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걱정한 뉴질랜드 전직 총리 "그건 끔찍한 일"

[정치신대륙을 찾아서①-1] 선거개혁 이정표 세운 제프리 파머 "민주주의 계속 고쳐야...참여하라"

대결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는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요? <오마이뉴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국민투표로 선거제도를 바꾼 뉴질랜드, 선호투표제로 사표를 막는 호주 두 '정치신대륙' 탐방에 나섰습니다. [편집자말]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뉴질랜드 총선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총선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제1투표'와 지지 정당을 뽑는 '제2투표'로 1인 2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구 72석(지역 65석+마오리족 대표 7석), 비례대표 48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다만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도 있다. ⓒ 유성호

아오테아로아(Aotearoa), 길고 하얀 구름의 땅이라는 뜻으로 뉴질랜드를 가리키는 마오리어다. 1642년 이곳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여느 정복자들처럼 선주민과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오랜 충돌 끝에 1840년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이 맺어지면서 백인과 마오리족은 불완전하게나마 손을 잡는다. 그 정신은 공공장소 어디에나 있는 '영어-마오리어' 병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통합과 관용의 정신은 선거제도에도 담겨있다. 현재 뉴질랜드는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representation, MMP)에 따라 120명(지역구 65명+마오리족 대표 7명+비례대표 48명,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 발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유권자가 한 표는 정당에, 다른 한 표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득표율에 연동해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가령 A당이 30%를 득표했을 경우 이 정당이 지역구에서 24석만 확보했다면 A당은 추가로 비례대표 12석을 가져간다. 다만 전국 득표율이 5% 미만이거나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면 비례의석을 할당받지 못한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1990년대에서야 MMP를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1표라도 많은 후보가 당선하는 단순다수대표제였고, 그 결과 의사당 안에는 사실상 국민당과 노동당만 존재했다. 1978년 사회신용당은 16%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겨우 하나뿐이었다. 1984년 12%의 지지를 받은 뉴질랜드당은 아예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거대정당인 노동당 또한 국민당보다 더 많이 득표하고도 더 적은 의석을 차지하는 일을 겪었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에 분노했다.

하지만 개혁을 향한 열망이 '끓는 점'에 쉽게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오마이뉴스>는 늘 '선거제도 개혁의 모범사례'로 꼽히며 매년 '선진민주국가'로 평가받는 뉴질랜드가 어떻게 100℃를 넘겼는지 알기 위해 전직 총리, 제프리 파머(Geoffrey Palmer)를 한국 언론 최초로 만났다.


의회 무력화, 거대 양당 독점... "우리도 똑같았다"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 법학교수 시절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그는 정치에 입문한 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설립을 주도, 뉴질랜드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 유성호





"정말인가? 흠, 과거 뉴질랜드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7월 4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의 한 연구실, 백발이 성성한 파머 전 총리가 '한국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다들 무관심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1979년 저서 <무소불위의 권력?(Unbridled Power?)>에서 왜곡된 선거 결과가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무력화했고, 거대 양당만 의석을 독식하게끔 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파머 전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지역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부총리 겸 법무부 장관을 거쳐 1989~1990년 총리를 지냈다.

노동당은 1978년과 1981년 선거 모두 득표율로는 1위였지만 국민당에 의석 수로 밀렸다. 단순다수대표제의 피해자였던 이들은 1984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고, 선거 승리 후 법무부 장관이 된 파머는 그간 주장해온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구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이 달라지자 노동당 역시 입장이 달라졌다. 당 내부에선 '위원회를 꼭 꾸려야 한다면 전직 의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파머 전 총리는 위원회가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으리라고 봤다. 그는 내각에서 추천한 이들을 거부했다. 그 덕에 위원회는 존 월러스(John Wallace) 판사, 정치학자 리처드 멀건(Richard Mulgan) 교수, 헌법을 전공한 케네스 키스(Kenneth Keith) 교수, 전직 정부 통계학자 존 다윈(John Darwin) 박사, 마오리족 대표인 여성 훼투마라마 훼레타(Whetumarama Wereta) 등 독립성과 다양성을 갖춘 위원들로 꾸려져 1985년 출범한다.

1986년 12월 왕립위원회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하여(Toward a Better Democracy)>라는 보고서를 내며 ①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② 의석 수 확대(99석→120석) 여부를 ③ 국민투표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반대했다. 파머 전 총리는 "노동당 의원 중 찬성하는 이들은 8, 9명 정도였다"며 "1987~1990년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노동당은 1989년 '의석 수 확대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 반대'라는 입장도 정했다. 국민당도 다르지 않았다.


개혁 외면한 정치인, 꼼수 거부한 국민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에서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여성의 정치 진출이 활발한 나라이다. 지난 2022년 뉴질랜드 하원의원 성별 구성이 여성 60명, 남성 59명으로 여성 과반이 됐다. ⓒ 뉴질랜드 의회 홈페이지 갈무리

개혁을 외면한 정치인들과 달리 유권자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직시했다. 왕립위원회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뉴질랜드 사회에선 선거제도 개혁을 주제로 하는 토론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지자 전환점이 생겼다. (대중에게) 의제를 던져 (그들이) 토론하게끔 해야 한다. 또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꽤 좋은 논거가 있어야 하는데, 왕립위원회 보고서에는 명료한 논거들이 담겨 있었다. 이 보고서가 없었다면 개혁은 불가능했다."

뉴질랜드 선거개혁의 또 다른 특징은 '국민투표'다. 한국의 선거제도 개편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치인의 손에 이뤄졌다. 파머 전 총리는 "대부분의 나라가 그럴 텐데, 뉴질랜드는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라며 "1857년부터 의원내각제이고, 1879년 모든 남성에게,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국민들이 투표해야 하고, 그래야 정부가 정당성을 갖는다"며 "이것이 뉴질랜드의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왕립위원회도 이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파머는 "선거제도 개혁은 큰 변화라 대리인(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며 "그게 더 민주적"이라고 설명했다. 양당은 여전히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노동당 데이비드 랑이(David Lange) 총리가 1987년 총선 과정에서 '재집권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원고를 잘못 읽고, 국민당이 노동당 견제를 위해 1990년 국민투표 실시 공약을 내걸면서 국민투표는 양당의 약속이 됐다. 그러나 집권 후 국민당 역시 돌변했다. 어렵게 이 사안을 끌고 온 파머 전 총리마저 정계를 떠난 상태였다.

꺼져가던 개혁의 불씨를 되살린 이들은 시민이었다. 1986년 출범한 시민단체 'ERC(Electoral Reform Coalition)'도 그 중 하나다. 파머 전 총리는 "ERC는 변화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분위기를 바꿨다"며 "아주 좋은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결국 국민당 정부는 여론을 수용했다. 하지만 1992년 선거제도 개혁 찬성 여부와 어떤 대안을 원하는지를 묻고, 1993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MMP와 기존 선거제도 중 선택하라는 식으로 투표를 복잡하게 설계했다.

국민들은 '꼼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1차 국민투표 결과 선거제도 개혁 찬성 의견은 84.7%, 선호하는 투표제도 1위는 70.5%의 지지를 받은 MMP였다. 이듬해 2차 투표에선 MMP는 유권자 53.9%의 선택을 받았다. 1차 투표 당시 55.2%였던 투표율도 2차 때는 85.2%로 치솟았다. 2011년 국민당 정부는 또다시 MMP를 흔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번에도 MMP를 택했다. 'MMP를 위한 캠페인'으로 재출범한 ERC도 거들었다.

"당시 MMP를 포기했다면, 우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시대로 퇴행했을 것이다. …(중략)… MMP는 거대양당의 독점체제를 타파했다. 이제 권력은 과거보다 더 많이 나눠지고 있으며, 주요 정책을 채택하기 전에는 더 많은 토론과 협상이 있어야 한다." - 제프리 파머, 2013년 발간한 회고록 <개혁(Reform)> 중에서



"무관심은 재앙으로... 참여가 민주주의 본질"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가 7월 4일 뉴질랜드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과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10년이 흘렀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없다. 파머 전 총리는 "제가 의원이 됐을 때만해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의회를 지배했다"며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 안에 존재하고 소수자들이 더 대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제도가 바뀐 뒤 뉴질랜드에선 꽤 오랫동안 과반을 넘긴 정당이 나오지 않다가 2020년 처음으로 노동당이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현재 의회는 노동당 64석, 국민당 34석, 녹색당 10석, 뉴질랜드 행동당 10석, 마오리당 2석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파머 전 총리는 "뉴질랜드 민주주의 또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민주주의를 계속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질랜드는 이슬람사원 테러, 코로나19 등을 겪었다. 우리는 이 모든 도전을 뚫고 나갈 정부를 필요로 하는데 이 일은 선거제도에 달려 있다"며 "선거제도는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또 "뉴질랜드와 한국은 다르다"면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MMP는 단순다수대표제보다 대표성 면에서 월등히 나은 제도"라고 얘기했다.

1942년생 파머는 여전히 개혁을,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꾼다. 그는 지난해 손녀와 함께 <뉴질랜드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otearoa New Zealand, Aotearoa는 뉴질랜드 지명을 뜻하는 마오리어)>란 책을 썼다. "사람들에게 정부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파머 전 총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남으려면(To survive in democracy)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사람들을 재앙으로 이끈다. 끔찍한 일이다. 참여해야 한다. 동네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당신이 원하는 것 또는 싫어하는 것을, '내가 유권자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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