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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번쯤…' 하며 꿈에 그리던 쿠바 여행을 했다. 일주일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체 게바라 평전>이나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 <쿠바의 유기농업> 등을 읽고 익숙한 터라 그리 낯설진 않았다. 게다가 요즘은 구글 번역기를 통해 스페인어 설명문까지 해독이 쉬워 사진 찍으며 스친 내용을 사후적으로나마 찬찬히 살필 수 있다. 그래서 짧은 여행에도 불구, 마치 긴 시간을 머무른 것 같은 착각도 한다. 또 요즘은 유튜브 영상물도 많아 미처 경험하지 못한 건 '보충 수업'하기에도 참 좋은 세상 아닌가.

문제는 자료가 아니라 체험이다. 사진보다 더 중요한 건 느낌이다. 객관적 기록도 좋지만 그것을 잘 소화해 내고 삶속에 녹여내려는 주체적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에 내가 쿠바를 다녀온 뒤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두 개의 쿠바'다.

'두 개의 쿠바'라, 휴전선으로 분단된 한반도처럼 '두 개의 코리아'인가? 아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통일 국가다. 인구는 비록 서울 인구에 불과한 1천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땅은 남한 면적만큼 되니까, 전반적으로 훨씬 쾌적하다. 수도인 아바나조차 인구는 250만이 안 된다. 광주나 대전보다 좀 크지만 대구나 부산보다는 약간 작다.

두 개의 쿠바

그러면 무엇이 '두 개의 쿠바'인가? 다양한 각도로 말할 수 있지만 내 나름의 체험과 느낌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두 개의 쿠바'란 첫째로는 전형적인 거주민들이 있는 아바나(Havana)와 관광객과 휴양객이 주로 몰리는 바라데로(Varadero)를 말한다. 둘째는 (앞의 내용과 연동되지만) 현지 화폐인 페소 세상과 세계화폐인 달러 세상으로 나뉜 쿠바다. 셋째는 (이들의 종합으로서) 사회주의 쿠바와 자본주의 쿠바라는 두 세계다.

나는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바라데로 공항으로 입국했다. 바라데로에서 몇 일 지낸 뒤 아바나로 가서 또 몇 일 보냈다. 그리곤 다시 바라데로로 돌아가 몇 일 지낸 뒤 토론토로 귀환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바나와 바라데로로 상징되는 '두 개의 쿠바'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우선, 아바나와 바라데로 사이의 거리는 140킬로미터 정도다. 자동차로 약 2시간 걸린다. 한국만큼 고속도로가 좋지 않아 좀 더 걸린다. 이렇게 거리나 시간으로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내가 짧은 기간이나마 체험한 것은 전혀 다른 '두 세계'다.

쿠바는 400년 이상 스페인 식민지였는데, 수도 아바나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이기는 바람에) 1902년에 공식적으로 독립은 쟁취했으나 사실상 미국에 종속되었다. 그 결과 혁신적인 쿠바 정부가 들어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한 독재 정권으로 변해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중심으로 1956년부터 시작된 혁명전쟁의 결과 마침내 1959년 1월초, 기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 정부가 수립되었다. 우여곡절은 많지만 사회주의 쿠바는 약 30년 동안 소련의 도움 아래 착실한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소련과 동구권 붕괴로 1차 타격을 입었고, 또다시 30년이 지난 2020년엔 코로나 사태로 2차 타격을 입었다.

쿠비인 평균 월소득은 25달러

코가 예민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아바나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차 매연가스를 고통스럽게 느꼈다. 내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올드 아바나(중심가)에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었다. 구글맵을 보며 여기가 어딘가 하고 찾는데 벌써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냐?"며 말을 건다.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을 거절하면 또 다른 이가 붙었다. 그냥 길을 걷는데도 쓱~ 다가서며 "아바나 가이드?" "올드카 한번 타야지?" "환전 하겠느냐?" "좋은 씨가가 있어요." "페소화 필요하냐?" 등등 '귀찮게' 굴었다.

알고 보니, 현재 쿠바인의 평균 월소득은 25달러 정도인데, 손님 하나 잘 잡으면 몇 시간만에 월급을 번다. 그러니 관광객이 봉이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1달러는 24페소였는데, 요즘은 1달러가 암시장에서 350페소까지 나간다.

손님 하나 제대로 잡아 월급 수준의 소득을 벌려고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삐끼'들을 절묘하게 제치고 인근 공원에 가서 아내랑 미리 싸온 도시락 점심을 먹었다. 공원 근처엔 경찰 제복의 남녀가 미니차와 오토바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들도 아마 월 25달러 수준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공원 앞에는 화려한 빛깔의 1950년대 올드카가 10대 이상 즐비하고 하얀 셔츠를 입은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시간 투어에 40불 정도이니, 이들은 손님을 태우고 1시간만 돌면 공무원이 받는 월급 이상을 번다. 그래서 나같이 관광객처럼 보이면 밀착 취재하듯 붙는 것이다.

화려했던 스페인의 옛 흔적을 보여주듯 건물은 유럽풍인데 매우 낡았다. 중간에 수리한 듯 보이는 건물조차 그리 깔끔하진 않았다. 조금 걸어서 성모 마리아 대성당 광장으로 갔다. 쿠바 토속 점을 봐주는 여인이 앉아 있기도 하고, 일군의 관광객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와중에 팔이 하나 없는 이가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쿠바의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거의 예외적인 풍경! 아마 '기독교 정신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 푼 주겠지' 하는 생각에서 동냥을 하는 듯했다.

이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확실히 모르긴 해도 쿠바 사람들은 쌀이나 빵, 채소 등 '최소한'의 생필품을 매일 배급받는다. 아바나 시내를 걷다 보면 군데군데 사람들이 수첩 하나를 들고 빵집 앞에서 긴 줄을 서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약국에서 약도 무료로 제공된다. 1959년 혁명 뒤로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기본이다. 그런데 말이 무상급식이지, 일반인들은 하루에 약 30센티 내외의 바게트 모양의 '빵 하나'만으론 살 수 없으니 추가로 돈을 벌려 한다.

올드 아바나 중앙공원 인근의 플라자호텔에 시외버스 표를 사려고 들렀는데, 그 호텔 문지기 아저씨는 자기 한 달 월급이 '고작 7달러'라며 "쿠바에 미래는 없다"고 푸념했다. 그런데 아내랑 피자 가게에서 지름 30센티짜리 피자 하나 먹는데 피자값만 5달러였다. 거기다 세금이 10% 붙고 팁까지 붙으니 7달러 정도 나왔다. 호텔 문지기 월급을 피자 하나로 날린 셈이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쿠바인 평균 월급이 25달러(한국돈 3만원)라면 한국인의 평균 월급(300만원)은 약 100배나 되는 셈이다. 역으로, 현재의 쿠바는 1970년대의 한국이다.

아바나의 숙소는 민박(까사)이었는데, 하룻밤에 평균 50달러다. 이 액수만 보면 두 달 치 월급이다. 물론 까사 주인은 그 중 70%만 갖는다 하니, 방 하나를 하루만 빌려 줘도 한 달 월급이 나오는 셈! 국가 통제 아래 있는 까사는 아무나 민박 허가를 낼 수 없다. 가장 기본으로 냉장고, 에어콘, 화장실, 샤워기 등이 있어야 허가가 난다. 그렇게 돈을 벌게 해주는 조건으로 세금을 왕창 내야 한다. 물론, 그 세금은 전체 국민 복지에 쓰인다.

알고 보니, 아바나 외에 다른 소도시(비냘레스, 마탄사스, 산타 클라라, 쿠바 데 산티아고 등)에선 저녁 8시부터는 정전이라 한다. 농촌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가 부족하기에 수시로 정전이 온다 한다. 그러나 아바나는 워낙 관광객이 많아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내가 머무는 동안은 정전이 없었다.

또, 수돗물도 아바나 시내, 그리고 손님을 받는 까사에서는 맘대로 쓸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선 그렇지 못하다 한다. 식량, 식수, 전기 등이 부족하고 소득이 낮은 데다, 날로 물가가 올라 살아내기가 버거워진다고들 했다.

그나마 올드 아바나는 1982년 이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정부가 관리를 잘 해서 좀 낫지만, 약간 외곽의 센트로 아바나는 거의 허물어지는 집들이 많다. 한국 같으면 재개발 내지 재건축 대상들인데,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지 '투자자'가 없어 방치된다. 게다가 (외국) 건설 자본이 재건축 내지 재개발하면 원주민들은 입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당 가격이 오른다.

그러니 평균 소득이 한국보다 100배 낮은 쿠바에서 어느 건설 자본이 수익성을 노리고 투자를 하겠는가? 그래서 너도 나도 찾는 카리브해 연안의 말레콘(8킬로미터에 이르는 방파제)에서 남쪽의 센트로 아바나 방향을 보면 마치 폐허 내지 전쟁터를 보는 기분이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이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기보다 관광객들이 한 푼이라도 던져주길 바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게 싫었다. 심지어 세르반테스 공원 벤치에 자기 아들과 앉아 있던 중년 남자는 몸짓으로 '귀여운 아이와 사진 하나 찍어라'는 시늉을 했다. '돈' 때문이었다. 그런 걸 보면서 갑자기 서글퍼졌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혁명 정신이 충만했던 이 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어서였다.

그나마 아바나 한복판의 센트럴파크 주변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자가용 승용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지 주차난도 없고, 보행자가 대로를 횡단해도 여유가 넘쳤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 시내에 비하면 아바나는 시골 같았다. 다만, 올드카나 낡은 버스, 트럭에서 나오는 매연가스만 좀 정화된다면 숨 쉬기가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하나의 쿠바'였다.

또 다른 쿠바 바라데로
 
 쿠바 바라데로 해변
 쿠바 바라데로 해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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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쿠바'는 바라데로였다. 바라데로는 멕시코 칸쿤처럼 대체로 외국인 전용 관광특구로 지정된 곳! 흔히 해외의 멋있는 여름 휴양지로 사진에서 보는, 뽀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의 맑은 바다, 아름다운 연인들, 바로 그 모습이 바라데로에 '실제' 있었다.

항공사와 호텔이 특별 계약을 맺어 만든 여행 상품으로 '올 인클루시브' 패키지가 있다. 이것은 한 번 돈을 내면 비행기부터 공항버스, 그리고 호텔 숙식이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거의 천국 같은 프로그램이다. '돈의 힘'을 느끼게 하는 상품!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또나 다이끼리 같은 럼주 칵테일을 공짜(?)로 '무한정' 마실 수 있다. 호텔 영역 안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또 해변에 나가 수영이나 운동을 하다가 다시 또 먹고 마실 수 있다.

해수욕을 하다 만난 오스트리아 일가족 관광객은 "유럽의 마요르카보다 여기가 훨씬 좋다"라 했고,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온 부부는 "휴가철이면 다른 어디보다 꼭 여기로 온다. 벌써 12번째"라 했다.

미국의 동남쪽인 플로리다, 그 가장 남쪽인 키웨스트와는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에 쿠바가 있는데, 바라데로는 플로리다를 향해 삐죽 나온 반도 모양이다. 그 길이가 무려 28킬로나 된다. 약 100년 전에 미국의 듀퐁 자본이 바라데로를 개발했는데, 주로 미국인 부자들을 위한 휴양지다. 당시 듀퐁 가족이 살았던 '듀퐁 하우스'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변신을 거듭해 현재 호텔과 식당으로 사용된다. 더 들어가면 마피아 두목으로 유명한 '알 카포네 하우스'도 있다.

그러면 바라데로 관광특구에서는 과연 '소는 누가 키울까'? 당연히 쿠바인들, 현지인들이 그 모든 일을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 나르는 일, 청소하고 설거지 하는 일, 호텔 방을 정리정돈 하는 일, 심지어 해변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일 등을 모두 현지인들이 한다. 현지인들은 대체로 혼혈 흑인이다. 이들의 얼굴 속에 수백 년 쿠바 식민지 역사가 깃들어 있다.

얼핏 생각하면 그들은 외국 관광객들의 하인 노릇을 하면서 속으로 빈부격차 내지 계급 불평등을 느껴 자괴감이나 거부감을 가질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을 보면 의외로 밝고 차분하다. 가식인가 싶어 유심히 관찰했지만, 그냥 자연스러웠다. 수십 년 전에 우리나라 시골에서 보던 그런 '촌사람' 표정처럼 순박하다.

물론, 이들은 원래 살던 선주민(타이노, 메티 등)의 후손이라기보다 스페인 사람과 아프리카 노예들이 섞인 '물라토'의 후손이 많아 대개 가무잡잡하다. 얼굴색으로 사람을 말하는 건 인종주의 냄새를 풍기기에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같은 사람으로, 동등한 이름을 부르며 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견이나 어색함이 사라졌다. 그렇게 식당이나 카페에서 모히또나 다이끼리를 한 잔씩 하며 현지인들과 친해지다 보니 나 역시 마음이 편해졌다.

또 하나. 그곳 현지인들은 다른 곳에서보다 호텔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일하는 게 대우가 훨씬 좋기에 오히려 좋아하는 기색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기본 영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배운' 이들이다. 특히, 가끔 손님들이 건네주는 팁은 그들에게 '개꿀'이다. 대개는 모든 직원들이 팁을 모아 일과를 마칠 때 고루 나눠 가진다고 한다.

먹고 놀고 즐기다 든 죄책감

이렇게 '올 인클루시브' 패키지로 온 관광객들은 일(생계노동 및 가사노동)을 하나도 하지 않고 광고 카피('그동안 수고 했으니, 떠나라! 그리고 무한정 즐겨라!')처럼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누가 술과 음식을 '무한정' 즐기겠나? 바로 이 인간적 한계가 '올 인클루시브' 패키지의 심리적 비밀이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저렴한' 인건비와 물자는 그 사업모델의 경제적 비밀이 된다.

이런 조건 속에서 먹고 놀고 즐기다 보면, 은근히 죄책감이 느껴진다. 나 역시 처음엔 은근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시달렸지만, 현지인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올라(Hola=안녕)!'하고 인사하며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금세 그들과 친해졌다. 일례로, 호텔 실외 수영장 옆에서 손님들에게 모히또를 만들어주던, 눈이 서글서글한 알레한드라는 내게 "현진 류를 아느냐?"고 물어서 내가 "야구보다 축구를 좋아한다" 하니 "흥민 손도 잘 안다"고 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 나를 친근히 대했다. 마지막에 헤어질 땐 내가 먼저 살짝 울컥할 정도였다. 그러나 알레한드라, 세실요, 유스레이 등 현지인 직원들은 "다음에 또 와요!"라며 쿨~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물론, 쿠바 현지인들은 바라데로 인근에 거주하지만 관광특구와는 다른 구역에 산다. 들어와 살고 싶어도 비싸서 살기 어렵다. 물론, 허락도 되지 않겠지만.

이렇게 카리브해의 맑은 물과 눈부신 백사장, 해수욕과 스노클링 등에 안성맞춤인 잔잔한 물결 등 자연 풍광이 뛰어나고 하루 종일 음식이나 술을 즐길 수 있는 곳, 아마 보통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 요즘은 신혼여행 때만 잠시 즐길 수 있고 그 다음엔 영원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 온 사람들은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한다. 이것이 아바나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쿠바다.

물론, 흑백논리 식으로 바라데로를 천국, 아나바를 지옥이라 할 순 없다. 그러나 같은 나라 안에서, 더구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이토록 '다른' 두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전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수출자유지역이나 경제특구 같은 데서는 투자 기업들이 땅값을 거의 내지 않거나 세금도 오래 면제받지 않던가? 그 바깥으로 나가면 세상은 전혀 딴판인데 말이다.

쿠바 역시 관광객 유치와 외화벌이(미국 달러)를 위해 바라데로 같은 관광특구를 만들고 '올 인클루시브' 패키지 같은 상품의 대량 판매를 허용한지 오래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농산물 개인 판매나 공예품 등 소상품 판매를 부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걸 1차 충격 완화 조치라 하자. 또,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1년부터 화폐 통합(외국인용 쿡[CUC]과 쿠바인용 쿱[CUP]을 통일, 쿠바 페소만 사용)과 함께 100인 미만 중소기업 영리사업을 허용했다. 이제 자본만 있으면 웬만한 영리 사업을 하라는 것, 그리하여 미국 달러를 최대한 벌라는 것이다. 이걸 2차 조치라 하자.

이 1차, 2차 조치들을 통해 혁명 65주년이 된 2024년, 쿠바도 서서히 중국식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쿠바는 '사회주의-자본주의'라는 '두 세계'가 통일된 하나의 나라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회원을 위한 소식지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쿠바, #아바나, #바라데로, #혁명,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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