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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변 하사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변 하사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 복건우
 
"또 다른 변희수들이 비슷한 좌절을 겪도록 홀로 두고 싶지 않아요." - 박에디 운영위원

오는 6월 '변희수재단(가칭)' 출범을 위한 준비위원회(준비위) 운영위원 중 한 명인 박에디(활동명)씨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성전환 수술을 받았으나 강제 전역을 당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변 하사. 남겨진 이들이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드는 이유는 세상에 수많은 '변희수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겠다는 뚜렷한 목적 때문이다. 

숨가쁜 3년이었다. 2021년 2월 27일 변 하사가 세상을 떠났고, 지난해 12월 준비위가 꾸려졌다. 현재 아홉 명이 준비위에 참여하고 있으며, 변 하사의 순직과 명예 회복뿐 아니라 군 소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은 "변 하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그전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 보자"는 마음으로 뭉쳤다. 

변희수재단은 변 하사 사망 3주기인 2월 27일 사업 설명회를 여는 등 준비 기간을 거쳐 오는 3월 창립총회를 열고 6월 중 공식 발족할 예정이다. 설명회를 하루 앞둔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준비위 활동가 네 명을 만나 변 하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 지난 3년의 소회와 재단의 설립 취지를 물었다.

이들은 변희수재단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커뮤니티", "트랜스젠더 자조 모임에 힘을 불어넣는 기폭제"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노동·의료·교육·주거 등 트랜스젠더가 겪는 총체적 문제에 대응하면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준비위 임태훈(군인권센터 소장)·정민석(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이사장) 공동대표, 박에디 운영위원, 하루 상임활동가가 함께했다.

차별의 악순환 끊기 위해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변 하사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변 하사 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 복건우
 
"변희수재단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또 다른 변희수들의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 정민석 공동대표

변 하사를 떠나보낸 뒤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우선 궁금했다. 그 까닭을 묻자 정민석 공동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변 하사가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가장 가까이서 변 하사를 지켜봐 온 그였다. 그는 "군복을 벗은 '민간인' 변 하사의 삶을 돌아보면서 트랜스젠더 청년 모두가 겪는 어려움을 생각하게 됐다"며 재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희수는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내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고, 일자리를 못 구하니 생활고와 고립감에 시달렸어요. 이처럼 경제적·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 청년들이 많아요. 하지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굉장히 부실하고, 이들을 지원할 기관은 마땅치 않아요. 또 다른 변희수들을 지원해주는 자원으로서 독립적인 법인이나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정민석 공동대표

임태훈 공동대표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변 하사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성 정체성을 이유로 가정에서 쫓겨나고, 학업이 중단되고,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으면서 고립된 상황에 놓인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임 소장은 "성소수자 중에도 가장 심한 편견에 시달리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했다" "재단이 트랜스젠더의 장벽들을 걷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에디 운영위원과 하루 상임활동가는 지정 성별에 따른 외모와 옷차림 등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지정 성별과는 반대의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다. 두 사람은 2022년, 2023년 법적 성별 정정을 마쳤다.
      
성전환 변희수 하사 "훌륭한 여군되어, 나라 지킬 기회 달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지난 2020년 1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성전환 변희수 하사 "훌륭한 여군되어, 나라 지킬 기회 달라"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가 지난 2020년 1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 권우성
 
박에디 운영위원은 지난 2020년 1월 강제 전역을 당한 변 하사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기자회견에 나선 이후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군에 대한 좌절감과 괴로움이 컸을 텐데도 복직이라는 어려운 길을 걸어 나가는 변 하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며 "세상을 향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 군인"이라고 변 하사를 떠올렸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직접 드러낸 트랜스젠더는 제 인생에서 희수가 처음이었어요. 대부분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하지, 희수처럼 '우리가 왜 군인이 되면 안 되냐'고 목소리를 내지는 않거든요. 한국 사회에 정공법으로 맞선 희수의 용기를 생각할수록 희수가 겪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준비위에 참여하게 됐어요." - 박에디 운영위원

하루 상임활동가는 "변 하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트랜스젠더로서 그가 겪었을 문제가 자신의 그것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했다. 의료 트랜지션(성전환 과정)을 거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그는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과거 군 면제를 이유로 차별적 취급을 당했고, 외모와 목소리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해도 지정 성별(여성)과 전환 성별(남성)과 어디에도 쉽게 속할 수 없다는 박탈감과 마주했다.

"변 하사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비통하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사회가 원망스러웠어요. 저도 저이지만 변 하사처럼 직장과 일상에서 삶을 잃고 포기하는 경험을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더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위에 함께하게 됐어요." - 하루 상임활동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루 상임활동가, 정민석 공동대표, 박에디 운영위원.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루 상임활동가, 정민석 공동대표, 박에디 운영위원. ⓒ 복건우
 
재단을 꾸려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재단 설립을 추진하려면 우선 유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 임 소장은 "변희수재단을 만들어 희수의 죽음을 계속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며 변 하사 부모님을 설득했다.

사업 기금도 확보해야 했다. 준비위는 미국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오픈 소사이어티 파운데이션(OSF)'으로부터 초기 사업 자금을 지원받았다. 앞으로 단기·중기·장기 단계별 사업을 잘 안착시켜 트랜스젠더들을 해당 사업과 연계시키고 추가 기금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재단이 풀어야 할 숙제다.

준비위는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추모를 고민하고 있다. 재단 이름에 '변희수'를 넣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 이사장은 "희수를 추모하는 마음을 밑바닥에 두고 출발하려면 재단에 변희수라는 이름이 필요했다"며 "20대 초반 꿈을 찾다가 직장을 잃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평범한 인간 변희수의 모습은 한국 사회 또 다른 트랜스젠더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변희수재단이 그러한 추모를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다른 변희수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일관성 없는 정부 대신해 내놓은 과제들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인정할 수 없다던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트랜스젠더를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자로 변경하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초 면제 대상인 트랜스젠더 여성이 6개월 이상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으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도록 한 것이다.

임태훈 공동대표는 "국방부가 트랜스젠더 군인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를 외면해 오다가 현역 복무 가능 병력이 부족해지니 이들을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자로 끼워 넣었다"라며 "그러면서 변 하사의 죽음 이후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 결과로 '트랜스젠더 군 복무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아예 뚜껑을 덮어버리고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트랜스젠더 군 복무에 대한 정책 일관성이 전혀 없고 그 기준조차 너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변 하사의 순직 역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육군은 지난 2022년 12월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 심사에서 변 하사의 사망을 '일반사망(비순직)'으로 분류했다(군인의 사망은 전사, 순직, 일반사망으로 나뉜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월 변 하사의 순직 재심사를 권고했으나 국방부는 1년 넘게 심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변희수재단은 이러한 트랜스젠더의 군 인권 문제, 그리고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에 맞서 정부와 국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견인해 나갈 예정이다. 이들은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이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트랜스젠더 청년을 위한 학자금 및 긴급생활지원금 지원(단기), 트랜스젠더 자활과 연결되는 공적 추모공간 조성(중기),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젠더클리닉 설립(장기) 등을 계획하고 있다.
 
 군인권센터 등 32개 인권·시민단체가 연대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국방부의 사과와 순직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군인권센터 등 32개 인권·시민단체가 연대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국방부의 사과와 순직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변희수'는 이제 트랜스젠더 인권을 대변하는 이름이 됐고, 그가 남긴 숙제는 재단의 목표가 됐다. 박에디 운영위원은 "재단이 변 하사처럼 '기갑의 정신'으로 평등과 비차별을 향해 나아가려면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며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앞으로 우리 주변에는 제2의, 제3의 희수가 분명 생길 거예요. 군인이 아니라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공무원이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그분들이 희수와 비슷한 좌절을 겪도록 홀로 두고 싶지 않아요. 또 다른 희수들을 맞이할 재단을 위해 여러분의 마음과 힘을 보태주세요." - 박에디 운영위원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바로가기 https://bhsfoundation.or.kr/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만난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루 상임활동가, 정민석 공동대표, 박에디 운영위원, 임태훈 공동대표, 김형남 운영위원이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만난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루 상임활동가, 정민석 공동대표, 박에디 운영위원, 임태훈 공동대표, 김형남 운영위원이다. ⓒ 복건우
 
 

#변희수#변희수재단#트랜스젠더#군대#군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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