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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있는 학교 식당 조리실 환풍기가 고장났어요. 며칠 동안 설비팀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죠. 덥고 숨차면 돌아가면서 나가서 맑은 공기 쐬고 돌아와 일할 정도였어요. 주말 보내고 복귀한 첫날, 몇몇 조합원들이 쓰러졌어요. 약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어요."

"작업을 중지하고 항의하지 그러셨어요?"


"그래도 돼요? 일을 안 해도 돼요?"

2012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참여한 산업안전보건법 강좌에 가서 이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 작업중지권을 우리 투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 작업을 중단하고, 위험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권리다. 더 나아가면, 안전, 보건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일을 해서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파업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듯이, 일하는 현장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가 작업중지권일 수 있다.

출범부터 노동자의 현장 통제권을 중요하게 생각한 연구소로서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중요한 권리였다.

2006년 연구소 4대 실천 의제 중 '작업중지권 복원'

그래서 2006년 연구소 활동 방향을 담은 4대 실천의제를 설정할 때 '작업중지권 복원'이 포함되었다. 연구소가 작업중지권 복원에 담고 싶었던 것은 '모든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의 현장을 자신과 어울리도록 만드는 권리'였다. 그러나 실천 의제 선언 후에 구체적인 활동이 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현장의 노동조합 활동이 축소되면서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활발히 사용되지 못하니, 사회적으로도 작업중지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기사 검색 서비스에서 한겨레신문에서 '작업중지권'이 들어간 기사를 단순 검색해보면 1996년에 23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사에서 거의 사라졌다가 2013년 이후에야 지속적으로 기사에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6년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작업중지권 조항에, 작업중지를 한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 조항이 들어가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들어간 것 같지만, 당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이를 개악으로 보았다. 지금도 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의 전제처럼 활용되는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로 불이익 처우 금지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법조항에 명문화되면서, 작업중지권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사고 위험으로 협소하게 이해되게 되었다. 이대로 일하면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할 게 분명한 상황은, 분진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데 면 마스크 하나 주고 일을 시키는 상황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아닌가? 실제로 행거에 걸려서 이동하던 수십 킬로그램짜리 물건이 떨어져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사람이 없는 곳에 떨어졌으니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아니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회사도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단체협약 등을 통해 노동자의 작업중지에 조건이나 제한을 두지 못하게 하고 있고, 미국 법원에서도 악의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 이상,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작업을 중지하면 그 판단을 존중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는 작업중지권 사용의 걸림돌이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법 조항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노동자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 한노보연도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노동자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 한노보연도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4년,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

2013년 신문기사에서 다시 작업중지권이 등장한 것은, 12년 만에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파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작업환경이 불량하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겠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연구소도 비슷한 시기에 작업중지권 실현을 투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다시 내세웠다. 2014년 4월 연구소 월례 세미나에 한국지엠에서 작업중지권을 사용했다가 징계를 받은 조합원이 참여해 작업중지권 사용의 현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노동자는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높은 노동강도나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으로 활발히 활용되던 '작업중지권'이 정리해고 경험 이후 현장 통제권이 약화되면서 제대로 쓰이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앞으로 작업중지권 행사 주체가 노동조합으로 확대되고, 노동강도 강화에 반대하는 현장 투쟁과 작업중지권 실현이 만나, 당장의 사고 예방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도 제안해주었다. 이 노동자는 그날 바로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했고, 연구소도 월례토론회를 계기로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을 구성하게 됐다.

당장멈춰팀의 첫 번째 활동은 금속노조 내에서 작업중지권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금속노조 소속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이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에 여기서 출발한 것인데, 금속노조에서조차 작업중지권을 쓰면, 회사가 징계나 손해배상 청구로 대응해 사례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중대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조선소에서는 회사가 나서 노동자들의 '작업 중지권'을 보장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을 쉬어도 급여가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단체협약 상의 작업중지권 조항도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을 그대로 옮겨둔 수준이었고,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을 넘어,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작업중지권을 활용하려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15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실태 조사, 철도 노동자 등 금속 이외 노동자들의 작업 중지권 실태도 찾아보았다. 그 외에 단체협약 분석, 해외 법제도 분석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그 결과를 금속노조 신문인 <금속노동자>에 싣기도 했다.

2년간 준비한 내용으로 2016년 '금속노동자를 위한 작업중지권 매뉴얼'을 발간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 개정안을 마련했다. 2017년 이를 매개로 한 권역별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작업중지권을 한국사회 노동안전보건에서 중요한 이슈로, 구체적 제도 개선 과제로 밀어올린 것은 분명 연구소 당장멈춰팀의 성과였다.

연구소는 세월호 참사, 구의역 사고, 설치 노동자들의 추락사고 등에서 모두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토론회, 언론기고, 인터뷰 등으로 노동자와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작업중지권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전화 끊을 권리 역시, 진상 고객에 대한 대응을 넘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작업통제권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2018년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과정에서 작업중지권이 중요하게 다뤄진 것 역시 연구소 활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자부한다. 여전히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제한되고 있지만, 2018년 산안법 전부 개정을 통해 '노동자의 작업중지'가 별도 조항으로 강조되었다. 사회적으로 산업재해 예방과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작업중지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각인된 것도 중요한 변화이자 소중한 성과다.

이후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으로 중대재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대재해 이후 작업중지 실시와 관련한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나면,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작업 중지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 충분한 예방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다시 작업을 재개하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사고 발생 후 시행된 작업중지가 제대로 의미를 갖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현장 노동자들과 나누고, 작업중지를 멋대로 해제하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현장 활동에 연대해왔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여전히 제대로 된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과제는 많다. 노동조합의 집단적 작업중지가 분명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작업중지권 범위 역시 매우 좁게 해석되고 있다. 위험 평가나 제거에 대해 노사간 합의가 안 될 때 어떻게 노동자 권리와 안전을 보장할 지가 불명확하고,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징계, 손해배상, 법률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산재 사고 발생 시 현장에 있던 다른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왜 안 썼느냐고 따지는 판결도 있었다. 작업중지권이 노동자 책임을 묻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최근 정부가 위험성평가, 자율안전보건관리와 함께 작업중지권을 강조하는 것이 이런 식의 책임전가로 활용될까봐 우려가 크다.

하지만 우리의 권리를 약화시키려 하는 이런 음험한 시도 때문에 작업중지권의 중요성을 주장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작업중지권을 더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권리로 만들어가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때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권리라는 점을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분명히 인식하고, 현장에서 두려움 없이 작업중지권을 사용하여, 사고와 질병을 예방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연구소는 그런 노동자, 노동조합과 언제든 함께 싸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상임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 11월 합본호에도 실립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작업중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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