름할 것이다."
책에는 히말라야 걷기를 할 때 참고해야 할 일반적인 사항들도 정리돼 있다. 가령 비자나 가방 짐 꾸리기, 환전, 롯지 시설 이용방법, 식수 이용 안내 등에 대해 설명해놨다. '고산증 예방' 부분에선 "가능한 천천히 움직이며 무리함을 삼가고 따뜻한 물이나 차를 자주 마시며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야 한다"고 귀띔해준다.
앞서 각기 다른 구간으로 네 차례 히말라야를 경험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추천글에서 "트레킹을 좋아하거나 꿈꾼다면 단연 히말라야다. 마치 순간 이동처럼 원시 자연과 수십 년 전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라며 "겁낼 것 없다. 60대 초중반의 보통 생활인들인 이 책의 저자들이 해냈듯이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체력이라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해발 4130m)에 오를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