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은 많은 글을 남겼다. 상소문·시무책·격문·시문 등 장르가 다양했다. 여기서는 몇 편의 시문을 소개한다.(대부분 원문은 한자이다)
을사년 섣달 그믐
오는 해는 내 일찍이 스승 찾아 글 배우기 비롯된 해
살아온 생애 어딜 가나 오직 초라한 갈대집 하나
나무꾼, 고기잡이로 어울려도 늘 즐거웠거니
궂은 쌀, 나무 밥이지만 더 나은 살림은 바라지 않았네
이날의 일이 험하고 어려웁다고 탄식치만 말라
스스로 의귀(依歸)할 고인서(古人書)가 있잖은가
가없구나, 저 명리(名利)의 뜬 세상에 사는 나그네들이여!
바둥대다 종년(終年)에는 모두가 죽음으로 떨어지노니.
스스로 책함
덧없는 이 세상의 시각 다하기 전에
가혹한 가시 돌밭길 다시 밟게 되었구나
한 번 싸움에 지매 그 누구를 탓하랴
남보다 한 치 마음도 없는 이 몸이 부끄럽구나.
임병찬에게 줌
깊은 산 여윈 어버이께 효 닦던 날
고을이 텅 비도록 무리져 나와 충성을 맹세할 때
그 지킨 의기 온 천하가 공명하였으니
어찌 한 점의 사욕인들 그 안에 들었으랴.
정시해를 애도함
해 떨어진 순창 땅 적막한 사관(舍館)
죽기를 맹세하고 남은 사람 겨우 스물일곱 뿐
오직 그대 먼저 선뜻 목숨을 다하니
남은 우리 그로 하여 생색만 내는구나.
일제의 옥속에서 읊음
일찍이 들었노라
세상의 온갖 일 뜻 있으면 이루움을
내 살아가며 벼슬에 몸 두기를 가벼이 하였나니
마음 속 한 가닥 충절 펴보지도 못한 채
부끄러이 몸이 먼저 묶였으니
다시 무슨 말로 우리 임을 보답하랴
주석
1> <나라사랑>, 제6집, 148~150쪽, 외솔회, 197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면암 최익현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