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세 번째로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기자말] |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명분은 출근길문답으로 상징되는 국민 소통 강화였지만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논란 이후 문답은커녕 기자회견조차 열지 않고 있다.
검찰 출신을 방송통신위원장에, 방송 경험이 없는 신문사 출신을 KBS 사장으로 앉히고 나서야 겨우 생각해 낸 것이 KBS와 단독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였을까. 산적한 현안은 뒤로 한 채 졸지에 대통령실 집들이로 전락한 KBS 미니다큐를 접하고 국민들은 또 한 번 절망했다.
이를 두고 시사인은
'공영방송 KBS의 95분짜리 정치 예능쇼'라고 지적하며 "질문이 마흔 개가 넘었지만 정작 핵심적인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마흔 개 질문은 대통령과 공영방송 앵커의 대담으로 믿기 어려운 처참한 수준이었다. 노동 관련 문답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파우치 문답"을 능가하는 질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노동자 생사 걸린 중대재해처벌법, 야당 발목잡기 든 앵커
박장범 앵커는
"우리 일터의 안전"에 관한 질문이라며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이 됐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국회에 여러 차례 요청을 했다. 50인 이하 처벌하는 거는 좀 늦추자 했는데, 국회 다수당이 민주당이기 때문에 그대로 시행이 됐다. 대통령께서는 왜 중대재해처벌법을 좀 유예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냐'는 요지였다.
대통령 답변의 모순점은 따로 평가할 것이지만 '설 전날 저녁 녹화방송된 대담에서 노동 관련 질문으로 적절한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은 바로 국회 여소야대 상황을 언급하며 "답답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죠"로 이어졌다.
박장범 앵커가 말하고자 했던 본질은 일터의 안전이 아니라 거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사례라고 여겨졌다. 이를 위해 노동자가 죽고 사는 문제를 들었다. 대통령은 민주당의 거부로 중소사업장과 자영업자들이 어렵게 됐다며 "박절한" 민주당 프레임을 만드는 데 답변을 할애했다. 지난해 역대 최악의 1조 7845억 원의 체불임금을 기록한 가운데 제대로 된 언론인이라면 "설을 앞두고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위로와 대책"을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가 높고 범위가 확대되어 있어 기업이 감당하기 어렵고 만약 대표가 구속되면 근로자의 일자리도 잃게 된다"며 처벌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굳이 체불임금보다 일터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응당 "왜 우리나라에선 영세사업장에 산재 사망사고가 집중되는가?" 처벌 수위가 높다면 "지난 2년간 실제 법이 집행된 결과는 어떤가?"를 물어야 할 텐데 다음 질문은 느닷없이 거대 야당 발목잡기로 이어졌다.
노동개혁 기조 전면 부정한 대통령
대통령의 발언은 지금 정부가 표방한 노동개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첫째, 대통령은 입만 열면 강조하는 노사법치주의 근간을 스스로 흔들고 있다. 노사관계의 글로벌스탠다드는 국가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노사자치주의다. 노사법치주의가 공산 전체주의만큼 실체가 모호한 개념임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시행 중인 법을 대통령이 나서서 부정하는 발언을 지속하면 어떤 사용자가 경각심을 가질 것이며 검찰이 제대로 조사하고 기소하겠는가.
둘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역행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고용, 임금, 복지, 사회안전망 등 모든 부분에서 발생하는 격차가 심화하는데, 이제는 죽음마저 차별받는가 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셋째, 처벌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맞는 말이지만 이 발언은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만약 한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가 예방 의무를 다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연간 600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지만, 검찰은 지난 2년간 33건밖에 기소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정부는 올해 고용노동부 정원을 대거 감축하여 "예방이 우선"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고용부 정원 300명 줄었다…"현장업무 어쩌나"부글>(2월 15일 곽용희 기자)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에 최악의 임금체불 단속과 산업안전 분야 예방 활동은 누가 하냐는 공무원들의 하소연을 단독 보도했다.
지난해 최악의 임금체불은 가계소비지출 급감으로 이어져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동네 빵집 주인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최대 고객인 노동자의 임금체불이 더 두려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영훈(민주노총 전 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