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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일지①] <집집마다 붙은 집주인 변경 안내문, 지옥이 시작됐다> https://omn.kr/29e7s
형사 고소 후 참고인 조사를 위해 몇몇 세입자가 경찰서를 방문했다.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들은 제대로 설명을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실질적으로 집주인을 기소하기는 쉽지 않다는 뉘앙스를 받았다고 한다. 통장 거래내역만 봐도 전부 기소가 가능할 것 같은데 그냥 피고소인 진술만 받고 종결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7월 중순, 경찰서의 결정문이 등기로 날아왔다. 구치소에 있다는 곽씨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혐의가 없다는 경찰의 판단이었다. 하다못해 명의를 대여한 현 집주인 이씨조차 그저 곽씨에게 명의를 대여했을 뿐 '부동산 매매계약에는 관여하지 않아 모른다'는 그의 진술을 경찰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미 관리 부동산이 직접 이씨가 와서 계약을 했다고 말했고, 관리비나 월세 또한 이씨 명의의 계좌로 받았지만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신축 원룸의 경우 건축 당시 소요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세가 아닌 월세로 세입자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전 집주인은 모두 전세로 세입자를 모집하고 세입자가 다 들어오자 한 달만에 건물을 매매했다. 이를 통해 전세금을 공중분해 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계좌 내역 조사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은 것일까? 이렇게 사기를 치고 쉽게 빠져나간다면 진심 사기를 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다.
전세사기, 남의 일이 아니다
한동안 대응 방안을 알아보기 위해 '전세사기'란 키워드를 자주 검색하자 유튜브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전세사기 관련 영상을 추천해줬다.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타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유명 연예인까지도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영상을 보며 우리나라가 전방위적으로 침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세사기를 입었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자신 혹은 지인 또한 전세사기를 당한 사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줘 정말 우리나라 청년 대부분이 전세사기의 늪에 빠져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현재 당사자로서 가장 힘든 것은 미래를 더 이상 꿈꿀 수 없다는 것도 크지만, 그보다 주위의 시선에 짓눌린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인상 쓰지 말고 웃으라고 말한다. 총구가 내 머리를 조준하며 뚫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웃으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어떤 이는 야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본인이 잘못해 놓고 왜 나랏돈을 쓰려하느냐? 젊으니 고생 좀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들을 볼 때면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보다 밉다.
현재 시행 중인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는 피해자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해 온 보증금 회수 방안이 빠져 있다. 대신 기존 대출을 대환하거나 주택 매입 자금을 대출해 주고, 경매·공매 절차를 지원하는 방안 몇 가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대출을 대출로 돌려막는 것이 아닌 보증금 자체를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야당은 특별법 개정안을 통해 국가에서 보증금의 일부를 피해자에게 먼저 돌려주고, 시간을 두고 비용을 회수하는 '선구제-후회수' 방안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이러한 개정안은 수조원의 혈세를 낭비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고, 대통령 또한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 공동대책위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언론 기고를 통해 "국가의 공식기관 어디서도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재까지의 전세사기 피해규모와 향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사기 규모를 분석하지 않고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지난 2월 말에 국토교통부가 공식적으로 수조원의 혈세 낭비가 예상된다는 것은 정밀한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과장된 주장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또한 그는 "국토부는 추후 회수 가능한 비용이 있음에도 투입하는 비용 전부가 혈세 낭비이자 회수 불가능한 손실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며 "시민사회와 피해자대책위에서 판단한 결과, 선순위 임차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우선변제금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후순위 임차인 중 최우선변제금을 받는 임차인은 채권매입방안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금액을 건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다면 정말 세금이 투입되는 것은 소액임차인 기준을 벗어나 최우선변제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거액의 전세대출 부담을 지고,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후순위 임차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평균 보증금은 1억 2711만 원이고, 최우선변제금 대상이 아닌 후순위 임차인 비율은 48.6%이다. 지역별 최우선변제금이 다르고 보증금의 1/3도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계산 편의를 위해 보증금의 30%, 피해자가 2만 명에 달한다고 가정해보면 1억 2711만원 x 48.6% x 30% x 2만명 = 약 3706억 원이 산출된다.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다른 사기피해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피해자 구제에 부정적이며 어떠한 방안도 고려하지 않는 정부는, 부동산 PF 부실에 수십조원을 선뜻 내놓는 모순된 행태를 반성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다 다 죽어"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좋은나무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고에서 전세 사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단순히 임차인의 부주의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부동산 계약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와 권한의 비대칭 구조, 전세 사기 조짐이 보였으나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방치한 수사·사법 기관의 문제, 세입자로서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 여건을 마련하기보다 대출 위주의 부동산 정책만을 추진해 전월세 시장의 불안정을 가속화한 국가, 계약서에 규정된 기한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관행 등에도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회 안전망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채 갭투자라는 이름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다. 전세사기를 이대로 두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의식주가 무너진다. 이런 상황 가운데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을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침례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