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부부인 언니와 형부는 올해 환갑을 맞이했다. 언니가 환갑인 건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 때 처음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던 형부가 벌써 환갑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 형부와는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35년을 함께 지내왔고, 언젠가부터는 진짜 오빠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있어 가끔은 친오빠보다 더 오빠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허물없이 살갑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형부는 지금까지도 나와 동생에게 존댓말을 하고 우리도 형부를 조금은 어려워하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예의를 갖추는 관계이다.
40년 전 형부가 처음 우리 집에 인사를 왔을 때, 까무잡잡한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들어서는 청년에게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나 비호감의 감정이 아니라, 언니의 남자친구라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낯설고 어색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언니가 결혼을 한 후에도 한동안은 형부와 함께 사는 언니까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그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남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둘 다 맏이인 언니와 형부는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져왔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느라 취업도 결혼도 늦어졌던 오빠를 대신해서 형부는 우리 집안의 아들 역할을 대신했다. 부모님을 챙기는 건 물론이거니와 형제들의 결혼을 비롯해서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큰 역할을 해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35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형부와는 친형제 못지않은 끈끈한 형제애가 쌓였고 이제는 마음으로도 진짜 가족이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옆에서 겪어온 형부는 훌륭한 가장이고 성실한 사회인이기 전에 참 괜찮은 어른이고 인생 선배였다.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나이에 맞게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이 앞으로 그 나이를 살아갈 나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수명이 길지 않았던 과거에는 잔치까지 벌일 정도로 환갑을 맞이하는 게 대단한 일이었지만, 백 세를 넘게 사는 요즘에는 특별히 기념하기도 남사스러울 정도로 환갑은 아직 팔팔한 나이이다. 그래도 특별한 이름이 붙는 생일이니만큼 형부의 환갑을 아무것도 없이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부모님 세대에 이어 우리 세대에서 첫 스타트를 끊는 형부의 환갑은, 앞으로 우리도 차례로 맞이하게 될 일이기에 축하와 동시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의미로 소박하게나마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끼리 기념하고 즐기는 자리이지만 우리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었다. 주인공인 형부의 주변 사람들, 가장 가까운 자식들과 부모 형제들은 물론 친구들과 직장동료 모임까지, 축하해 주려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과의 일정과 방법에 대한 조율이 필요했다. 특히나 조카(형부의 자녀)와는 준비 과정에서 행여라도 내가 선을 넘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특별히 더 조심했다.
축하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새삼스럽게 사람이 참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한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이 없었다면 60년이라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 내 주변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나서 조카와 미리 약속된 깜짝 파티를 위해 집으로 갔다. 풍선들로 장식되어 있는 거실 한편에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앞에 축하 메시지를 적은 커다란 리본을 몸에 매단 조카와 사위가 서 있었다. 요즘 MZ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파티인 것 같았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결혼 이듬해에 치렀던 시부모님의 환갑잔치가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거의 한 가족처럼 지내는 작은 시골 동네의 환갑잔치는 그야말로 온 마을의 잔치였다.
아침 일찍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와서 먹었다. 막내 며느리인 나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답게 한복을 차려입고 이리저리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치러지는 잔치가 무척 힘겨워 잔치에 초대된 친정 부모님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었다. 그리고 좋은 날 눈물을 보인 며느리가 못마땅하셨는지 그 일은 두고두고 어머님의 단골 잔소리 레퍼토리에 올랐다.
그때는 '환갑'이라는 것이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이로 느껴졌었다. 언젠가 나도 환갑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 시간이 이렇게 금방 다가올 거라는 건 더더욱 알지 못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인생이 참 짧다'는 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그동안은 조금 더 열심히 살 걸 하는 후회를 했었지만, 이제는 더 재미있게 살 걸 하는 후회가 더 크다.
내 나이와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자꾸만 헤아려보게 된다. 요즘 환갑을 일컫는 재미난 말들 중에 '세 번째 스무살'이라는 말을 보았다. 참 마음에 드는 말이다. 형부의 세 번째 스무살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도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기를 바란다. 더불어 나도 하루하루 더 재미나게 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