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사회정의, 기후정의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이 힘들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극복은 과학만으로는 어렵다. 사회적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가 남긴 말입니다.
그는 지난 29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청소년 기후테크 아이디어 경진대회 '기후과학클래스'에 발제자로 참석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환경재단이 주최하고 보잉코리아가 후원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기후위기 해법을 모색하는 해커톤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작년 3월에 발표한 제6차 종합보고서에 핵심저자로 참여한 이 교수는 세계가 인정한 기후과학자입니다. 그는 한국 기후과학자로는 처음 6차 종합보고서 제1실무그룹(WGI)의 '과학적 근거' 보고서 총괄 주저자로도 활동했습니다.
이날 100여명의 청소년들 앞에 선 이 교수는 "(기후대응을 위한) 기회의 창이 아직 열려 있다"며 "효과적이고 공평한 기후행동을 주류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IPCC 6차 보고서 발표 이후 지구 평균기온 계속 상승세
IPCC 6차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1℃ 상승했습니다.
이는 최신 기후데이터가 반영된 수치는 아닙니다. 현재까지 발표된 주요 기관의 자료를 보면 오늘날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2℃ 상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후마지노선인 1.5℃에 근접해 있습니다.
일일·연도로 보면 상승폭은 더 큽니다. 예컨데 지난 3월 세계기상기구(WMO)는 "2023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45℃(오차범위 ±0.12℃)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이는 '엘니뇨' 같은 자연적 변동성도 영향을 준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2~7년 주기로 일어나며, 엘니뇨가 발생할 경우 지구 전체 평균기온은 약 0.2℃ 정도 오릅니다.
그는 현 배출량이 계속 유지될 경우 엘니뇨로 인한 금세기 손실이 84조 달러(약 11경원)에 이를 것이란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엘니뇨가 올해 하반기에는 소멸하고 그 반대 현상인 '라니냐'가 나타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럼에도 "2024년이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가장 더웠던 해일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고 이 교수는 밝혔습니다.
"기후위기로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 늘어나"
이 교수는 현재의 지구 온도 상승폭은 엘니뇨 같은 자연적 변동성 때문만은 아니란 점을 짚었습니다.
인간이 내뿜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자연적 변동성보다 더 큰 문제란 것이 기후과학계의 결론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활하고 활동하는 모든 것들이 온실가스 배출과 연관돼 있다"며 "온실가스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손해 비용이 IPCC의 6차 종합보고서 발간 당시 예측치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용이란 화폐적 가치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공중보건 시스템이 취약해졌다는 점을 사례로 언급했습니다.
일례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도시 열섬현상 악화로 인해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에 의하면,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2021년 290여명에서 2023년 740여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올해(7월 20일 기준) 말라리아 환자 수는 315명에 이릅니다. 모기매개감염병인 말라리아는 그간 경기 북부나 강원 같은 휴전선 근처에서 발생했습니다. 허나, 올해는 서울 도심에서도 환자가 연이어 발병하고 있습니다. 7월 22일에는 서울 강서구에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습니다.
기후우울증 역시 언급됐습니다. 이 교수는 유엔환경계획(UNEP) 자료를 인용해 "세계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기후와 환경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란 것이 이 교수의 설명입니다.
즉, 기후위기로 인해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더 커지고 있단 것이 이 교수의 메시지입니다. 또 현재 배출량 추세라면 그 비용은 상상 이상으로 우리 사회를 압박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습니다.
"기후위기, 공정성·형평성 연결돼"…중장기적 접근 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기후위기가)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형평성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역·가구별로 다릅니다. 소득으로 보면 더 적나라합니다.
스톡홀름환경연구소(SEI) 등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상위 10%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약 30톤에 이릅니다. 같은기간 하위 10%의 1인당 배출량은 약 0.6톤에 그쳤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1인당 배출량은 평균 3톤 정도였습니다.
이 교수는 "소득별로 배출량 격차가 크다"며 "현재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적응으로 나아가기 위해 효과적이고 실행가능한 방안은 이미 존재한단 것이 이 교수의 설명입니다. 그는 기후위기로 인한 전환 과정에서 사회가 이익과 부담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기후대응 과정에서 사회와 경제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가 공유가 선행돼야 한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포용적 거버넌스 ▲국제협력 ▲기후정의 등을 우선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이 교수는 "기후대응을 위해선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정책적 책임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가 사례로 소개됐습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목표가 소극적이란 지적이 제기돼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기후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2030년까지 낮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후 감축부담을 후세에게 미루는 것이 세대간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지금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힘들다"며 "자꾸 다음세대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2030 NDC 달성이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을 지금부터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 교수는 "대응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포기할 수 없다"며 "(기후변화로) 현재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는 더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실효성 있는 기후정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