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2월 YTN의 대주주가 유진기업으로 바뀌면서 수십년간 이어져온 YTN의 공적소유 체제는 막을 내렸다. 유진 측은 과거 대량 해직사태 주범인 김백 사장을 임명했다. '민영방송 YTN 잔혹기'는 김백 사장 이후 YTN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다.[편집자말] |
2024년 4월, 따뜻한 봄이 왔지만 YTN 언론인들에겐 끝모를 겨울이 시작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YTN 해직 사태를 주도했던 김백 사장이 4월 1일자로 새롭게 사장으로 부임했고, 부임 당일에 대규모 인사가 단행됐다. 특종과 기자상 등을 수상하면서 내부 구성원들의 신임을 받던 국장급 기자들은 대부분 좌천됐고, 그 자리에는 보수 성향 YTN 방송노조 출신 기자들이 채워졌다.
특히 2008년 'YTN 해직 사태'의 당사자들이 겪는 칼바람은 더 매섭다. 당시 징계를 받아 해직됐다가 복귀한 기자 6명 중 3명, 현덕수, 정유신, 권석재 기자는 현재도 YTN 소속인데, 김백 신임 사장의 첫 인사 발령의 칼은 이들에게 그 누구보다 빠르고 깊었다.
2008년 이어 2024년 YTN에 부는 칼바람
기획조정실장이 야간업무... 국장은 자막업무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현덕수 기자는 국제부 시프트(주야근 번갈아가며 근무)로, 정유신 기자는 국제부 야근 전담으로 발령이 났다. 영상취재부장이었던 권석재 기자도 '무보직' 발령이 났다.
현덕수 기자는 복직 이후 '나경원 전 의원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 'MB집사 아들, 자원외교에 깊숙이 개입' 등을 단독 보도했고, 정유신 기자는 '박근혜 정부 정보경찰 전방위 언론사찰', '사법농단' 등을 알리면서 권력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YTN 구성원들 사이에서 국제부 '시프트'나 '야근전담'은 한직 중의 한직으로 평가된다. YTN 기자 A씨는 "야간이나 새벽 근무를 하는 직종이라 업무가 고되고, 크게 인정도 못받는 부서"라며 "그곳에 발령되면 구성원들 사이에선 우스개소리로 '시베리아 유배 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2008년에 감봉 등을 받은 중징계 이력자 상당수가 이번 인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났다.
지난 대선 때 '김건희 여사 쥴리 의혹 보도'의 책임자였으면서 해직사태 당시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던 A 기자는 센터장에서 보도국 사회부 야근 전담으로 발령났다. 야근 전담의 경우, 3일에 한번씩 밤샘 근무를 하면서 매일 터지는 사건과 사고를 챙겨야 한다. 내부에선 체력 소모와 스트레스가 극심한 자리로 정평이 나있다.
직전까지 국장이었던 B기자는 뉴스지원팀으로 발령이 났다. 뉴스지원팀은 뉴스 화면 하단에 스크롤(자막)을 쓰는 업무로, 취재 업무를 총괄하던 간부급 기자가 맡을 업무로 보기엔 상식적으로 무리가 있다. B기자는 2008년에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직전까지 보도국장이었던 C기자는 국제부로 발령이 났다. 무보직으로 발령이 난 건데 국제부장도, 팀장도 아닌 일선 평기자가 된 것이다. C기자는 2008년 감봉 1개월을 받았다.
2008년에 징계를 받고 이번 인사에서도 좌천된 Q기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착잡하다"면서 "김백 사장이 회사로 복귀할 것이란 전망과 우려들이 제기돼 왔고, 불안한 우려는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낙하산 사장으로부터 지키려 했던 제도들이 무너지고 이런 일이 10년만에 다시 발생했다는 점에서 어이없고 더욱 참담하다"면서 "현 상황은 변화하는 언론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퇴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임 본부장은 '박근혜 찬양' 기사 전력
노조 "보도국장임면동의 단협 위반, 법적대응"
좌천된 기자들의 빈 자리는 보수 성향 인물들이 대거 자리를 채웠다.
김종균 신임 보도본부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보도국 요직에서 일방적인 친정부 보도를 했다고 꼽힌 인물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당시 '매력적인 대통령' '진가 발휘하고 돌아온 朴' 등의 기사를 써 박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칭송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동우 신임 경영본부장은 지난 2011년 자신의 배우자가 관련된 영어교육센터를 홍보하는 기사를 타 부서 후배 기자에게 쓰게 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직접 기사를 썼고, 결국 사내 징계(경고)까지 받았다.
이번 인사가 YTN 방송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내부 제도들을 모두 무시한 채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YTN 단체협약에 따르면 보도책임자(보도국장)를 임명할 때는, 사장이 지명을 하더라도 구성원 투표를 통해 최종 임명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번 인사는 구성원 투표는 완전히 배제된 채 이뤄져 단체협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는 법적 대응을 선언했다. YTN 지부는 "윤석열 정권과 유진그룹을 등에 업고 사장으로 돌아온 김백은 일순간에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를 무너뜨렸다"면서 "이번 인사는 YTN 보도국장 임면동의 협약 위반, '2023년 단체협약' 위반, '공정방송을 위한 YTN 노사 협약' 위반이다.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