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새벽이생추어리*는 보다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그믐달이라는 땅에 정착했다. 첩첩산중에 감춰져 있는 그곳은 돼지라는 종을 혐오하는 인간 사회로부터 새벽이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한 절박함과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삶에 대한 지향이 담겨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가느다란 물줄기, 태양광 패널을 이용한 소량의 전기, 톱밥을 사용하는 생태 화장실, 땅이 키워내는 다양한 풀. 생태적인 삶을 각오하며 정착한 활동가들은 이곳에서 첫 여름을 겪고 있다. 긴 장마가 끝나고 그믐달엔 폭염이 찾아왔다. 현장에서 돌봄을 하는 활동가들이 남긴 기록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0년 5월, 시민들의 연대로 만들어진 새벽이생추어리는 국내 첫 생추어리다. 생추어리(Sanctuary)는 동물 산업 피해 생존 생명체들의 안식처이다. 새벽이생추어리에는 두 명의 돼지가 산다. 새벽이와 잔디. 새벽이는 공장식 축산 '공장'에서 활동가들에 의해 구조되었고, 잔디는 실험실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머리를 다쳐 치료를 받던 중,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와 인연이 닿아 생추어리에 오게 되었다. 둘이 생추어리에 오지 못했다면, 새벽이는 생후 6개월 무렵 도살장에서, 잔디는 약물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잔디는 입춘에 네 살이, 새벽이는 여름의 시작에 다섯 살이 되었다.
"새벽이 잠들어 있을 때 지난주보다 숨을 많이 거칠게 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제는 날이 너무 더워서 새벽 방도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은데 그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24. 7. 31 다현
"새벽이는 진흙 목욕탕에 몸을 담갔는데 많이 더운지 호흡이 가빴어요. 목욕탕에 물이 별로 없어서 물조리개 4통 부어주면서 찬물 목욕하고 황토를 왼쪽 몸통에 발랐어요." 24. 8. 3 구황
"새벽 호흡이 가빠 보여요. 걱정되어 좀 급한 마음으로 진흙 목욕탕에서 진흙을 떠서 바르고 등목을 했어요." 24. 8. 4 세원
"새벽이 숨이 너무 가쁘고 몸도 뜨거워서 찬물에 적신 수건을 몸 위에 덮고 선풍기를 틀어 줬어요." 24. 8. 7 다현, 생강
숨을 거칠게 쉬고 몸이 뜨거워진 새벽이의 상태가 일지에 기록되었다. 활동가들은 새벽이의 거친 숨을 가라앉히기 위해, 얼린 과일을 주고, 찬물을 새벽이의 등에 끼얹고, 선풍기를 가동하며 폭염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입추가 지나도 더위는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숨소리를 통해, 우리는 기후 위기를 느낀다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진흙을 몸에 묻히며 체온을 떨어뜨린다. 날씨가 선선하거나 추운 계절에 새벽이와 잔디의 진흙 목욕은 휴지기를 갖는다. 그러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에 다시 풍덩 몸을 담근다. 잠깐 들어가 거칠게 뒹굴며 몸에 진흙만 묻히는 수준으로 바로 목욕을 끝내는 날도 있고, 아예 자리를 잡고 누워 반신욕을 하는 날도 있다. 그날의 온도,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둘은 진흙을 적절히 이용한다.
새벽이는 이 여름, 진흙 목욕탕에 몸을 담근 상태에서도 숨을 거칠게 쉬었다고 한다. 진흙 목욕이라는 것이 지구가 불타기 전에 가능했던 방법이면 어쩌지? 강물에서 헤엄치던 연어가 산 채로 몸이 익는 시대다. 이런 날씨에, 더위를 피하기 위한 종의 본능이 효과가 있을까? 더 이상 진흙 목욕이 통하지 않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돌보는 동물의 힘든 숨소리를 통해, 우리는 기후 위기를 느낀다.
새벽이의 거친 숨소리에 대한 걱정 외에 또 다른 힘듦이 있다.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수많은 죽음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폐사'라는 단어가 줄줄이 등장했다. 생추어리 밖에서 동물들은 시시각각 죽어 나갔다. 공장 안에서 마지막까지 숨을 헐떡거리다 죽은 이들의 수는 누적되어 기사화되었다.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의 요구안은 이러했다.
1. 기후재난으로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2.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 일자리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하라
3. 철도 민영화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하여 모두의 이동권 보장하라
4.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 건설과 국립공원 개발사업 중단하라
5. 대기업과 부유층 등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이 다섯 가지 안에서 숨을 헐떡이며 공장에서 죽는 이들이 보일 리 없다. 기후위기의 최일선 당사자인 비인간은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공장 안에 갇혀 있었고, 바깥에서 외치는 인간들의 목소리는 컸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다가오는 9월 7일, 다시 기후정의행진이 진행된다.
이번엔 기존과 다른 기후정의행진이 될 것이다. 그간 요구안에서 누락되었던 비인간의 이야기가 미약하게나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당사자이지만,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언제나 배제되어 온 존재들을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피해 당사자의 곁에 서기 위해,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감금된 그들을 감히 대변하여 말할 것이다. 공장에서, 실험실에서, 번식장에서, 뜬 장에서 해방되어 이동권을 얻어낸 동물들이 더위와 추위를 피해 어디든 갈 수 있는 기후정의를 위하여. 그리고 그 세상에서 평온하게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혜리씨는 새벽이생추어리 운영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