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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묘지 모습
 공원 묘지 모습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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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한 인간의 역사는 만남의 역사이면서 헤어짐의 시간이다. 6월을 앞둔 어느 날 사촌 동생과 조카를 만났다. 작년에 돌아가신 고모의 봉안당을 함께 참배하기 위함이었다.

나에게는 고모인, 동생의 어머니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무렵 입원 중인 병원에서 갑자기 세상과 이별했다. 고모의 얼굴을 뵌 것은 적어도 3년 전의 일이었고 조만간 당신이 가시고 싶은 절을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누구보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동생이었다. 홀어머니의 외동인 동생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아쉬움과 후회의 시간이었다.

죽음이 인간의 어떠한 선택도 용납되지 않는 '한계상황'임을 인식하지만 죽음이 주는 비통함과 상실감은 언제나 크게 다가온다.

어머니와 남편의 연이은 부고, 그 고통을 어떻게 짐작하리
  
봉안당 건물
 봉안당 건물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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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당에 방문한 동생은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엄마는 부모님하고 함께 있어 좋겠네"라는 애먼 소리로 설움을 달랜다. 봉안당에는 먼저 돌아가신 외조부모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었다.

동생의 슬픔을 달래듯 조카는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는 왜 이렇게 이뻐"라는 말장난에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이쁘게 낳아서 그렇지"라며 고슴도치 사랑을 연출하시곤 했다고 한다. 조카의 회상에 동생은 슬픔이 겹친 웃음을 짓는다.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라고 했으나 동생에게는 예외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고통이다'라는데, 어머니의 사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남편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도 고통이 된다'는 말이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동생의 말끝에 묻어나와 안타까움을 더 했다.

동생은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후 다시 나는 매제의 얇아진 머리 솜털을 입바람으로 간지럽히던 일, 양말을 마음에 들지 않게 신겼는지 구시렁거리며 입이 뾰로통해진 일 등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머리털이 수북하고 웃음 가득한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동생의 꿈 이야기에 조카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경쟁하듯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여읜 자는 잊힌 옛이야기를 떠올리고 서로를 토닥이며 아픔을 치유한다. 지켜보는 자는 담담한 눈매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슬픔을 희석하려는 노력이 있을 뿐

매제가 운명하기 얼마 전 동생의 손바닥에 '사'라는 글을 쓰기에 동생은 '사랑해'라는 글을 쓰려나 은근히 기대했다나. 동생의 달콤한 기대와 달리 "병원 입원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이천만 원을 주식에 투자했어"라며 증권사 이름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제의 야심에 찬 기대와 달리 주식에 투자한 돈은 반토막이 났다고 한다.

"주식이 반토막이 난 줄 모르고 죽어서 한편으로 다행이야."
"주식이 반토막이 난 줄 알았다면 주식이 오를 때까지 악착같이 살아있었을지도 모르지."


가슴 아픈 반농담의 대화 속에 망자와의 시린 이별은 과거의 시간으로 점점 다가간다. 여조카가 오는 12월 결혼을 하고 남조카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진로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다 나가면 무엇인가를 해야지. 지금부터 준비해. 아니면 심심하고 힘들 거야!"라는 말에 "오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려고. 아끼면서 살면 되겠지"라는 반응으로 돌아온다.

상실의 아픔을 쉽게 잊은 타인의 시선으로 동생을 대한 몽매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상처가 깊으면 완치 시간 또한 짧지 않음을 간과한 나의 경솔함에 미안함이 더한다. 헤어짐에 좀 더 당당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으나 우리에게는 단지 꿈일 뿐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존재의 부재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소환하여 공백을 메꾸려는 애씀과 따뜻한 토닥거림, 슬픔을 웃음으로 희석하려는 노력만 있을 뿐이다. 시간이 문제다.
 
공원 묘지의 철쭉
 공원 묘지의 철쭉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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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촌 동생, #죽음, #헤어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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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정년 퇴직한 후 공공 도서관 및 거주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도서관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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