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현실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병무청은 여전히 무책임하고, 국회는 사회복무요원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실은 척박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제 아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가 바뀌고 현실이 바뀔 때까지 힘내서 싸워가겠습니다."
22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청년유니온,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18개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고 최준 사회복무요원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복무 입법대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오늘은 고 최준 사회복무요원이 21살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째 되는 날"이라고 말한 후 "그러나 7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회복무요원의 삶은 제도적으로도 실제로도 달라지지 않았다. 매년 평균 10명 이상의 사회복무요원이 자살을 한다. 괴롭힘을 경험한 사회복무요원 4명 중 1명(28%)이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복무요원'이란 병역법에 따른 신체검사에서 1~3급 현역 판정이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청년들을 뜻한다. 이들은 1년 9개월간 관공서, 학교, 요양원, 아동복지시설 등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복무해야 한다. 이는 국제법상 '강제노동'으로 특히, 잉여 징집병의 비군사분야 활용을 금지한 ILO 29호 협약(강제노동 금지)에 위배된다고 지적돼 왔다(관련기사:
사회복무요원들에게도 노동조합이 있다 https://omn.kr/1yd6b).
고 최준 사회복무요원은 지난 2016년 당시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를 했다. 이곳은 대법원과 서울중앙지검 등이 위치해 있어, 사회복무요원들 사이에서 민원인들의 태도가 고압적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반복적인 폭언 피해를 입은 고인은 그해 4월경 담당 공무원에게 "민원인의 폭언으로 자살을 고민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복무 환경이 달라지지 않자 고인은 주민센터를 빠져나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담당 공무원의 신고로 구조됐다.
이후 한동안 민원 업무에서 빠지게 된 고인은 그해 6월 22일 민원 업무를 보던 다른 사회복무요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금 민원 업무를 지시받았고, 또다시 폭언 피해를 입었다. 직후 복무요원 카드를 던지고 주민센터를 빠져나간 고인은 이틀 뒤인 6월 24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업무 감수"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인의 어머니 최명희씨는 "제 아들이 서초구청에 제출한 신상명세서에는 대인기피증이 있고 장기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쓰여있었다"면서 "제 아들은 민원응대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들은 해보면 괜찮아질 거라며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있는 아들을 배려하지 않고 업무를 주었다. 제 아들은 강제적으로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최명희씨는 "이처럼 수많은 아들들이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업무에 대해서 거부하지 못하고, 제 아들처럼 4급 판정 사유와 배치되는 업무를 하고 있다"며 "저는 아직도, 몸이 아프지만 센터 후임이 반차를 내서 출근해야만 한다며 출근하던 아들의 마지막 출근길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픈데 무슨 출근이냐고, 출근하지 말라고 말릴 걸 그랬다"고 말했다.
사회복무 중 '복무기관 재지정 불승인' 피해를 입은 현직 사회복무요원 이진훈씨는 "사회복무를 수행하면서 대인기피증이 발병해 3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며 "더 이상 지금의 복무기관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지정을 신청하자 병무청 복무지도관은 이 정도로는 재지정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사회복무요원의 자해 사진을 '샘플'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진훈씨는 "저는 지금의 복무기관으로 출근하면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며 "병역의무를 이행한다는 자부심은커녕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 정도로 자존감이 깎이고 있다. 복무기관 직원들은 사회복무요원들에게 반말로 지시하며 하대하고 있고, 물걸레질, 새똥 청소, 벌레 사체 청소 등 자기들이 하기 싫은 일을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발언에 나선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는 "사회복무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4급 판정 사유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인해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도, 근무지에서 업무를 지시하면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데 있다"며 "사회복무요원이 현역병이 되지 못한 이유는 질병 때문에 현역병 근무가 불가능하다는 국가적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근무지 측이 그 같은 국가적 판단을 무시하고, 질병에 대한 고려 없이 근무지를 배정하고 업무를 주는 것이 현재 사회복무요원 다수가 처한 열악한 조건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모든 사회복무요원의 안전복무를 위한 병역법 개정안'이 발표됐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희중 조합원은 "사회복무요원들의 안전복무를 위한 대안 입법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라며 ▲ 4급 판정을 받은 사유와 관련된 업무지시에 대한 거부권을 법률에 명시할 것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법률에 명시할 것 ▲괴롭힘 등으로 도저히 근무를 이어갈 수 없는 사회복무요원에게 복무기관 긴급 재지정권을 부여할 것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날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들은 오후 1시에 한강 반포대교 북단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연대굿을 진행했다. 이곳은 7년 전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다. 연대굿이 끝난 이후에는 추모 행진이 진행됐다. 오후 2시에 신논현역 7번 출구에서 시작된 추모 행렬은 고 최준 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관이었던 서초구청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