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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2시경 주변 상황. 마치 카메라 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사방이 노랗게 변했다.
 7일 오후 2시경 주변 상황. 마치 카메라 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사방이 노랗게 변했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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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거주지는 미국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뉴욕주 롱아일랜드 주택가다. 캐나다 산불 연기가 건너오면서 공기 오염 '경계경보'가 뜨기는 했지만, 시내 외곽이라 그런지 지난 6일(현지 시각) 정오를 지날 때만 해도 심각함을 느끼진 못했다. 살짝 걱정되는 마음에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챙기라고 일러줬지만, 아이들은 학교 체육 시간에 별 주의 없이 운동장에서 수업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선 겨울이 다가오면 벽난로를 가진 이웃들이 땔감을 때곤 한다. 처음엔 가볍게 코를 훑고 지나가는 땔감 냄새 정도였던 공기가,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기상주의보 때문에 학생들의 오후 클럽 활동들이 취소되거나 일찍 마무리됐다.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보니 매캐한 연기 때문에 고등학생들도 소매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예상보다 급속히 나빠진 상황에 소형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수건을 대주고 있었다. 

다음날인 7일,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여느 섬이 그렇듯 롱아일랜드 또한 대서양 바닷바람에 구름의 이동도 잦고 바람을 늘 끼고 산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이날엔 바람이 없었다. 안개가 아래로 내려앉은 듯 뿌연 시야 속을 뚫고 등교·출근을 했다.

코로나 시국에 인기가 높았던 KF94 마스크가 이번에도 한몫을 한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지난해 넉넉히 보내준 덕에 여분이 있었다. 혹시 마스크가 있느냐 묻는 이웃에게도 몇 개 드리고, 이웃 중에 연세가 있는 어른들께도 찾아가 드리고, 야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웃에게도 마스크를 나눴다.

연로하신 미국 어른들은 아직 한국이 낯선 탓인지 한국 상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그래서 '한국은 계절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영향으로 초미세먼지도 걸러주는 마스크를 아주 잘 만든다'고 따로 설명해 드렸다. 의료진들도 쓰는 KF94가 혹시 숨쉬기 어려우실까 봐 KF80도 따로 챙겨왔다고 했더니, 그제야 '땡큐!' 한 마디를 하며 받으신다.

이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오후에 근무를 가는 아들이 오전 근무자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몰에 있는 공기 필터가 소용이 없다며 실내도 매캐한 공기가 가득하다는 답이 왔다. 마스크를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여러 명이 부탁하며 고맙다고 했다.

노랗게 변한 세상... 야외 활동 전면 취소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중부 지역 하늘이 노란 연기로 뒤덮여 있다.
▲ 짙은 노란색 연기로 뒤덮인 고속도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중부 지역 하늘이 노란 연기로 뒤덮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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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2시께, 온 동네가 카메라 필터를 끼운 것처럼 노랗게 변했다. 화성에 있는 듯 칙칙한 오렌지색으로 변한 하늘에 흔적만 보였던 해가 10여 분 뒤엔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학생들의 야외 활동과 오후 클럽 활동이 전면 취소됐다.

동네 공립 도서관도 오후 3시가 되자 문을 닫았다. 시간마다 오던 쓰레기 수거도 취소·지연됐다. 목을 아리게 하는 매캐한 냄새도 괴롭지만, 재난영화 속 한 장면같이 어둡고 노랗게 변한 풍경이 섬뜩했다. 스쿨버스에서 내린 고교 아이는 냉큼 집까지 뛰어왔다. 고등학생도 이런데, 옆집 어린아이들은 어떨까. 실제로 과거 코로나 때도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던 동네 사람들이 이 즈음엔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그저 안개가 조금 짙은 정도였지만, NYC(뉴욕) 시내와 뉴저지, 맨해튼으로 출근했던 지인들은 자동차 앞 시야가 흐려 운전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 탓인지 동네 매장에는 소형 공기 청정기는 물론, 알러지와 기관지 관련 약품과 피부 연고 종류의 상품들이 거의 다 팔리고 소량만 남았다.

8일 오전, 드디어 해가 조금 비친다. 하루동안 쌓인 것이라 하기엔 제법 뿌옇게 내려앉은 차량 위 먼지들을 주민들이 몇 번씩 닦아 내고 있다. 학교 학부모 소셜미디어와 지역주민 게시판에는 야외 재배 텃밭 농산물 관리와 반려동물 관리에 대한 정보가 수많이 올라왔다. 이곳 미 동부는 이틀 정도 불편을 겪었지만, 캐나다는 산불로 인해 12만 명 이상이 대피 중이라며 캐나다를 걱정하는 글도 여러 개 있었다.

대기 오염 경보는 9일 자정까지 발효돼 있는 상태다. 호흡기 질환자들을 위한 핫라인 안내도 받았다.

지난 겨울, <뉴욕타임스>에는 '뉴욕의 눈은 다 어디에 있나'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이 지역은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지난 2월 말 한 차례 눈폭풍을 겪긴 했지만, 강설은 드물었다. 기후 변화는 생태계에서도 감지된다. 그 많던 벌, 무당벌레, 개똥벌레 같은 개체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제 국경 넘어 대형 산불로 인한 영향까지 받고 보니, 기후 변화로 인한 일들은 드물게 마주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개인의 마스크로는 감당할 수 없는 더 위험한 상황이 잦은 주기로 찾아올 것만 같은 불안도 생긴다. 당국의 좋은 정책과 함께 시민들의 지혜와 힘이 모이길 바란다.      
 
오후 2시 주변 상황. 태양이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십여분 뒤에는 흔적마저 가려졌다
 오후 2시 주변 상황. 태양이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십여분 뒤에는 흔적마저 가려졌다
ⓒ 장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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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뉴욕, #산불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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