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2월 YTN의 대주주가 유진기업으로 바뀌면서 수십년간 이어져온 YTN의 공적소유 체제는 막을 내렸다. 유진 측은 과거 대량 해직사태 주범인 김백 사장을 임명했다. '민영방송 YTN 잔혹기'는 김백 사장 이후 YTN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다.[편집자말] |
"김백 사장이 했던 대국민사과에 대해 YTN 구성원이자 언론인으로 국민께 사죄하는 마음입니다." -YTN 20여년차 기자
지난 4월 1일부터 5일까지 YTN의 한주는 여느 때보다 길었다.
2008년 YTN 해직 사태를 주도했던 인물인 김백 사장이 임기를 시작한 지난 1일. 이날 오전 9시 50분쯤 관용차를 타고 출근한 김 사장을 막아선 건 YTN 언론인들이었다. 이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고 따졌고, 김 사장은 수행원 호위 아래 이들을 뚫고 취임식을 강행했다. 김 사장은 취임 직후 대규모 인사 발령을 냈고, 3일에는 '쥴리 보도'와 '생태탕 보도'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주주인 유진기업의 유경선 회장을 만나러 간 YTN언론인들은 유진 측으로부터 "회장은 계열사 직원을 일일이 만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2024년 4월 1일] 첫날부터 직원과 말다툼 벌인 사장
"해고사태의 주범이고 당신은..."
"끌어내세요!"
해직사태를 주도했던 김백 사장의 첫 출근은 순탄치 않았다. 오전 9시 50분께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 뒷문에서 내린 김 사장에게 고한석 전국언론노조YTN 지부장 등이 막아서며 "여기가 어디라고 옵니까"라고 따졌다. 김 사장은 용역 수행원들의 호위를 받은 채, 항의하는 YTN 언론인들을 뚫고 취임식장에 들어섰다.
노조 조합원들 항의는 취임식장에서도 계속됐다. "당신은 해고사태 주범" "또 얼마나 해고할 거냐" "아무리 자리가 탐나도 회사를 팔아먹나"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에 김 사장은 "끌어내라" "업무방해다"라며 날을 세웠다. 신임 사장은 첫날부터 그렇게 직원들과 대립했다.
이날 취임식은 15분 여만에 끝났고, 당일 대대적인 인사 발령이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친정부 보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종균 신임 보도본부장 등 보수 성향 YTN 방송노조 출신들이 대거 요직에 중용됐다. 보도국장의 임명 여부를 구성원 투표로 결정하는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인사였다.
YTN 구성원 Q씨는 "마치 점령군 같았다"면서 "사장으로서 경영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출세를 위해 언론사를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또다른 구성원 R씨는 "첫 출근길에서 사장이 적어도 우리 구성원을 보호하고, 대표하려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고 했다.
[2024년 4월 2일, 3일] 군사작전하듯 "대용산 사과"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인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수십 건 보도했습니다"(4월 3일, 김백 사장)
2일 김백 사장과 신임본부장들이 YTN 사옥 1층 강당에 모였다. 김 사장은 신임본부장들을 뒤에 세워놓고 '대국민 사과' 영상을 촬영했다. YTN을 담당하는 미디어 기자들은 물론 YTN 구성원들에게조차 별도 공지나 협의도 없이 이뤄진 '대국민사과' 촬영이었다.
3일 오전, 사장의 대국민사과가 방송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YTN 내부도 어수선해졌다. 언제 방송이 송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신경은 여느 때보다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35분께 단행된 '사과영상' 송출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통상 방송이 이뤄지는 영상은 부조정실에서 담당 PD의 확인을 거쳐 방송된다. 그런데 '사과영상' 방송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영상 송출이 이뤄지는 주조정실에서 바로 송출됐다.
김백 사장은 대선 당시 '쥴리 보도' 등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이라며 사과했다. 부끄러움은 사장이 아닌 YTN 구성원들의 몫이었다. YTN 구성원 X씨는 "도대체 이렇게까지, 누구를 위해 사과했어야 하나"라며 "시청자를 위한 떳떳한 사과였다면 왜 그렇게 도둑처럼 몰래 했나, 시청자가 아니라 용산만 바라보겠다는 사과 아닌가"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또다른 구성원 Z씨는 "사장의 대국민사과에 대해 YTN구성원이자 언론인으로서 국민들께 반성,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라며 "사장의 사과는 윤석열, 김건희에 대한 사과였다, 고개숙인 사장을 보고 불편을 느낀 국민들께 대신 사과드린다"고 했다.
[2024년 4월 3일] 돌발영상이 위험하다
돌발영상이 불방됐다. 해당 돌발영상은 "70 평생 지금처럼 못하는 정부는 처음본다"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라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 등 여야간 선거 공방전을 다룬 내용이었다. 돌발영상 제작진에게는 "총선을 앞두고 어디에도 유리한 콘텐츠를 만들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신임 보도제작국장은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기 어려우면 제작하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비판하는 내용의 돌발영상이 불발되고, 이에 항의하던 담당 PD가 해고됐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YTN 구성원들은 돌발영상의 폐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구성원 V씨는 "이미 구성원들 사이에선 돌발영상이 폐지되지 않을까 우려가 나오고 있다"면서 "유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검열을 하면, 담당자들 입장에서도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콘텐츠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2024년 4월 4일] 가족이지만 만나진 않는 회장
'회장은 계열사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지 않는다'
YTN의 어수선한 내부 사정을 의식한 걸까. YTN 대주주인 유진기업의 총수, 유경선 회장이 4일 YTN 구성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유 회장은 "YTN은 보도방송의 최고 전문가들이 훌륭히 경영해주시리라 믿는다"며 "구성원들이 최고 역량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유 회장 서한이 전달되자 전국언론노조 YTN지부는 반박 형태의 서한을 통해 "유진 그룹은 YTN의 최대주주가 될 자격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다"며 "유 회장은 법정에서, 역사와 국민 앞에서 YTN최대 주주의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한석 YTN 지부장 등은 4일 오후 4시 여의도 유진그룹을 방문했다. 해당 서한을 유 회장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진 측 상무가 로비를 막아섰다. 유진 측 관계자는 "회장은 계열사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지 않는다"면서 "서한을 전달할지 말지도 내 판단"이라며 고압적으로 나왔다. 결국 YTN 구성원이자 언론인들은, 검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던 유 회장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로비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고한석 YTN 지부장은 "유 회장이 YTN을 한 가족이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가 보낸 서한이 제대로 전달되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직원은 가족이라면서 왜 가족을 만나지 않는가, 유진이라는 기업이 YTN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