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런 제목 어때요?> 책을 선물 받았다. 오마이뉴스 22년 차 최은경 편집기자가 펴낸 '제목 뽑는' 안내서다.
그간 제목을 뽑으면서 고민한 과정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글쓴이들에게 전수하는 지침서다. 책은 7월에 발간돼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오마이뉴스>에 2022년 5월 처음 가입해, 시민기자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나는 그간 제목 때문에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글의 제목을 달아야 할 때면 나는 늘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 반가웠고, 배송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평소 관심 있어 했던 주제이기에 정신도 자연스럽게 집중됐다.
제목을 달 때마다 작아지는 기분
글쓰기는 사실 매사 어렵지만, 제목 달기는 내겐 조금은 더 어렵다. 그러나 글에 있어 제목의 중요성만큼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은 '에디터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안일한 자세도 없지 않았다.
나는 제목을 미리 정하고 문장을 쓰는 편이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았고, 종종 내가 정한 제목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해버린 적도 있다. 결국 제목과 본문이 어긋나기 일쑤였다. 돌아보니 나는 제목과 부제를 혼동하는 우도 자주 범했다.
그러다 보니 제출한 기사의 제목은 번번이 수정됐다. 문장과 제목이 따로 놀고 내용도 허술했다는 방증이다. 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160여 건의 기사가 발행됐는데 이 중 100건 이상의 기사 제목이 편집기자가 새로 뽑은 것이다. 그만큼 내가 제목을 추려내는 안목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기사를 쓰면서 처음에는, '기사 제목은 편집자가 알아서 하는 부분이겠거니' 하고 어떻게 정해지든 터치하지 않으려 했다. 실제로 비교해 봐도, 내가 만든 제목은 그저 밋밋하고 뻔한 제목들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제목에 편집자의 고민이 그렇게 깊은 줄은 잘 몰랐다. 사실 탓하자면야, 글을 써놓고도 제목을 잘 짓지 못하는 내 무능을 먼저 탓하는 게 맞다. 처음과는 달리, 점차 시간이 흐르고 기사를 여러번 쓰면서 편집자의 수고를 덜어주고 나 스스로 먼저 제목을 정하는 것이 글쓴이로서의 주요 임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22년 차 기자의 내공... '제목의 안과 밖'을 말하다
특히 나는 책 '제목의 밖'의 내용에 주목했다. 이 책은 제목의 안과 밖을 챕터로 양분해 서술하고 있다. 제목 안 챕터는 제목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테크닉을 설명했다면 제목 밖은 제목과 관련해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두 챕터의 순서를 바꿔 읽어도 무난하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내공과 저력은 '제목 밖'의 서술 부분에서 고스란히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제목이 안 나올 때'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대목은, 제목 정의의 백미다.
"뾰족한 한 문장을 짓기 위해 문장과 문장 사이를, 단어와 단어 사이를 찾아 헤매고 글쓴이의 문장에 기대어 제목을 뽑는다. 제목 뽑는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그나마 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은 내가 기댈 수 있는 문장이 어딘가에는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수히 많은 사람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은 한눈에 알아보는 것처럼." (134쪽)
책의 마지막 부분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에 대한 부분도 오래 남은 대목이다. 저자는 입장을 이렇게 정리했다.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사이에서 고민될 때 저는 우선 독자를 떠올립니다. (중략) 가장 중요한 독자 입장에서 선정적으로 보인다거나 편파적, 일방적, 과장, 왜곡, 선동 등으로 읽힌다면 백만 명(웃음)이 읽은 만한 제목이라도 접게 되는 것 같아요." (224쪽)
반듯하고 인상적인 제목은 기사의 조회수와도 직결된다. 아마도 인터넷매체 특성상 조회수가 평가 기준 혹은 덕목임은 자명할 것이다.
그런데 편집기자도 아닌 내가, 기사의 조회수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지난 5월에 쓴 기사 때문이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1년 선배들이 노후를 대비해 악기를 배우고 밴드까지 만들어 취미생활을 넘어 봉사활동까지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닥 특별할 것은 없어 보였는데, 그때까지 쓴 역대 기사들 중 이 기사가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것이다. 왜일까.
당시 편집기자가 뽑은 기사 제목은 '노후 대비 취미로 시작한 모임,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이야'이다(관련 기사 보기:
https://omn.kr/28izp ). 기사의 제목이 미래를 예고한 것인지, 제목처럼 조회수가 16만 회가 넘어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내가 쓴 원래 제목? '나이 들어 음악으로 봉사하는 삶이 부럽네요'였다).
이 기사가 대박이 난 이유는은 본문 내용보다도 기사의 전 문장을 관통하는 훌륭한 제목 덕분이었다.
책 소개에도 나오고, 종종 듣기도 하는 말인 '제목이 기사의 8할을 차지한다'는 문장. 그간 실은 내심 평가절하해왔는데,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크게 공감돼 무릎을 치고 말았다.
한편 책을 읽다 기쁜 일도 있었다. 책 속에서 내가 쓴 기사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는데, 마치 헤어진 이산가족을 만난 기분이었다.
저자는 '제목의 밖' 챕터에서 전 <오마이뉴스> 기자이자 프리랜서 에디터인 홍현진씨 인터뷰를 통해 제목 뽑는 노하우를 전하는데, 여기서 95세 아버지와 92세 숙부가 설에 서로 큰 절을 주고받는 장면을 다룬 이 기사의 제목이 '본질을 해치지 않는 제목'이라 극찬하고 있다.
'95세-92세 두 형제의 맞절'이라는 기사 제목 또한 내가 제시한 제목이 아니라 당시 편집기자가 새로 뽑은 것이다. 홍씨에 따르면 제목이 담백할 뿐 아니라 본문 내용을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에 내 기사와 기사제목이 언급되다니, 깊은 감사를 표한다.
여담이지만 저자에게 경고받은 적도 있다. 여러 시민기자들을 상대하는 편집기자인 저자가 나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금천구 시흥행궁 전시관 관람객 현황에 대한 팩트체크, 즉 사실확인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은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시민기자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를 취재하는 것은 기자 직분의 윤리에 어긋났다고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암행취재는 자제하고, 취재를 할 때는 매체를 밝혀야 한다는 당부였다.
이렇듯 에디터는 기사의 제목만 손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 내용과 사실확인 등 기사작성과 관련한 다양한 부분을 체크하며 기사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책을 접한 뒤 편집기자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애로에 공감이 됐다. 이제 갓 3년차 시민기자인 나 스스로도 반성하고 분발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시민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교본의 성격이 짙지만 글을 쓰는 사람,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유용하리라 본다. 요즘 단문이 SNS에서 유행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매력 있는 제목'에 대한 관심은 여러모로 긴요하기 때문이다.
'독자를 사로잡는 제목의 비결', '22년 차 편집기자가 전하는 읽히는 제목과 외면받는 제목'이란 책의 소개는 과장이 아니다. 관심 있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