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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2020년, 지혜학교 철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

철학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2016년에는 여러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심화과정 내 인문반 신설'과 더불어 큰 변화가 더 있었는데, 당시 여러 상황으로 인해 최초 사단법인의 '지점'이었던 철학교육연구소가 학교의 '부설' 연구소로 재배치됐다는 점이다.

배경은 이렇다. 지난 글에서 다뤘듯이 개교 초기에는 철학교사만 있었다가 철학교육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으로 인해 현장으로부터 독립적인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는데, 연구를 위해서 현장으로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구소에서 제시하는 철학수업들이 현장과 동떨어져서 '일상을 철학하기'라는 학생과 교사들의 요구를 오롯이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몇몇 연구원들은 떠나고, 남은 연구원들은 더욱 현장 가까이 들어갔다. 학생들의 일상을 직접 보듬고 챙기는 일에 함께 손을 거들었다. 담임을 포함한 여러 교무에 깊숙이 참여했다.

기존에는 철학교육 관련 연구를 해야 할 시·공간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로 철학, 인문학 수업 및 관련 프로그램 활동 외에 학교 교무에서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연구보다는 교육에, 사실상 일상에서의 돌봄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학생들의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늘어났다. 새로운 시선으로 철학교육 커리큘럼도 더욱 과감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2018년 1학기 철학 수업 배치 이 시기는 공동의 주제로 여러 수업들이 협업하는 체계를 시도했다. 2018년 1학기의 공통 주제는 "공부란 무엇이며, 나는 왜 공부하는가?"
▲ 2018년 1학기 철학 수업 배치 이 시기는 공동의 주제로 여러 수업들이 협업하는 체계를 시도했다. 2018년 1학기의 공통 주제는 "공부란 무엇이며, 나는 왜 공부하는가?"
ⓒ 추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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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계획표를 보자. 2018년의 계획이다. 기존의 계획에서 시도했던, 여러 인접하는 교과와 연계하는 방법은 이제 포기했다. 연계를 하려면 틈틈이 만나서 수업 계획을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최소한 격주마다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시간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각자 알아서 수업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철학교육에 대한 '지혜학교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지상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접 교과가 아니라 각각의 학년별 철학수업들을 '내적으로 연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했다.

기존처럼 철학교육의 배치는 지역별, 시대별 구분을 유지하되 단일한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연계하는 것이다. 위의 계획을 보면, 2018년 1학기 본과정 철학 수업에서는 '공부'를 핵심 주제로 설정하고 각 학년의 수업에서 공부에 관련된 동·서양의 여러 구체적인 논의들을 다뤘다.

이렇게 각 학년별 수업의 고유성과 다른 학년의 철학 수업과의 연계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주에 한 번씩 만나서 철학 수업 회의를 통해 각 수업의 현황과 고민거리, 해결책들을 함께 다뤘다. 

학기 말에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형식을 빌려, '책문 백일장'의 형식으로 글쓰기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당시 주제는 '공부란 무엇이며, 나는 왜 공부하는가?'였다. 50여 명의 학생들이 4시간 동안 끙끙대며 글을 쓰는 모습이 생각난다. 또 방학 때 학교로 불러내어 3박 4일 동안 어르고 달래 가며 '동·서양철학사'를 읽히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이러한 기록을 정리해서 지혜학교만의 '철학수업 모형'을 만드는 것도 시도했다.
 
2020년 1학기 3학년 철학 수업 모형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시도했던 수업 모형이다. 온라인으로 진행해서 다소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 2020년 1학기 3학년 철학 수업 모형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시도했던 수업 모형이다. 온라인으로 진행해서 다소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 추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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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다음의 질문들을 우리 자신에게 던지고 그간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답변을 스스로 시도함으로써 '지혜학교 철학교육 계획'을 수립하려고 노력했다.
 
⑴ 어느 교육관이든지 간에,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합니까? (인간의 이해)

⑵ 청소년들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철학교육의 목적과 범위)
① 만약 그렇다면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나요?
② 청소년들이 공부해야 할 철학은 어떤 철학이어야 할까요?

⑶ 청소년들이 철학을 공부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철학교육의 내용)
①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공통적으로, 반복해서 강조해야 할 철학의 '내용'이 있다면?
②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위계적으로, 차등적으로 가르쳐야 할 철학의 '내용'이 있다면?

⑷ 청소년들이 철학을 공부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철학교육의 방법)
①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공통적으로, 반복해서 강조해야 할 철학의 '방법'이 있다면?
②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위계적으로, 차등적으로 가르쳐야 할 철학의 '방법'이 있다면?

⑸ 위에서 다룬 '내용'과 '방법'에서 철학교육의 '원리'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철학교육의 원리)

⑹ 우리에게 철학을 배운 청소년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랍니까? (철학교육의 결과)

2016년 이후, 부설연구소의 연구원으로서 활동했던 시기는 현장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철학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활발하게 상상하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모든 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기의 연구 활동들은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피어오른 불꽃이 아니었을까? 하늘 높이 날아 오른 탓에 태양 가까이서 날개를 잃어버린 이카루스처럼, 현장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학생들과 함께 뒹굴다 보니 연구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4명이나 되는 연구원들을 다시 따로 빼내어 연구원의 역할만을 보장해 주기에는 학교 현장의 일손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렇게 연구소는 이름만 남게 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 기능은 흩어져갔다. 간판만 걸려있던 부설 연구소는 2020년 이후에 문을 닫았다.

2. 2016년~현재 인문반 철학수업 모형, 지혜학교 철학교육의 알맹이

'이상'이라는 모래성을 쌓아 올리면 '현실'이라는 파도가 번번이 와서 무너뜨렸다. 그 사이에 부설연구소는 폐지되고, 당시 함께 했던 연구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떠났다. 나 역시 2년 간 현장을 떠났다가 뒤늦게 돌아왔다(육아휴직). 지금은 혼자 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고 학교 구석 자리에 앉아 '연구와 교육의 필요와 불가능'이라는 역설을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용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철학교육이 좌충우돌하는 와중에도 2016년부터 현재까지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알맹이가 있었는데, 바로 '인문반 철학수업'이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2016년, 수능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학생들 더 나아가, 졸업 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찾아 나가는 학생들이 인문학 집중코스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내가 인문반 수업 편성 작업의 실무를 맡아서 진행했다. 문학·역사·철학을 중심으로 수업을 배치해 봤다. 특히 철학수업에 욕심을 냈다. 철학수업을 주 6시수, 문학을 4시수, 역사/사회 4시수를 배치했다. 그 외에도 다른 진로 수업,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수업들을 배치했다.

한 주에 6시수의 철학수업은 3일에 걸쳐 진행된다. 교재는 무조건 (2차 해설서가 아니라) 철학사에 이름을 올리는 철학자의 '원전 텍스트'이다(이렇게 쓰다 보니, 2012년부터 고집스럽게 '원전 텍스트'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수업은 화·수·목요일 2시수씩, 3일에 걸쳐서 진행된다. 화요일은 텍스트를 읽는 시간, 수요일은 읽은 부분과 관련하여 토론 주제를 만들어서 토론하는 시간, 목요일은 토론 결과를 참고해 자유 주제로 써온 글을 합평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매주 책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쓴 뒤에 피드백을 받고 또 수정해서 제출한다. 인문반 철학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 짓을 1년 동안 반복해야 한다.

올해의 경우, 이 수업의 형식은 6학년뿐만 아니라 5학년까지 확대 적용됐다. 5학년은 매주 화·목요일 각각 2시수씩, 총 4시수의 철학수업을 진행한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교재로 선정해, 첫째 주에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고(2시수) 읽은 부분에서 쟁점을 잡아 토론하며(2시수), 둘째 주에는 4시수 동안 돌아가며 한 명씩 글을 읽고 합평한다.

그리고 3·4학년의 철학수업도 5·6학년의 철학수업의 방식에 따라 새롭게 재구성되었다(이에 대해서도 뒤에 상세히 다룰 것이다). 그러니까, 지혜학교의 철학교육 모형을 다듬어 내는 일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에 4·5학년 학생들이 내 책상 옆에서 재잘대고 있었다. 인문반 철학 수업에 대해 주저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눈을 크게 뜨고 이야기했다.

"여러분, 전국에 어딜 둘러봐도 이런 철학수업은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고3 시기에 철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매주 6시수, 270분의 시간을 배정하는 교육기관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1년 동안 매주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쓰고,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그 피드백 대로 수정하는 공부를 반복하고 나면, 졸업 후에 어떤 문제에 있어서, 쟁점을 찾고, 그 쟁점에 대해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펼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공부는 여러분의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내어 도전하세요."

덧붙이는 글 | - 여기까지 <1부>에 해당하는 글이 마무리되었습니다. 4월 12일(금)부터 <2부>에 해당하는, '인문반 철학수업을 상세히 다룬 글'이 약 5~6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의 글 내용이나, 지혜학교 철학교육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의견을 보내고 싶은 분들은 따로 메일을(choo-kyo@daum.net) 보내주시면 따로 답변드리거나 이후의 글을 통해 답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게시되었습니다.


태그:#광주지혜학교, #철학교육, #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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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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