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개봉했던 스칼렛 요한슨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 <아일랜드>는 당시 세계적인 사회문제이자 인류의 미래로 논쟁이 많았던 복제인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마이클 베이 감독의 역작이었다. 하지만 1억26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아일랜드>는 북미 3580만 달러, 세계적으로 1억6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에 그치며 마이클 베이 감독의 몇 안 되는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흑역사' 중 하나가 된 <아일랜드>도 유독 한국 관객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아일랜드> 개봉 당시 한국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개발 이슈로 복제인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고 이는 <아일랜드>의 343만 관객 흥행으로 이어졌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물론 스케일이 큰 마이클 베이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한국 관객들과 잘 맞았던 이유도 있었다.

이처럼 제작국가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영화도 유독 특정국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할 때가 있다. 특히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명량>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쟁쟁한 경쟁작들에 밀려 국내에서 많은 개봉관을 잡지 못했음에도 오직 입소문으로 전국 346만 관객을 동원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은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이다.
 
 국내에서 두 번이나 재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북미보다 한국에서 더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두 번이나 재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북미보다 한국에서 더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판씨네마(주)

 
음악과 연기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음악영화들

러셀 크로우와 앤 헤서웨이 주연의 <레미제라블>처럼 원작 뮤지컬이 있는 영화나 휴 잭맨 주연의 <위대한 쇼맨>, 엠마 왓슨 주연의 <미녀와 야수> 실사판 같은 뮤지컬 영화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제작이 수월하다. 스토리의 아쉬움을 음악이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음악과 연기, 어느 한 쪽이라도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음악영화 중에서 관객들의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영화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과 퀸의 리더였던 천재 뮤지션 프래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2018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9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국내에서도 천만 관객에 육박하는 994만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보헤미안 랩소디>는 '싱어롱'이라는 특별관을 유행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라고 구분하는 관객도 있고 멜로 영화라고 구분하는 관객도 있지만 2016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과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라라랜드>도 크게 성공한 음악영화 중 하나다. 영화도 4억4700만 달러의 성적을 거두며 크게 흥행했고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 City of Stars >를 비롯해 세계적인 뮤지션 존 레전드가 부른 < Start a Fire > 등이 수록된 OST도 상당한 명반으로 꼽힌다.

보는 관객에 따라 음악영화가 되기도 하고 스릴러 영화가 되기도 하는 데미언 샤젤 감독의 <위플래쉬> 역시 단 330만 달러의 제작비로 49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을 정도로 '가성비'가 매우 뛰어났던 음악영화다. 특히 셰이퍼 음악학교의 교수이자 학교 재즈 밴드의 지휘자 테런스 플레처 교수를 연기한 배우 J.K. 시몬스는 엄청난 열연을 펼치며 2015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동명의 한국 드라마가 원작인 미드 <굿 닥터>로 유명한 영국배우 프레디 하이모어가 소년 시절에 출연했던 <어거스트 러쉬>도 국내에서 유난히 사랑 받았던 미국의 음악 영화다. 실제로 한국의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비 일부를 투자하고 국내 배급을 맡은 <어거스트 러쉬>는 국내에서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세계흥행(6600만 달러)의 23%를 책임졌다(<어거스트 러쉬>에는 한국가수 타블로와 배우 구혜선이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만큼 사랑 받았던 <비긴 어게인>의 OST
 
 키이라 나이틀리는 영화에 수록된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소화하며 색다른 매력을 뽐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영화에 수록된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소화하며 색다른 매력을 뽐냈다. ⓒ 판씨네마(주)

 
과거 뉴욕에 힙합 열풍을 일으켰던 천재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 분)은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회사에서 해고통보를 받고 허탈한 마음에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 여성 작곡가가 부른 노래를 듣게 된다. 남자친구를 따라 뉴욕으로 왔지만 음반사 직원과 바람이 난 남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허름한 바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지만 썰렁한 반응에 더욱 기운이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댄은 그레타의 노래를 듣고 깊은 감동과 함께 뮤지션으로서 그레타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녀에게 음반취입을 제안한다. 하지만 애초에 가수지망생이 아니었던 그레타는 그 흔한 데모 테이프 하나 없었고 전날 댄을 해고한 음반사 대표 사울(모스 데프 분)로부터 딱지를 맞는다. 그레타에게 계약금을 줄 돈은커녕 데모 테이프를 만들 녹음실을 빌릴 돈도 없었던 댄은 뉴욕의 거리를 녹음실 삼아 음반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댄과 그레타는 클래식을 지루해하는 남매에게 현악기 연주를 맡기고 동네 꼬마들에게 용돈을 주며 코러스를 시켰다. 그리고 과거 댄이 프로듀싱했던 유명 힙합 뮤지션을 찾아가 드럼과 베이스 연주자를 구했고 취미로 기타를 치던 댄의 딸 바이올렛(헤일리 스테인펠드 분)도 기타세션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앨범을 완성했고 댄과 그레타는 자신들의 인생을 '다시 시작(Begin Again)'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비긴 어게인>은 지난 2015년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더빙에 도전했다. 일각에서는 '<무한도전>이 성우들의 밥그릇마저 빼앗는다'고 비판했지만 사실 <무한도전>의 더빙도전은 성우라는 직업을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전업 성우들은 멤버들의 멘토로 참여했을 정도로 <비긴 어게인> 더빙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했고 <비긴 어게인-무한도전 더빙판>은 MBC에서 2015년 추석특선영화로 방영됐다.

<비긴 어게인>은 음악영화인 만큼 영화에서 음악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키이라 나이틀리는 OST에 수록된 6곡에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다만 대부분의 음악영화에서 영화 후반 주인공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달리 <비긴 어게인>에서는 그레타의 전 남친 데이브(애덤 리바인 분)가 영화 후반 노래를 책임진다. 그리고 데이브가 부른 주제가 < Lost Star >는 국내에서 마룬파이브의 히트곡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룬파이브' 애덤 리바인이 왜 거기서 나와?
 
 인기 록밴드 마룬파이브의 메인보컬 애덤 리바인은 <비긴 어게인>에서 그레타의 전 남자친구 데이브를 연기했다.

인기 록밴드 마룬파이브의 메인보컬 애덤 리바인은 <비긴 어게인>에서 그레타의 전 남자친구 데이브를 연기했다. ⓒ 판씨네마(주)

 
지난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HOT100차트에서 무려 7주 연속 2위에 올랐지만 끝내 한 번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는 서지 못했다. 마룬파이브의 < One More Night >이 무려 9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번번이 싸이와 <강남스타일>의 앞을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2년 첫 정규음반을 발표한 마룬파이브의 메인보컬 겸 리드기타 애덤 리바인은 이듬 해 <비긴 어게인>을 통해 '정극배우'로 데뷔했다.

애덤 리바인은 <비긴 어게인>에서 그레타의 남자친구이자 영화에 삽입된 OST가 히트하며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가수 데이브 콜을 연기했다. 데이브는 음반사의 직원과 바람이 나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를 그레타에게 들려주는 뻔뻔함을 보이지만 결국 그레타를 잊지 못하고 공연에서 그녀가 선물한 노래 < Lost Star >를 부른다. 하지만 그레타는 데이브의 노래를 들은 후 옛 연인 데이브가 아닌 함께 음반을 만든 댄을 찾아갔다.

댄에게는 바이올렛이라는 사춘기 딸이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레타와 친해지면서 그레타의 음반에 기타세션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 건물 옥상에서 멋진 기타솔로 연주를 선보인다. 댄의 외동딸 바이올렛을 연기한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미국의 배우 겸 가수로 영화 <범블비>의 찰리 왓슨 역과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호크아이>의 케이브 비숍 역으로 얼굴을 알리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비긴 어게인 존 카니 감독 키이라 나이틀리 애덤 리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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