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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행담도 휴게소. 행담도 하면 주로 떠올리는 단어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휴게소가 들어서기 직전인 2000년까지 이 섬에 사람이 살았다. 우리 역사도 담겨 있다. 개발에 밀려 끊어진 행담도 사람들이 역사와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당진시에서 최근 펴낸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를 주로 참고하고, 추가 취재한 내용을 보탰다.[편집자말]

어량이 33이요. 주로 청어, 갈치, 망어, 상어, 조기, 가물치, 준치, 광어가 난다. - '세종실록지리지 홍주목 편', 아산만 일대서 잡히는 어종

행담도는 아담하고 조용한 섬이며 굴, 바지락, 숭어, 낙지, 새우,망둥어 등의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 - 1977년 생약학회지, '행담도의 식물자원조사', 동덕여대 도상학-경희대 안덕균 교수

 마을 앞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행담도 주민들. 아이들까지 나서 거들고 있다. 멀리 보이는 육지가 복운리다. 1980년 대 추정
마을 앞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행담도 주민들. 아이들까지 나서 거들고 있다. 멀리 보이는 육지가 복운리다. 1980년 대 추정 ⓒ 당진시

행담도(행담섬)가 속한 아산만에는 사복천, 안성천, 곡교천의 민물과 바닷물이 접해 있어 안 나는 게 없을 만큼 수산물이 매우 풍족했다. 1960, 1970년대에는 강화도 어민들이 이 지역까지 원정어업을 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황금어장이었다.

행담도 어민들도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1년 열두 달 바다에 나갔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주로 숭어와 준치, 꽃게를 잡았다. 가을부터는 낙지와 굴, 바지락, 박하지(돌게)를 잡았다.

숭어는 정월대보름이 지날 때쯤부터 7월까지 잡았다. 대보름이 지나면 숭어가 떼 지어 앞바다로 올라왔다. 물이 빠졌을 때 코 그물을 미리 펼쳐놓는다. 물이 들어올 때 숭어 떼가 함께 몰려오면 이때 삿대로 물을 몰아친다. 놀란 숭어 떼가 황급히 달아나다가 코 그물에 걸리면 그물을 걷는다. 숭어잡이에 코 그물을 쓰지만 삿대로 물을 쳐 잡는다고 해 숭어잡이에 사용하는 그물을 '치기 그물'이라고 부른다.

 행담도 한 주민이 어선에서 행담도 앞바다를 보고 있다. 이 배는 주로 준치, 숭어, 꽃게잡이를 위해 사용했다.
행담도 한 주민이 어선에서 행담도 앞바다를 보고 있다. 이 배는 주로 준치, 숭어, 꽃게잡이를 위해 사용했다. ⓒ 당진시(한정만)

숭어 잡이는 초가을까지 이어진다. 여름철에는 줄낚시를 이용해 잡았는데 1∼2시간 있다 건지면 숭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아... 정말 많았어요. 여름철에도 숭어 떼가 등이 보일 만큼 많았어요." - 한정만

준치잡이는 3, 4월부터 7, 8월까지가 철이었다. 매년 보리가 팰 때가 준치잡이의 전성기였다. 주로 물이 빠졌을 때 지메바위 앞에 그물을 친 후 그물이 쓸려가지 않게 말뚝을 박아 놓는다. 물이 빠질 때 그물에 걸린 준치를 따온다.

"정말 많았어요. 한번 그물을 치면 600~700마리를 한꺼번에 잡았죠. 준치 한 마리 길이가 수건 한 장 길이만 해요." - 이은주

준치는 1930년 대에도 많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심훈의 수필 <칠월의 바다>를 보면 행담도에서 만난 노파가 '아들은 어디 갔냐'는 질문에 '중선(중간 크기 배)으로 준치 잡으로 갔슈" 하고 답한다.

노파는 또 심훈에게 손바닥 만한 꽃게를 먹으라며 권한다. 행담도 사람들에게 꽃게잡이는 이른 봄인 2월부터 4월 말까지였다. 이때가 꽃게가 영글어 가장 상품 가치가 높다. 이른 봄 행담도에서 좀 떨어진 경기도 풍도와 이파도 앞(국화도 끝부분)에 있는 도리골까지 닻배를 타고 나갔다. 도리골에서는 인천도 지척이다.

"그때 봄 꽃게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어요. 꽃게를 잡다가 '우린 비행기도 못 타 놨는데 여그 꽃게는 뱅기(비행기)타고 일본도 가네' 하고 했죠." - 한정만

꽃게가 행담도 앞바다까지 올라올 때쯤이면 6월이다. 이때 암꽃게는 알을 풀로 모래톱을 찾는다. 하지만 이때는 암꽃게가 그물에 걸리면 따서 놔준다. 6월부터 금어기이기도 하지만 알을 푼 암꽃게는 먹을 게 없어 사 가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없었다. 수꽃게만 잡았다. 행담도 앞에서는 여름이 지날 때쯤 꽃게를 잡았다.

낙지는 봄철엔 숫낙지만 잡았다. 암낙지는 봄철 알을 풀어 먹지 않았다.

"봄에 갯벌 속 깊은 곳에 알을 까는데 꼭 투명한 알약 같아요. 투명 비닐 막처럼 보이는 곳에 낙지 새끼들이 들어있어요." - 김진성

 행담도 한 주민이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1990년대 추정
행담도 한 주민이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1990년대 추정 ⓒ 당진시

낙지잡이는 8, 9월에서 11월까지가 제철이다. 그중 최고는 가을. 낙지는 여름에는 바위 밑으로, 겨울에는 땅을 파고 갯벌 아래에서 산다. 행담도 주민들은 주로 봄부터 여름까지 낙지·소라를 잡았다.

여성들과 아이들은 밤낮 해변으로 나가 굴과 바지락, 낙지, 소라, 박하지(돌게)를 잡았다. 굴은 가을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채취 시기다. 굴 채취가 끝나면 5월부터 7, 8월까지 바지락 철이다. 행담도 주변 바다는 굴, 바지락, 낙지, 소라 천지였다. 많다는 게 소문이 나 인근 음성포구나 타지역에서도 행담도로 굴과 바지락을 채취하러 올 정도였다.

"행담섬 앞으로 다가 가면 바지락이 엄청 많았어유. 그래서 저 양반하고 둘이 바지락 캐면 엄청 캤지." - 심봉순 증언, 음성포구 거주 주민

"인근으로 바지락을 캐러 가면 하루에 100kg, 부부가 가면 암만 못 캐도 한 200kg씩은 캤지. 그렇게 많았어." - 김승환 증언, 깔판 포구 거주

박하지는 횃불을 들고 허리 깊이 물살을 헤치고 나가면 바닷속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많았다.

"목장갑을 두 켤레씩 끼고 주워 담을 정도로 많았어요. 그 이튿날 육지로 팔러 나가서 쌀하고 바꿔왔어요. 주로 모 심는 집이나 나락 베는 집에 반찬 하라고 갖다주고 쌀이나 곡식으로 바꿨죠." - 한정만

 행담도 동녁ㅋ끝 홍화벌 부근 굴 양식장
행담도 동녁ㅋ끝 홍화벌 부근 굴 양식장 ⓒ 당진시(표선동 제공)

행담도는 천혜의 굴밭이었다. 특히 동녘 끝 부근 바위가 많은 곳에 많았다. 동녘 끝 부근은 1975년 한 마을 주민이 굴 양식 허가를 내 개인 양식장이 됐다. 몇 년 뒤 주민들도 가산녀 바위가 있는 구역에 돌을 실어다 깔아 공동 굴 양식장을 만들었다.

"굴 사시오, 굴 사시오!"

굴과 바지락은 주민들이 원하는 만큼 생산됐다. 굴, 바지락, 소라, 낙지는 주민들에게 현금과 같았다.

주민들은 밤새 굴을 까 2, 3일 따 모은 뒤에 배를 타고 광주리에 담은 굴을 머리에 이고 동네로 행상을 했다. 남성들은 할 수 있는 건 짐을 들고 뒤를 따라다니는 정도였고 대부분 굴 행상은 여성들 몫이었다. 주로 신평 맷돌포, 신평장, 합덕장이 주된 판로였다.

장터에서 다 팔지 못할 때도 머리에 이고 이집 저집 방문 판매를 해야 했다. 굴을 쌀이나 보리 등 곡식과 맞바꿨다. 굴 한 사발이면 쌀 3kg이나 5kg과 맞바꿀 수 있었다. 간혹 한진까지 굴을 팔러 가기도 했다. 굴은 늦가을부터 김장철에 특히 잘 팔렸다.

 삽교천 방조제가 생기면서 유람선과 도선이 행담도를 오가자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1980년 대 추정
삽교천 방조제가 생기면서 유람선과 도선이 행담도를 오가자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1980년 대 추정 ⓒ 당진시

행담도 남성들은 늦가을 겨울이 되면 멀리 신안·영광까지 새우를, 연평도 근해로는 꽃게잡이를 하러 나갔다. 전라도 지역의 경우 10월에 나가면 1~2월 행담도 앞 꽃게잡이 철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1979년 삽교천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됐다. 삽교천 방조제는 행담도 주민들에게 일대 격변을 몰고 왔다. 긍정적인 면을 보면 삽교천 관광지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부대 수입이 생겼다. 반면 바닷물 흐름이 방조제에 막히면서 갯벌을 중심으로 황금어장이 물고기 없는 어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길이 막혔잖아. 숭어도, 준치도, 꽃게도 알 깔 데가 사라진 거지." - 임은순, 이은주, 한정만

 삽교호방조제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로 흘러드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둑으로 1979년 10월 완공됐다. 길이 3,360m, 최대너비 168m, 높이 12∼18m. 연인원 33만 6000명이 동원됐다.
삽교호방조제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로 흘러드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둑으로 1979년 10월 완공됐다. 길이 3,360m, 최대너비 168m, 높이 12∼18m. 연인원 33만 6000명이 동원됐다. ⓒ 당진시

바닷물고기의 70%가 갯벌에서 알을 낳고 치어 시기를 보낸다. 큰 물고기는 치어를 잡아먹거나 알을 풀기 위해 부근으로 모여든다.

"하나도 없이 사라졌지. 그 방조제 생기고 나서. 아산만 하고 삽교천 하고 그거 막은 뒤로다가 (물고기가) 싹 없어졌어." - 임은순, 이은주, 한정만

삽교천 방조제가 생기면서 행담도를 비롯 신평면 해안에서 집히는 어종은 바지, 굴, 낙지, 꽃게 등이 소량만 잡혀 수산업이 급격히 쇠퇴했다.

어종이 줄어들면서 주민들의 주 수입은 굴과 바지락으로 급격히 쏠렸다. 주된 판로도 삽교천으로 옮겨졌다.

"배에 싣고 삽교방조제로 나가 고무다라(대야)에 놓고 판 거죠.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사람들이 삽교천에 엄청 많았죠. 굴이든 바지락이든 갖고 나가면 잘 팔렸어. 삽교천으로 많이 팔러 다녔지. 그러니까 굴, 바지락 수입이 좀 늘어났지." - 김종순, 표선동

 1987년 5월 26일 <경향신문> 사진 기사 . '손에 잡힐 듯 가까와 보이는 행담도'라는 설명이 붙여있다. 멀리 보이는 섬이 행담도다.
1987년 5월 26일 <경향신문> 사진 기사 . '손에 잡힐 듯 가까와 보이는 행담도'라는 설명이 붙여있다. 멀리 보이는 섬이 행담도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삽교호에서 행담도를 오가는 유람선과 도선도 생겼다. 행담도로 찾아오는 관광객도 갈수록 늘어났다. 주민들은 행담도 해안가에 임시 횟집을 열고 관광객을 상대로 해물을 팔았다.

"관광객이 어마어마했어요. 꼬리가 안 보일 정도였으니까. 특히 봄가을에 많았어요." - 김종순, 표선동

물고기는 크게 줄었지만, 굴과 바지락, 소라, 낙지는 여전히 지천이었다.

2000년 한국도로공사가 벌인 환경영향평가 조사를 보면 행담도는 연체, 절지동물로 참굴, 따개비, 바지락, 피뿔고둥 등이 우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담도 주변 수역에서 단위 면적당 연간 총 잠재생산량은 바지락 77만4215kg, 굴은 알굴 무게를 기준으로 1만4648kg 으로 추정했다. 1톤 트럭을 기준으로 바지락은 약 800대 분량이고, 알굴은 15대 분량이다.

#행담도#가치네#숭어#바지락#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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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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