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께 요청 드린다. 민주당이 방탄 정당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놓아 주시라."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날을 바짝 세웠다.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 두 번째 주자로 나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4일) 있었던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의 대표연설을 사실상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용산 대통령실을 대신해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이 제1야당을 견제하고 나선 셈이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으로 대치 국면이 풀리고 협치의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여의도에 있었지만, 순식간에 국회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에 이어, 야당이 소위 계엄령 의혹을 제기하는 등 갈등 요소들이 불거졌다. 5일에 있었던 추경호 원내대표의 대표연설 현장에서도 여야의 감정싸움이 반복됐다. 추 원내대표의 도발적인 메시지가 선두에 나오면서, 연설 중후반부에 배치된 협치 관련 제언들도 메아리 없이 흩어졌다.
"거짓 괴담으로 대한민국 혼란으로 몰아넣는 세력을 탄핵해야"
이날 국회 본회의장은 추경호 원내대표의 연설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시끄러웠다. 연설을 위해 나선 추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응원의 박수와 환호성을 쏟아내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자, 본회의장에서 조용히 하시라"라고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성을 높이며 항의했고, 추경호 원내대표가 "예, 조용히 하시라. 제가 시작하겠다"라고 자당 소속 의원들을 달래야만 했다.
추 원내대표는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어간다. 정쟁과 대결로 얼룩진 부끄러운 시간이었다"라며 "대화와 협치는 사라지고 막말과 갑질만 난무했다. 정작 민생은 설 자리가 없었다"라고 현 국회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다수당에 의한 입법 독재가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온다. 입법 권력 남용을 절제하고 경계하라"라며 "일찍이 민주주의 선각자들이 전해준 경고"라고 전했다. "거대 야당의 힘 자랑과 입법 폭주 때문에 정치는 실종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라며 '야당 탓'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였다.
그는 원 구성 협상 과정부터 야권이 추진한 탄핵소추안들과 특별검사 법안, 청문회 등을 짚으며 "민주당은 탄핵소추권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아 마구잡이로 내던지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김홍일 방통위원장과 직무대행을 잇달아 사퇴시키더니, 이진숙 위원장은 임명된 지 단 이틀 만에 탄핵했다"라며 "오로지 방송 장악을 위한 정략적 목적의 탄핵 남발"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이 특정 정파에 장악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라며 "민주당이 괴담 선동을 시작하면, 좌파세력에 장악된 일부 방송은 확성기가 되어 대대적으로 확산시켰다"라는 주장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박수가,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그런 사람을 임명한 것부터 문제"라는 항의가 나왔다.
추 원내대표는 "얼마 전부터 민주당은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가짜 뉴스까지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이라며 "탄핵을 한다면, 이런 거짓 괴담으로 대한민국을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는 이런 세력들을 탄핵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직격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들 수사를 맡은 검사들을 향해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을 두고 "적반하장의 입법 농단"이자 "법치주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전대미문의 사법 농단"으로 규정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인가?"라며 "우리 헌정사에 이런 정당이 또 있었느냐?"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네"라는 답이 나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한 사람을 위해 포획된 방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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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경호 “민주당,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해 포획된 방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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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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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원내대표는 "거대 야당의 정쟁법안 강행 처리도 명백한 정치 횡포였다"라며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이 밀어붙인 법안의 문제점을 국민들께 알리기 위해 무제한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 당의 건의대로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라고 강조했다. "몸이 똑바른데 그림자가 굽을 리가 있겠느냐?"라며 "민주당이 일방적인 입법 폭주를 하지 않았다면, 여야 간에 합의를 통해 통과된 법안이라면, 대통령이 왜 거부권을 행사하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전날 박찬대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를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은 입법부의 독주를 견제하라고 헌법에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의힘은 특검을 남발하고, 탄핵으로 겁박하는, 거대 야당의 폭주에는 결연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고, 삼권분립의 헌정 질서를 수호하겠다"라며 제1야당을 민주주의 파괴범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정조준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정치 퇴행과 극한 대립의 궁극적인 배경에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목하며 "민주당이 민생은 외면한 채, 툭하면 대통령 탄핵 운운하면서 극한대결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이 역시 전날 박찬대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불행한 전철' 등을 언급한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의 거친 항의가 쏟아지며 소리들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서로 고성이 오갔다. 추 원내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탄핵 언급이)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방어용이라는 것, 현명하신 국민들께서 다 알고 계시다"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개인 차원에서 당당하게 대응하시라"라며 "대신 민주당은 이 대표 한 사람을 위해 포획된 방탄 정당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라는 주장이었다. "그것만이 우리 정치와 국회가 정쟁에서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이어 "이재명 대표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라며 "그렇다면 민주당을 끌어들여 수사와 재판을 방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속한 수사와 재판을 주문해서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국민들도 수사 검사에 대한 특검이나 탄핵, 판사 겁박 같은 사법 방해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이라며 "민주당이 공당 본연의 역할을 되찾고, 우리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란다"라고 재차 촉구했다.
야당 의원들 항의 이어져... 공허해진 협치 제안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이같은 비판과 비난에, 더 이상의 연설은 큰 의미를 담지 못했다. 추 원내대표는 여야정 협의체 구성, 민생입법 패스트트랙 도입, 국회의원 윤리실천법 제정 등을 제안했다. 연금개혁을 포함한 '4대 개혁 입법' 등 주요 입법 과제를 제시했으며,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법안들의 적극적인 추진을 당부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의 귀에는 이미 이런 말들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추 원내대표는 25만 원 민생지원금을 "당장의 인기만을 노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꼬집었고, 이른바 '친일 논란' 역시 야당의 '반일' 프레임이라고 반발했다. "얼마 전에는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한다', '8.15 건국절을 추진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우리 정부를 조선총독부로 매도했다"라며 "입에 담을 수 없는 극언인데, 야당의 대표가 할 말인가?"라고 꼬집은 것.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우원식 국회의장이 잠시 나서서 "국민들이 다 지켜보고 있고, 방청객들이 많이 보고 있다"라며 "오늘은 국민의힘 원내대표께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중인데, 견해가 좀 다르더라도 오늘은 그냥 경청을 해주시면 좋겠다"라고 자제를 요청해야 했다.
추 원내대표는 "국민의 삶과 아무 상관없는 정쟁, 여기서 멈추자. 그리고 일하자"라며 "좋은 정치로 보답하겠다. 민생을 지키고 미래를 키우겠다"라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만의 '반쪽짜리' 박수를 받았을 뿐이었다. 박찬대 원내대표 연설 때 연출된 현장이 좌우만 바뀌어 그대로 반복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