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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 속 위인들을 안다고 믿지만 아는 것이란 고작 그 이름 세 글자에 그치는 정도가 아닌지를 의심한다. 한 인간을 안다는 것은 그가 품은 신념이며 살아온 행적, 이룬 업적, 나아가 지극한 인간적 면모까지를 모두 포괄한 무엇일 터인데, 실상 위인을 대하는 방식은 교과서에 적힌 몇 줄의 지식에 그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안중근을 대하는 일도 다르지 않아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투사, 옥중에서 끝까지 당당했던 대한의 아들, 그 이상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작가의 역할을 한두 마디 말로 정의할 수는 없을 테지만 오늘의 독자와 소통하여 이들을 더 나은 지평으로 인도하는 것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김훈의 <하얼빈(2022, 문학동네)>은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한 치열한 발버둥의 결과가 아닐까.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적은 이 작가가 마침내 이 소설을 탈고하기까지 보낸 그 긴 세월은 안중근이란 역사적 인물을 소설 가운데 되살려놓는 일이 그저 한 청춘을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고,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고 말이다. 말을 거는 것은 작가 그 자신이 아닌 이미 죽어버린 안중근이고, 작가는 그를 되살려 오늘의 독자에게 그 말을 전하는 것으로 제 사명을 이룩한 것이다. 소설 <하얼빈>은 안중근과 이 시대 독자의 만남이며, 그로부터 우리가 안중근의 진면목을 한 걸음 이해할 수 있는 드물고 귀한 계기라고 하겠다.
 
하얼빈 책 표지
▲ 하얼빈 책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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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넘어 시대와 역사를 쓰다

소설은 안중근의 이야기며 그가 산 시대의 이야기이고, 마침내 죽기를 선택한 그의 뜻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 시작을 일본과 대한제국의 만남으로 연다. 소설은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을 접견했다'는 건조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본과 대한제국의 현실이다. 도쿄의 황궁에 대한제국의 황태자가 끌려와 있고, 그를 맡아 기르는 건 태자태사의 직위를 받은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다. 일본은 이미 한국을 삼킬 야욕을 드러내고 있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첨병으로 나서고 있음을 소설은 건조한 첫 문단 안에 담아내고 있다.

소설 내내 대한제국은 무너져 내린다. 사지가 묶인 이 무력한 나라는 황제가 내린 교서의 내용이 받을 이에게 닿기도 전에 통감부에 전해진다. 큰일부터 작은 일, 이를테면 해안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경비병의 수와 근무형태까지도 속속들이 통감에게 보고된다. 큰물을 건너고 또 대륙을 가로질러 세상과 닿는 일이 일본에게는 당연한 세상인데, 조선은 여적 수세기 전 힘없는 글귀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의 눈으로 이 소설이 그리는 안중근의 시대를 바라보면 희망이란 보이지 않고 그 안의 삶 또한 비굴하거나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안중근에겐 굳건한 결심이 있다. 스물일곱의 나이, 무작정 상해로 떠났던 그 길의 끝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명성 또한 무너진 채 돌아온 이 청년에게 남은 유일한 게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일본과 이토 히로부미를 깨부숴야 한다는 명확한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빨리, 지금 당장 이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더 배우고 더 가진 이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허황된 일을 도모하지 말고 백년 앞을 준비하라고 말이다. 동북아와 구미 열강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여 내놓은 이들의 이야기를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우리는 안중근이 일제로부터 전토를 유린당하고 마침내 독립을 이루기까지 큰 일을 해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기꺼이 중국으로 떠나 당장의 개선을 도모하였다.

소설은 상해에서, 또 의병이 되어 겪은 안중근의 실패를 냉정히 그려낸다. 상해에선 단 한 명의 동지도 설득하지 못하고, 의병장으로서는 참담한 패배 끝에 부하들의 신망조차 잃고 홀로 귀국하고 마는 것이다. 가진 건 오로지 뜻뿐이었던 청년은 그 뜻이 부러지고 상처를 입은 채로 돌아와 보낸 며칠의 시간을 소설이 그려내는 모습은 제법 인상적이다. 안중근의 뜻은 그에게 가장 큰 안식을 제공했던 곳에서도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탓이다.

안중근은 천주교인이다. 천주교가 아직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던 시절, 그의 집안과 그 모두가 천주교에서 삶의 길을 구했다. 천주교가 말하는 평화는 안중근의 신념이 되었고,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이고 갇힌 감옥에서까지도 동양의 평화를 이야기했던 것이다(<동양평화론>). 그러나 그가 삶의 길과 안식을 구한 조선 땅의 천주교는 그의 뜻도 선택도 평화에의 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와 만난 자리에서 빌렘은 안중근에게, 안중근은 빌렘에게 서로 건네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빌렘은 성호를 긋고 묵상하며 속으로 이야기한다.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고 말이다. 안중근은 화로 속의 재를 쑤시다 그 재 위에서 환영을 본다. '이 세상이 끝나는 먼 곳에서 빌렘이 기도를 드리고 있고, 그 반대쪽 먼 끝에서 이토가 흰 수염을 쓰다듬고 있고, 그 사이의 끝없는 벌판에 시체들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이 그의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것이다.

안중근에게 벌판에 쌓인 시체를 외면하며, 또 침략의 야욕을 숨기지 않는 이토를 살려둔 채로 그저 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기도만 하는 일은 무력한 일이다. 안중근은 '신부님은 여기에 계시렵니까'하는 물음을 속으로 삼키며 인정받지 못하고 허락되지도 않는 하얼빈행을 감행하고야 마는 것이다.

호쾌한 승리 대신 끈덕진 고뇌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소설이 보다 집중하는 건 이토를 죽이기까지 안중근이 넘어서야 했던 압박들이며, 다시 그 뒤로 지켜내야만 했던 뜻이다. 당대의 천주교는 끝내 그를 용서하려 들지 않았고 나라 또한 그를 외면했다. 온 세상이 저를 외면하는 가운데 안중근은 홀로 감옥소 안에서 제 뜻이 틀리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제가 나고 살아온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길임을 다시금 싸워나가야만 했다.

소설이 황해도 산골 마을 성당의 주임신부인 빌렘이 주교의 명을 어겨가며 멀리 여순감옥으로 와 안중근을 면담하기까지를, 또 그들이 끝내 좁혀지지 않는 뜻을 넘어 교감하기까지를, 그럼에도 천주교회가 안중근의 죽음을 제 품 안에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끈덕지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이 소설과 작가 김훈이 지향하는 바가 그저 이토의 죽음이란 사건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안중근의 죽음과 빌렘의 기도, 서로 닿지 않는 사건들로 맺음되는 이 소설은 마지막 장이 덮인 뒤에야 진정으로 끝을 맺는다. 하얼빈 거사를 죄악으로 단정하고 안중근에게 성사를 베푼 빌렘 신부를 중징계한 뮈텔 주교의 이야기며,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미사를 통해서야 가톨릭 교인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추모된 안중근의 이야기, 다시 수년이 흘러서야 민족독립을 위해 싸운 신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잘못을 인정한 교회의 이야기, 그리고 참담하기만 한 안중근 일가며 후손들의 뒷일을 작가는 소설 뒤 짤막한 후기를 통해 빼어놓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 <하얼빈>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거사를 호쾌한 승리의 이야기로 그리지 않는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려 했던 비극을 되살리며, 그럼에도 뜻을 꺾지 않고 마침내 이뤄낸 청년의 이야기를 새겨내고야 만다. 어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안중근과 공범 우덕순이 스스로를 포수이고 무직이며 담배팔이였다고 증언한 사실로부터 이 소설을 쓸 동력을 얻었다는 작가 김훈의 말은 이 소설이 다름 아닌 청년들의 이야기임을,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도모하는 그들에 대한 응원임을 선명히 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하얼빈, #문학동네, #김훈, #소설, #김성호의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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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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