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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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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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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기후톡파원의 제보를 받았다. 경기도의 한 급식 현장에서, 학교 급식을 담당하는 영양선생님들과 친환경 오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오이 맛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오이 끝맛이 살짝 써요."
"요즘 날씨가..."
"그래도 아이들이 싫어하는데 어떻게 해요."


결국 '급식 메뉴에서 오이를 빼야 하는지' 논쟁하면서, 대화가 갈등으로 번져나갔다는 내용이었다. 자체적으로 알아봤더니 오이 맛이 살짝 써진 게 경기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인 것 같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오이가 쓴 이유, 농부에게 물어보니 

오이 끝맛이 살짝 써졌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경기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과 대화를 나눠봤다. 충남 서산에서 17년째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전량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부회장, 그에게 오이 맛 논쟁을 말했더니 대뜸 첫 마디부터 '기후'를 언급했다.

"자연생태계에서 (오이 농사는) 기후의 (영향을 받습니다)... 오이가 물을 많이 흡수하는 (박과 작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물면 오이 맛이 써졌다가 비가 많이 오면 오이 맛이 또 비려질 수밖에 없어요. 오이의 특성이에요.

기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작물마다 달라요. 지난 겨울에는 토마토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갑자기 추워져서 약간 아린 맛이 날 수도 있어요. 또 여름이 되면 가물고 더울 때는 오이가 항상 써요, 끝이. 참외도 달기는 한데 어린 참외는 써지죠. 꼭지있는 곳이. 어쩔 수 없어요." 


원래 그렇다? 농민의 말은 과학적 해석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오이와 참외 같은 박과 식물들은 긴 가뭄이나 여름철 무더위에 대개 양쪽 꼭지 주위에서 쓴맛이 난다. 쓴맛의 원인은 '쿠쿠르비타신'(cucurbitacin)이라는 스테로이드 계열 물질로, 해충이나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수단이다. 오이, 멜론, 수박, 참외 등의 설익은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함량이 적기 때문에 먹어서 쓴맛까지 느끼지는 않는데, 일부 쓴 맛에 민감한 분들과 어린이들이 느끼고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기후에 민감한 오이 맛, 참외 맛... 그런데 요즘엔 온실재배를 하는데 날씨에 그렇게까지 민감할까 궁금했다. 전량배 농민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우스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물을 주지 않습니까? 아무리 하우스 안에 들어갔다고 해도 주변에 습도가 높으냐 적으냐에 따라서 (작물의 맛이) 달라요. 장마철에는 오이가 잘 열리지도 않아요. 습기가 많으니까 꽃을 떨어뜨리죠."

기후에 민감한 채소 맛. 그렇다고 해서 쓴맛이 난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이건 기후변화 때문이니까 그냥 꾹 참고 먹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혹시 '오싫모'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란다. 오이 특유의 쓴맛과 향이 싫어서 오이를 안 먹는 사람들이 있다. 유전학자들은 이분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쓴맛에 민감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의 염색체 7번에 위치하는 특정 유전자(TAS2R38)의 종류에 따라 '쓴맛에 민감한 사람'과 '쓴맛에 둔감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어요. 오이의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특성상 쓴맛에 민감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송준섭 과학칼럼니스트의 언론 기고문, 2017년 6월 14일)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는 진화가 잘 돼서 쓴맛에 민감하다고 해석하는 유전학자도 있는 만큼 '오이맛이 쓰다', '참외가 쓰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한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쓴 커피와 친해지는 데에 약간의 설탕이 필요하듯, 좋은 채소인 줄 알면서도 쓴 맛 때문에 기피하는 아이들을 위한 좀 다른 레시피도 필요해 보인다.

농부가 계속 '기후변화'에 대해 말하는 이유 

전량배 농민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하자는 부탁의 말이었다. 

"저도 직거래를 하는데 서로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요즘에 계속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데, 기후 영향에 따라서 농산물 작황이 엄청 안 좋아지고 맛도 변하고 있거든요. 이거에 대해서 이해하고 (농민과 도시소비자들이) 기후변화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이 맛이 달라지고 있다. 여름의 대표적인 과일인 수박도 폭우가 내리면 당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런 현장의 변화를 이해했으면 한다. 그렇다고 쓴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여서도 안 될 테지만, 학교 급식 현장에서 채소 맛이 왜 달라지고 있는지 솔직히 말하며 함께 방법을 찾아 보면 어떨까. 살아있는 밥상머리 기후교육이 되지 않을까. 전국의 농민들과 급식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2023년 6월8일 (목) OBS 라디오의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매일 오전 11시~12시)를 통해 방송됐으며 방송 내용 다시보기는 OBS 라디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기후변화, #오이맛, #학교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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