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가 꽃을 피우고 있다. 며칠 전엔 하나둘 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전반적으로 피어오른다. 그 색깔도 다 똑같을 줄 알았는데 다르다. 어떤 꽃은 분홍빛을, 어떤 꽂은 진분홍빛을, 어떤 꽃은 주황빛을 띤다. 키도 폼새도 다르다.
사실 내가 아침 저녁으로 돌아보는 텃밭은 20평 정도다.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곧장 텃밭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맨 먼저 깨알같은 깨들이 나를 반긴다. 깨는 가뭄에도 잘 자란다. 처음 싹을 틔우는 게 어렵지만 한 번 싹이 올라오면 비가 오지 않아도 쑥쑥 자란다. 며칠 전에는 한 곳에 너무 많은 깨가 올라와 그것들을 속아줬다.
깨를 심은 그 너머에는 고구마가 자란다. 그 녀석들도 얼마 전에 내린 비 때문에 잘 살아 있다. 그전까지는 아침저녁으로 계속 물을 줬다. 무엇이든 처음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하다. 뿌리를 내리면 그때는 물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기 때문이다.
텃밭 양쪽 중간에는 고추와 토마토와 수박과 오이와 가지 몇 그루를 심었다. 오른쪽 모서리에는 작두콩과 더덕과 마와 천문동과 머루와 포도와 복분가 자란다. 텃밭을 마주한 담벼락에는 으름과 키위와 매실나무와 아로니아와 가시오가피가 있다.
다양한 빛깔에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양귀비는 텃밭과 주차장 경계선에 줄을 이루며 피어 있는 것이다. 차를 대는 사람도,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도, 다들 꽃양귀비를 한 번씩은 쳐다본다. 보는 것만으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꽃양귀비를 심은 것은 목포 삼학도 공원에 핀 녀석들이 너무나 예뻐 보인 까닭이었다. 그래서 '세계종자종묘나눔' 카페에 들어가 씨를 구입해 모종을 해서 지금 그 자리에 심었다. 그 씨도 화초양귀비, 가시양귀비, 흰두메양귀비, 꽃양귀비, 숙근양귀비, 페일보라양귀비, 겹꽃양귀비, 스패니시양귀비 등 다양했다. 강한나씨에게 천원 우편료를 보내서 혼합양귀비씨와 천인국씨를 덤으로 받아 심은 것이다.
물론 꽃양귀비와 마약 양귀비는 다르다고 한다. 마약 양귀비는 꽃대에 솜털이 없이 매끈하고 열매가 크고 거기에 상처를 내면 진액이 나오고 키도 1.2~2m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꽃양귀비는 온몸이 솜털로 덮여있고 열매가 작고 진액도 나오지 않으며 키도 60cm로 작단다. 지금 피어오른 꽃양귀비들은 키가 작고 꽃대도 솜털로 뒤덮여 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침 저녁으로 내 텃밭을 구경 나온 할머니들은 입으로 내게 조언한다. 깨는 한 구멍에 하나씩만 둬야 한다고. 두세 개가 나오면 다 솎아주라고. 토마토도 밑가지는 잘라 땅속에 심으라고 한다. 그러면 늦가을 토마토로 충분히 따 먹을 수 있다고 말이다.
입으로 내게 훈수하던 그분들도 꽃양귀비 앞에서는 다들 애원한다. 올해 꽃씨를 잘 받아서 조금씩 나눠주라고.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 답은 했지만 꽃을 처음 보는 것이라 장담은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분들은 한결같이 좋아 한다. 꽃양귀비의 매혹적인 자태 앞에서는 나이든 할머니도 맥을 못 추는 것이라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