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는 냉장고에 넣으면 까매지고 금방 상해. 가지 말릴 때 습하면 금방 썩는다. 여태 그걸 몰랐어?"
여름 채소 중 흔한 것 중 하나가 가지다. 가지 가격이 폭등했다는 말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상추 한 장에 얼마' '호박 한 개에 얼마'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가지 한 개에 얼마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만큼 가지는 비나 더위에도 잘 견디고, 작황이 나빠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채소란 이야기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 무난하다. 그런 이유로 가끔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한다.
가지가 한 번 열리기 시작하면 이파리 사이로 축축 늘어지면서 고추만큼이나 주렁주렁 달린다. 한번 따면 소쿠리가 그득해진다.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그렇게 실하게 열매를 맺어주니 없는 살림에 고맙기도 하고, '어떻게 다 먹지' 고민 아닌 고민거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당장 못 먹는 가지, 어떻게 보관할까
필자가 어릴 적엔 가지 요리라고 해봐야 '가지나물'이 전부였다. 이것저것 해먹을 만큼 수확이 많지도 않았고, 여러 식구 반찬 해 먹기에도 부족했다는 것이 엄마의 말씀이다.
엄마는 가지 여남은 개를 찜기에 쪄서 길게 손으로 찢어 들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갖은 양념과 조물조물 무쳐 상에 올려놓으셨다. 너무 푹 쪄지면 씹을 것도 없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을 지녔다. 오이지와 가지나물, 호박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비비면 최고의 궁합이다.
요즘은 식구 수도 적고 밥도 덜 먹어서인지 가지나물로만 가지를 다 소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가지나물 한 접시면 2~3일은 가는데 다 먹었다고 금세 가지나물을 또 올리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다행스럽게 가지로 만든 다양한 조리법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가지전에, 가지밥도 해먹는다. 올리브유에 가지를 구워 양념장을 얹어 먹기도 하고, 버터를 발라 먹어도 좋다. 그래도 수북하게 쌓인 가지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엄마는 금방 다 먹을 수 없는 가지를 말린다. 말린 가지는 물에 삶아 잠깐 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갖은 양념을 해서 볶아 식탁에 올리신다. 말린 가지나물은 꼬들꼬들 버섯처럼 쫄깃하다. 부드럽기만 한 가지가 이렇게 쫄깃할 수 있다니... 완전히 다른 채소 같다.
며칠 전에 엄마가 가지 말리는 것을 봤다. 큰 것은 좀 잘게 자르고, 작은 것은 네 등분을 해서 베란다 옷걸이에 빨래처럼 널어 놨다. 옛날 어른들은 얇게 가지런히 잘라서 멍석이나 채반에 말렸는데, 엄마는 그냥 빨랫줄에 널었다고 했다.
한번 말려보자... 찾아온 낭패
이거다 싶었다. 우리 집에도 냉장고 야채칸에서 가지들이 시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처럼 잘게 잘라 빨랫줄에 널었다.
1시간 정도 지나니 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지의 수분이 떨어지는 것이겠거니 하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틀째 되는 날 보니 가지에서 하얀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지는 축축한 채 그대로였고 이상한 냄새도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 나도 가지 말리려고 널었는데 하얗게 곰팡이가 피었어. 냄새도 나."
"하필 이런 날 가지를 널었어? 가지는 조금만 습해도 금방 썩어."
"엥? 진짜? 오늘 비가 올 줄 몰랐지."
"가지하고 호박은 금방 썩어. 말리는 중에도 비가 오면 금방 상해. 날씨를 잘 봐야지. 무턱대고 말려?"
아차 싶었다. 미리 날씨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내가 그것까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썰어서 널면 마르는 줄 알았지.' 그냥 구워 나 먹을 것을. 아까운 가지를 손도 못 대고 버린 것이 너무 속상했다.
가지 말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절차와 방법이 있는 것을. 제아무리 똑똑해도 삶에서 배운 지혜를 따라갈 수가 없다. 우리 어머니들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을까. 새삼 어머니들을 다시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