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1일 드디어 만났다. 11년 만에 여당과 제1야당 대표 회담이 성사되는 자리였다. 두 대표 모두 하고자 하는 말이 많았던 탓인지, 당초 각각 7분씩 준비하기로 했던 모두발언은 회담 전 각 10분으로 늘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막상 현장에서 한동훈 대표의 공개발언은 13분을 넘겼고, 이재명 대표의 모두발언은 무려 18분이상이었다.
분량만 긴 게 아니었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악수를 하고 웃는 모습을 보였지만, 생중계 된 모두발언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한 방'을 각각 준비해 왔다. 이어진 비공개 대표 회담이 쉽지만은 않을 것을 예고하는 모양새였다.
한동훈 "격차 줄이는 정치" 강조하며 금투세 폐지 주장... 현금 살포는 반대
마이크를 잡은 한동훈 대표는 발언 기회를 먼저 양보해 준 이재명 대표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양당 당 대표실 백보드에 걸린 슬로건을 비교했다.
"새로운 민주당, 다시뛰는 대한민국"과 "차이는 좁히고, 기회는 넓히고"를 각각 언급한 그는 "과거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양당의 슬로건이 서로 바뀐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저는 '격차해소'를 말하고, 이 대표가 '성장'을 말한다"라고 평했다.
그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전통적인 지점을 확장하여 상대를 향해 움직이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11년 만에 열린 이번 여야 대표회담이 이견을 좁히고, 공감대를 넓히는 생산적 정치, 실용적 정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다"라고 기대했다.
역시나 그가 먼저 꺼내든 것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였다. 한 대표는 "주거격차, 자산격차, 돌봄격차, 교육격차를 줄이고 좁히는 정치를 하자"라며 "자본시장의 밸류업 정책으로 자산형성의 사다리를 더 많이, 더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금투세를 폐지하는 데에 국민의힘이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며 "불합리한 상속세제 때문에 대한민국 기업이 기업활동을 중단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1:99 식의 국민들 갈라치기 정치프레임은, 개미 투자자들 모두가 피해보고, 기업폐업으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냉혹한 현실 앞에 설 자리가 없다"라며 "이 대표도 '금투세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계신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의미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 보겠다"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어 민주당의 보편 복지 정책을 겨냥했다. "민주당은 현금살포를 민생 대책으로 말씀하십니다만, 쓸 수 있는 혈세는 한정되어 있고, 개인들이 느끼는 격차의 질과 수준이 다 다르므로,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똑같은 복지가 아니라 모두의 필요에 맞춰진 복지를 하겠다는 것이 국민의힘의 생각"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취약계층 지원금이나 저소득 대학생 주거장학금, 사병 월급 증액 등을 거론하며 "이런 민생대책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현금살포처럼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정교하다"라고 자평했다.
양당은 국민의힘의 제안에 따라 의정 갈등을 촉발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를 '공식 의제'로 채택하지 않기로 했지만, 한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의료개혁도 결국 민생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장의 의료공백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일도 우리 정치의 임무"라며 "당 대표로서 의료개혁의 본질과 동력을 유지하면서 당장의 국민들 염려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부연했다.
'사법 리스크' 직격... "주류 정치세력이 재판 불복하면 민주주의 위기"
한동훈 대표는 정치개혁과 관련해서도 공을 들여서 이야기했다. "국민은 정치개혁을 원하고 계시다. 특히,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진영을 불문하고 원하고 계시다"라고 역설했다.
"이 대표께서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대선공약까지 내놓으실 정도로 특권 내려놓기에 과감하셨던 입장이었다"라며 "불체포특권, 재판 기간 중 세비 반납 등 이미 국민 여론이 충분히 공감하고 논의된 특권 내려놓기 개혁을 이번에 반드시 실천하자"라는 제안이었다.
또한 "그 외에도, 남용되고 있는 '면책특권'의 범위를 의정활동과의 연계가 적은 악의적 고의범의 경우 등에서는 법률로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라며 "과거 이 대표도 면책특권 제한 필요성을 여러차례 제기하셨으니, 양당 대표의 생각이 같은 지금이 면책특권 제한 추진의 적기"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법안 강행처리-거부권-재표결-폐기-재발의'라는 도돌이표 정쟁정치가 개미지옥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고,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용과 처분적 입법 남발이 삼권분립을 위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자는 말씀을 드린다"라며 "하는 우리도, 보시는 국민도 모두 피곤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주체를 '국회' '우리'로 호명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최근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에 대한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기각됐다"라며 "이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수사나 기소에 관여한 검사들을 상대로 시리즈로 해 온 민주당의 탄핵은, 곧 예정된 이 대표에 대한 판결 결과에 불복하기 위한 '빌드업'으로 보는 분들이 많다"라고 직격했다.
한 대표는 "이건 재판받는 한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법부의 재판에 대해 주류 정치세력이 불복하면, 민주주의의 위기, 법치주의의 위기가 오고,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곧 나올 재판 결과들에 대해, 국민의힘은 설령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선을 넘는 발언을 자제하겠다"라며 "그러니, 민주당도 재판 불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으실 거라 기대한다. 무죄를 확신하고 계시는 듯 하니 더욱 그렇다"라고 꼬집었다.
공개 발언 말미에서 한 대표는 높였던 목소리 톤을 낮추어 "거리마다 걸려있는,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는 자극적인 '정쟁 현수막'도 순화하고, 자제하기로 합의했으면 한다"라거나 "국회에서 비정쟁법안을 따로 빼내어 처리하는, 민생 패스트트랙을 만들자"와 같은 협치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대표회담을 정례화 할 것을 제안"하며 먼저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재명, 공식 의제서 빠진 '의료 대란' 정공법... 결단 촉구하며 특검 압박도
민주당은 이날 이재명 대표의 모두발언을 공보실을 통해 기자들에게 사전 배포하지 않았다. 다음 차례로 마이크를 잡은 이재명 대표는 한동훈 대표의 발언을 하나하나 받아치고 나섰다. 손에 원고가 들려 있기는 했지만, 즉석에서 나온 이야기도 꽤 있는 듯 보였다. 모두발언의 '톤 앤드 매너'는 차분했지만, 내용과 분량 모두 여당을 향한 비판과 압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는 "회담에는 공식 의제라고 하는 게 있게 마련인데, 여러 가지 합의를 했지만, 의료대란을 공식 의제에서 빼자고 아마 얘기가 된 것 같다"라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한동훈 대표께서도 정부와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정한 대안을 내시기도 하는 것처럼, 이 의료대란 문제는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라며 "이거는 손바닥으로 가리고, 또 안 보려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지적이었다.
이 대표는 "한동훈 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의료개혁의 기본적 방향, 그러니까 '의사 정원을 좀 늘려야 된다' '필수 공공의료 지역의료 강화해야 된다'라는 점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라며 "그러나 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집단들끼리 충분한 대화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한 양해 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일방적으로 힘으로 밀어붙여서 상대방의 굴복을 강요하게 되면 성공하더라도 후유증 피해가 너무 크다"라며 "정책 수행이 지금처럼 거칠고 급하고 과해서는 결국 예상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부작용이 정말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의료체계의 붕괴 위기를 불러왔고 응급실 뺑뺑이로 안 죽어도 될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이미 작년 한 해 총 발생량을 이미 초과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얼마나 불안하겠느냐? 사실 저도 불안하다"라며 "'갑자기 밤에 저나 가족들이 아프면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며 "한동훈 대표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또 실효적 대책은 대화로 만들어 낼지라도 일단 정확한 현상 파악, 문제 인식, 토론 대화 공감대 형성을 위한 의료재난 대책이 이걸 국회 내에서 여야 모두가 함께 만들어서 해법을 좀 강구해 보자는 말씀을 제가 드리고 싶다"라고 제안했다.
또한 예상대로 이 대표는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해병대원 특검법 우리 한동훈 대표께서도 전 국민을 상대로 공언하셨다"라며 "저는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진심이 지금도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라는 지적이었다.
이 대표는 "(한동훈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으로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저희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씀드렸다"라며 "또 조건을 하나 더 붙이셨는데, '증거 조작 이것도 특검하자' 하셨지? 저희가 수용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결단하셔야 된다"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어 "입장이 난처한 거 이해한다. 그러나 공당이란, 또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란, 자신이나 개인 또는 주변의 특별한 문제 때문에 국민적 대의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 너무 잘 아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재차 한 대표의 결단을 부탁하며 "또 뭐 소소한 조건들을 추가한다면, 그 역시도 저희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열린 자세를 보였다. 한 대표 측의 퇴로를 차단한 셈이다.
조목조목 반박 나선 이재명 "현금 지원?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다"
한 대표가 앞선 모두발언에서 비판한 내용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먼저 "현금 지원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다"라며 "이건 현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특정 기간 내에 몇 개월 안에 쓰지 않으면 소멸하는 소멸성 지역 화폐 즉 소비 쿠폰"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지역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골목상권에서만 쓸 수 있는 소비 진작책"이라면서 해당 정책이 왜 효율적이고, 보편적으로 균등하게 지급하려고 하는지 정책 취지를 재차 설명한 것.
그러면서도 "굳이 차등 지원·선별 지원하겠다면, 그것도 저희가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니까 적정한 선에서 협의해서 좀 지원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채상병 특검법처럼 국민의힘 측의 대안이 있으면 수용 가능하다는 뜻을 밝히면서, 정치적으로 역공을 취한 모양새이다.
금투세에 대해서도 "금투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비정상이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금투세를 지금 적용하면 안 그래도 비정상인 대한민국 주식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이걸 좀 교정하자, 보완하자 이런 차원에서 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막연한 세금 깎아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런데 이 비정상을 교정하는 데는 그 비정상 자체를 교정해야지, 비정상의 비정상적인 대안을 만들어서 '비정상 곱하기 비정상'으로 해서 정상 비슷한 상황으로 가자? 이건 옳지 않다"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금투세에 대해 논의할 수는 있지만, 무작정 폐지가 정답은 아니라는 투로 읽힌다. 대신 "일정 기간 대폭 완화해서 시행하는 방안도 한번 검토해 보면 좋겠다"라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여권이 민감해 하는 친일 논란을 재차 언급하는 한편, "국회의원의 특권 얘기도 중요하지만 상응하는 대통령의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된다"라며 행정권력의 견제도 중요하다는 취지를 피력했다. "행정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라며 "법 앞에 형식적으로 평등할지는 몰라도 검찰 앞에서는 매우 불평등하다. 사람 따라 법의 적용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라고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계엄'에 대한 정치권 일각의 우려를 재차 거론하며 "독재"라는 표현도 반복해 사용했다.
두 대표 모두 기자들 앞에서 살짝 미소를 보였지만, 서로 불편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오간 탓인지 다소 경직된 표정이었다. 1일 오후 현재 양당 대표의 비공개 회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회담을 마치고 나면 배석한 양당 수석대변인들이 별도의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