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말벌 침에 쏘였다. 건물 밖으로 나와 있는 툇마루를 양말을 신은 발로 디뎠는데 하필 거기 있던 말벌이 발에 깔리면서 발바닥을 침으로 찌른 것이다.
순간적으로 압정에 찔린 것처럼 따끔하며 매우 아팠다고 하셨다. 양말을 벗고 보니 침은 남지 않았고 찔린 자리에 구멍만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얼하고 욱신욱신한 느낌이 심해져서 얼음을 한참 대고 있으셨다. 다행히 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산과 들로 야외 활동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더운 여름을 막 지난 9월은 참 좋은 때이다. 햇볕이 따뜻하고 그늘과 바람은 시원하다. 그런데 이때는 벌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이다. 해마다 벌에 쏘이는 환자가 만 3천여 명에서 만 6천여 명 정도 발생한다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8, 9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벌의 독침은 원래 알을 낳는 관이 변한 것이기 때문에 오직 암컷에게만 있다. 벌독에는 약 42종의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메르틴 같은 독소도 포함되어 있다. 일단 벌에 쏘이면 벌독에 혈관이 확장되고 대부분 쏘인 자리가 빨갛게 변하고, 붓고 아프다가 수 시간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꿀벌보다 말벌에 쏘이는 게 증상이 심하기 때문에 둘을 구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꿀벌은 작고 솜털이 많으면서 손톱정도의 크기인데 반해, 말벌은 털이 적으면서 몸집이 꿀벌보다 크고 날쌔다. 또 꿀벌의 침은 갈고리가 있어서 한 번 쏘면 침이 살에 박히고 꿀벌도 죽지만 말벌의 침은 주사기 바늘처럼 생겨서 침도 박히지 않고 말벌도 죽지 않는다.
꿀벌에 쏘이면 가렵고 붓는 가벼운 증상이 대부분이지만, 말벌에 쏘이면 어지럽고, 숨이 차고, 가슴통증 같은 심한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 이것을 알레르기쇼크, '아나필락시스'라고 하는데 2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한다. 대부분 '아나필락시스'는 벌에 쏘인 후 15분 이내에 발생하는데 전신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광범위하게 붓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말벌에 쏘였다면
만약, 지금 나 또는 주변 사람이 벌에 쏘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꿀벌에 쏘였다면 까맣게 점처럼 생긴 독침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손이나 집게로 뽑으려 할 경우 독이 더 들어갈 수 있으므로 플라스틱 카드 같은 납작한 물체로 상처를 한 방향으로 밀면서 독침을 뽑아낸다. 벌침을 제거한 후 소독을 하고 붓기와 통증을 줄이기 위해 얼음찜질을 해 준다. 통증이 심한 경우 진통소염제를 복용한다.
말벌의 경우 쏘여도 독침이 없고 쏘인 곳에 작은 구멍만 생긴다. 하지만 말벌의 독은 꿀벌의 독보다 강해서 바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또 꿀벌이나 말벌에 관계없이 어지럼증, 현기증, 두드러기, 호흡곤란이 있는 경우에도 바로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받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벌은 자신보다 훨씬 큰 존재인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을 위협하거나 집이나 새끼를 공격한다고 느낄 때 나서는 것이다. 꽃에 있는 벌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샴푸나 화장품 냄새, 달콤한 음료수, 아이스크림 냄새가 강하게 날 때, 검은 색이나 진한 색 옷을 입어서 곰이나 오소리로 착각될 때, 실수로 벌집을 건드렸을 때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벌의 공격을 피하고 싶다면 야외활동에 나설 때 향이 강한 화장품이나 샴푸를 사용하지 말고, 단 음식을 자제하며 색이 연하고 환한 옷을 입고, 벌집을 건드리지 않으며 벌이 나타나면 가만히 멈춰 있어서 벌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기원전 26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 왕의 무덤 벽에 왕이 벌에 쏘여 숨졌다는 상형문자가 처음 등장했을 만큼 인간과 벌이 함께한 역사는 길다. 하지만 요사이 벌에 쏘이는 사고가 자주 보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꿀벌보다 말벌 관련 사고에 대한 보도가 많아졌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말벌이 급증해 119 출동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종욱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등은 2012년 과학저널 '곤충 연구'에 실린 논문에서 대도시 말벌 급증 현상에 몇 가지 요인을 이유로 밝혔다.
먼저 도시 확장으로 숲이 줄어든 반면 도시 안에는 공원, 정원, 가로수 등 다양한 녹지가 늘어 말벌이 도시 안에서 둥지를 틀고 먹이를 찾을 여건이 좋아졌다. 주변보다 2∼3도 높은 기온과 잦은 열대야는 말벌의 부화율을 높이고 활동 기간을 늘렸다.
숲에 들끓는 천적과 말벌을 먹이 삼는 기생벌이 도시에는 없고 게다가 음식 쓰레기와 음료 찌꺼기는 좋은 먹이가 됐다. 교외의 자연이 줄고, 도시가 자연화하면서 도시는 말벌의 최적 서식지가 됐다. 결국 말벌의 서식지를 바꾸고 인간과 만날 기회를 늘려서 침에 쏘일 확률을 높인 것은 인간이 해온 행동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인간이 사는 곳에 들어온 말벌을 멸종(!)시켜버리면 어떨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곤충 수업을 하다보면 모기나 파리 또는 말벌 같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곤충은 다 없애버리면 안 되냐는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생태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독침으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는 말벌도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우선, 말벌은 곤충계 최상위 포식자이다. 말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태계의 건강성을 알려 주는 신호이다. 말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태계 먹이사슬을 따라 연결된 고리를 따라가 보면 말벌이 먹는 곤충들(다른 벌 종류, 메뚜기, 파리, 딱정벌레 등)이 그 곳에 풍부하게 있다는 뜻이고 산림해충인 나방 애벌레들이 말벌의 먹이가 되어 조절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 말벌은 꿀벌처럼 꿀을 찾아 먹으면서 식물의 수정도 돕는다. 애벌레를 먹이기 위해 곤충을 사냥하지만 성충은 꽃을 찾아 꿀을 먹는다.
생태계에서 이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말벌을 없앤다는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194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 클리어 레이크에서는 관광객을 불편하게 하는 날파리를 없애려고 살충제를 뿌렸다.
하지만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날파리는 계속 생겨났고 사람들은 더 강한 살충제를 사용하기를 반복했는데, 결국 이 날파리를 먹는 물고기와 그 물고기를 먹는 논병아리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생명의 그물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만을 건드려 문제를 해결하려한 어리석은 인간의 행동은 엉뚱한 피해를 낳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상할 수 없다.
말벌과 함께 살기
벌에 쏘였던 그 선생님은 그 날 하루 조금 욱신거리다 다음날은 괜찮아지셨다. 여기 지역말로 벌침에 쏘이고 많이 아프거나 붓거나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을 '벌을 탄다'고 하는데 다행히 선생님은 벌을 타지 않는 체질이셨다. 증상이 사라진 뒤 선생님은 자신이 밟은 벌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자신이 부주의하여 일어난 일이라 그 벌도 날벼락이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주의해야겠다고 하셨다.
지구의 생명체 중 거의 막내로 태어난 인간은 아직 생태계에 대해 잘 모르면서 너무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다. 앞으로라도 생태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좋지 않을까? 말벌도 좋고 우리도 좋은 길을 찾아야 한다.
우선, 말벌이 있을 만한 곳에서는 자극하지 않도록 하고, 말벌이 살 만한 공간들은 그들의 공간으로 내버려 두어야 하겠다. 혹시 우리의 주거지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미리미리 체크하여 말벌의 집이 커지기 전에 포기하게 만들어야겠다. 결국 다양한 생명체들과 하나뿐인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