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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나 어릴 적과 지금을 돌아보면 세상이 너무나 달라져서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변하는 게 어디 강산뿐일까. 어디에나 적응 잘 하는 '빨리빨리'의 민족은 마음가짐마저도 완전히 새롭게 고쳐먹은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10년 전, 20년 전의 한국인과 오늘의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도 같다.

외모에 대해서도 꼭 그렇지 않은가. 패션이며 화장, 성형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변화의 첨단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 국립공원에 가보면 적잖은 여성들이 레깅스를 입고 산에 오르고는 한다. 몸매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 옷을 두고도 산에 오가는 이들 가운데 별 말을 내는 이는 없어 보이는데, 불과 십여 년 전이었다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요새는 남성 화장품도 불티나게 팔리는 모양으로, 역사나 쇼핑몰 화장실 거울에서는 쉽게 화장을 고치고 저를 단장하는 사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꼭 십년 전인 2014년 어느 가을, 남이 들어오자 서둘러 화장을 멈추고 나가면 다시 하던 이를 본 일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성형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책 표지
▲ 성형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책 표지
ⓒ 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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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그렇다면 성형은 어떠한가. '신체발부 수지부모'란 여덟글자가 성형과 함께 붙어 다니던 시절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걸 아주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성형을 생각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일이년 만에 나간 동창회에선 얼굴이 조금씩 바뀐 친구를 드물지 않게 마주하고, TV 화면 속에서도 제가 한 성형수술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연예인을 보게 되곤 한다. 서울 강남역 일대를 지나다보면 종종 흐린 날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지하철이나 버스에 오르는 이를 지나치는 게 드물지 않은 일인데, 가만히 고개를 들어 살피면 그 일대 전부가 온통 성형외과 간판과 광고로 넘쳐나는 것이다.

바야흐로 성형공화국이라 불리는 2024년 대한민국이다. 세계로 나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손흥민이나 BTS, K컬쳐에 대한 관심만큼 성형에 대한 이야기도 쉽게 마주한다. 그중에선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와 편견, 어쩌면 사실이 바탕일 감춰진 비화들을 듣는 날도 있다.

한국은 자타공인 성형강국으로, 지난 십 수 년 간 전 세계에서 성형관광을 유치하는 대표적 나라였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정부부처는 이를 장려했고, 관리감독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로부터 수많은 문제가 불거져 나왔으나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한국 성형이 처한 참담한 현실

성형외과 전문의 이주혁이 쓴 <성형을 생각하는 당신에게>는 한국 성형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책이다. 성형수술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부터 대리유령수술과 수술실CCTV 법제화, 외국인 환자 유치를 둘러싼 문제점들, 결정적으로 일선 성형외과와 의료기기 제조업체, 보건당국의 비도덕적인 행태까지를 하나하나 지적한다. 성형을 고려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업계 관계자, 나아가 부인할 수 없는 성형공화국의 일원인 이 시대 시민들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하겠다.
 
2012년 초, 폴리텍의 물방울 타입 보형물이 식약처 승인을 받고 정식 수입이 됐을 무렵, 국내는 물방울 타입 보형물이 처음으로 수입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그 수입사는 턱없는 가격으로 병·의원들에 이 제품을 밀어 넣으려고 했다. 기존 실리콘 겔 보형물들의 공급가가 120~130만 원 정도였을 때 약 300만 원 정도 가격으로 공급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메이커의 보형물이 단지 '물방울' 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팔렸다. 병원들은 수술비를 기존의 보형물 수술보다 훨씬 더 높게 올려 받았다. 물론 당시의 국내 의사들은 '물방울' 보형물을 다뤄본 적이 전혀 없었고, 폴리텍 제품에 대한 어떤 학술적 자료도 보지 못했다. -263, 264p
 
책은 보건당국이 방치하다시피 한 한국 성형업계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지를 차근히 서술한다. 성형외과 의사의 시각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서술한 대목은 절로 흥미를 자아낸다. 검증되지 않은 보형물을 마치 신기술의 집약체인 듯 홍보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이나,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부터 환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모습, 그 환자들조차 양심적인 의사를 충분히 신뢰하기 어려운 환경 등이 차분한 어조로 설명된다.

변화를 꿈꾸는 이들

대형 성형외과 병원장들이 이사로 등재된 의료기기 업체가 있고, 또 그 업체가 제조한 보형물이 마치 대단한 신제품이기라도 한 것처럼 활용되는 현실, 환자들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상황 등도 현실감 있게 묘사된다.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듯도 보인다. <성형을 생각하는 당신에게>는 성형이 그저 환자의 심리를 자극해 돈을 버는 수단이어선 안 된다고 믿는 의사의 양심선언이며, 성형에 대한 인식개선과 법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침이기도 하다. 저자는 스스로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개설하여 이 같은 인식변화를 요구하고 있기도 한데, 이 책이야말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 담긴 저술이라 할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은 성형이 산업이라 불릴 만큼 몸집을 키워가는 동안 오로지 그 빛에만 주목한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그 그림자가 수많은 의료범죄 피해자를 낳았고, 또 부작용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그중에선 한국인이 아닌 이들이 적지 않으며, 언어와 재정적 문제로 싸워보지 못한 채 성형을 넘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나라에 정의가 있고 법도가 있다면 이 책으로부터 어떤 변화를 꿈꾸려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형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이주혁 (지은이), 새움(2021)


태그:#성형을생각하는당신에게, #이주혁, #새움, #성형, #김성호의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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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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