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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팩
 아이스팩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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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길어지면서 소비량도 늘어나는 게 있다. 바로 아이스팩. 오늘은 아이스팩에 대한 나의 무식한 경험부터 꺼내본다.

아이스팩을 분리배출해보겠다고, 가위를 들고 아이스팩 비닐 봉투를 예쁘게 잘라서 내용물을 쏟아버린 적이 있다. 얼음이니까 물로 씻겨나가겠지... 하면서. 그런데 무지였다. 젤리처럼 끈적끈적한 성분이 기분 나쁜 모습으로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에잇, 하며 물을 쏟아부었더니 씻겨나가기는 커녕, 꿀럭꿀럭하면서 더 부풀어오르는거다. 놀라서 물을 더 쏟아부으니까 더 부풀어오르고... 그렇게 아이스팩 괴물이 우리 집 씽크대 위에 만들어지게 됐는데... 알고보니 아이스팩 비닐봉투 안에 들어있는 젤리 형태의 보냉제는, '고흡수성수지'라고, 말 그대로 빠르게 물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플라스틱이었다.

자기 체적의 50∼1000배의 물을 흡수하는데, 수분이 많아 소각이 어렵고 매립 시 자연 분해하는 데 500년 이상이 소요돼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걸 쏟아버리려 했으니... 결국 비닐장갑을 끼고 그 끈적끈적한 보냉제를 일일히 손으로 담아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했다. 환경을 생각하려다 오히려 일을 더 키운 거다.

그 후 아이스팩을 버릴 일이 있으면 절대 뜯어서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번 쓰고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냉동실에 그냥 얼려두었다. 그랬더니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계속 냉동실에 쌓이는 아이스팩... 그렇다고 아이스팩 때문에 냉장고를 더 큰 걸로 바꿀 수도 없고... 그런 와중에 한 업체에서 물로 만든 재활용 가능 아이스팩이 왔다. 포장지는 종이였고. 그대로 잘라서 물을 버리면 분리배출 가능. 반가웠지만, 그런 아이스팩을 만나게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1) 돌려쓰기, 아이스팩은 동네 정육점에, 옷걸이는 동네 세탁소에...

5월 23일 보도된 <경향신문> 김보미 기자의 현장취재 기사에는 서울 서초구 주민들의 사례가 나온다. 주민들이 '자원순환가게'를 통해 아이스팩을 모으고 이렇게 모인 아이스팩을 동네 정육점에 줘서 고기 포장이나 택배에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정육점 사장님은 "여름휴가철이면 월 150개 이상 쓴다. 100개 한 상자에 2만원 가까이하는 비용을 아끼는 것"이라며 "아이들에게도 자원 순환을 교육할 수 있는 동네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옷걸이 역시 동네에서 재사용을 하고 있었는데, 대형 세탁 프랜차이즈에서 제공하는 얇은 철사 옷걸이(재활용되지 않음)를 제외하고 흰색 비닐 코팅처리된 두꺼운 제품은 동네 세탁소에서 다시 수거해 사용하는데, 주민은 집에 쌓이던 옷걸이를 재사용할 수 있어 좋고, 세탁소 사장님은 개당 100원 짜리 옷걸이를 회수해 쓰니까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서초구에선 이렇게 동네 자원순환가게인 '탄소 제로샵'을 시민 주도로 시작해 현재 7개 동 300군데를 운영하는데, 수거 품목은 옷걸이, 비닐봉투, 쇼핑팩, 아이스팩, 커피 트레이 등 5개라고 한다. 옷걸이는 세탁소에서, 아이스팩은 정육점에서, 커피트레이는 카페에서, 문구점·음식점·약국·반찬가게 등은 종이나 비닐로 된 가방을 받아 다시 쓴다.

경기도 양평군에서는 6월부터 11월까지 아파트 재활용 분리배출 장소에 아이스팩 보관함을 설치하고 수거한 아이스팩을 재활용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고양시에서는 수거한 아이스팩을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제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아이스팩 세척과 소독, 건조 등의 작업을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부천시에서는 지역 CU편의점 9곳에서 오는 9월 30일까지 아이스팩 수거 보상제를 운영한다. 가까운 편의점에 젤타입 아이스팩을 가져다주면 아이스팩 5개당 종량제 봉투 1장으로 보상하고 편의점에 모아둔 아이스팩들은 부천나눔지역자활센터에서 수거해 선별·세척·소독 작업을 거쳐 소상공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2) 돌려쓰기가 대안은 아니다, 젤 타입 아이스팩의 생산 자체를 줄여나가야

그러나 돌려쓰기만이 대안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용인특례시의 경우 기존에 해오던 아이스팩 수거 사업을 최근 종료하기도 했다. 이유는 최근 환경부가 젤 타입 아이스팩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부과하며 친환경 아이스팩 유통이 늘어나면서 수거함에 모아지는 젤 타입 아이스팩의 수량도 줄어들고 오히려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아이스팩도 쌓이는 경우가 많아 혼선이 일고 있다는 것.

환경개선부담금(폐기물 부담금)이란 싸다는 이유로 대량 생산되고 있는 처치곤란 폐기물의 생산 자체를 줄이기 위해 생산업체들에게 부과금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환경부는 올해 4월부터 지난 2021년에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 시행령 적용을 통해 흡수성수지 아이스팩에 kg당 313원(300g 기준 개당 94원)의 폐기물 부담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젤 타입 아이스팩의 판매단가가 개당 105원에서 199원으로 비싸지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친환경 아이스팩(개당 128원) 생산과 소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문제는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개정으로 제조업 창업기업에 대해 각종 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오는 2027년 8월 2일까지 5년 연장됨에 따라 창업 7년 이내 기업에는 폐기물 부담금이 부과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의 엇박자가 발생해 젤 타입 생산기업들이 얼마든지 부담금을 피해갈 구멍이 마련된 것이다. 

자원순환의 핵심은 기업 생산과정, 그리고 또 다른 기업의 유통과정에 대한 적절한 통제로부터 출발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고자료]
- 김보미, <옷걸이는 세탁소에, 아이스팩은 정육점에…이웃끼리 돌려쓰면 '쓰레기' 아닌 '자원'>, (경향신문, 2023년 5월23일)
- <양평군 아이스팩 순환사업 실시…리사이클 '쑥쑥'> (에너지경제신문, 2023년 6월6일)
- 황혜영, <노인 일자리와 환경 살리는 아이스팩 재사용 사업 추진>, (고양신문, 2023년 6월5일)
- 김국희, <부천시-CU편의점, 아이스팩 수거 보상제 운영>, (프레시안, 2023년 6월2일)
- 최정용, <용인특례시, 내년부터 아이스팩 분리수거함 운영 중단>, (경기신문, 2022년 12월12일)
- 김희선, <[OK!제보] '안 썩는' 아이스팩 폐기물 부담금 '무용지물?'>, (연합뉴스, 2023년 1월17일)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OBS 라디오의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매일 오전 11시~12시)를 통해 방송됐으며 방송 내용 다시보기는 OBS 라디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아이스팩, #자원순환, #플라스틱, #분리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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