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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의 현충일은 우리에겐 결혼 기념일이다. 결혼 기념일이 공휴일이면 좋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이날 결혼을 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삶을 옮겨 앉고 나니 6월 6일은 아무 날도 아니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은 마음 속 로맨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흥분, 설렘으로 마음이 들뜨지 않는다. 두 중년 부부가 나오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인 부부는 중년 만큼 몸과 얼굴 표정이 지루하다. 적당하게 볼품없어진 몸매, 중고 냄새가 나는 몸의 움직임, 드라이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이 오는 저녁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은 낡은 양복에 무표정한 얼굴로 퇴근해 집에 온다. 둘은 디너 테이블에 앉아 거의 대화 없이 기계적으로 각자의 접시 위에 있는 저녁을 비운다. 그리고 남편은 접시 하나를 들고 티비 앞에 앉아 스포츠 경기를 보고 아내는 설거지를 한다. 흥분도, 설렘도, 로맨스도, 대화도 없는 지루하기 그지 없는 중년의 일상이다.

아내는 그런 드라이한 일상을 들여다 보고 있지만, 남편은 전혀 문제가 없다. 스포츠 경기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 오면 커피 한 잔 들고, 직장에 나가고, 퇴근해 집으로 와 저녁을 먹고, 티비 앞에서 스포츠 게임을 보고 잠자리에 든다. 남편은 이런 일상을 편안해 한다.

아내는 그 지루함이 서서히 무겁게 짓누른다. 삶,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람이 기계처럼 삶의 24시간을 쳇바퀴 도는 것이다. 로맨스라는 삶의 생동감이 없어지면 그렇게 마른 삶을 기계 돌듯이 살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살짝 돈을 모으다,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나와 내 짝, 부모의 보호와 간섭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삶에 주인이 되어 내 공간, 시간을 만들게 된다. 그 짝과 새로이 시작한 삶의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잠시 설레다 첫 아이가 찾아온다.

깔끔했던 분홍빛 공간이 아이의 출생과 함께 아이의 물건으로 가득차고, 아이가 움직여 고단함이 살짝 줄어 조금 숨을 쉴만할 때 둘째가 찾아온다. 그리고 삶의 공간이 조금 넓어진다. 수입도 조금 많아지고, 그래서 그 조금 넓어진 공간에 내 취미 대로 공간을 꾸민다. 설렌다. 흥분된다.

이제사 내가 삶의,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 된다. 종종 새로운 것들을 집에 들이고, 화사하니, 고급스럽게 공간 꾸미기에 공을 들인다. 그렇게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추억을 만들어가고, 지지고 볶고 하듯, 울고, 웃고, 화내고, 짜증내고, 오해하고, 용서하고… 그런 희로애락에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의 손에서 서서히 놓여나고, 결국 자신들의 20대 항해를 시작하면서, 그 부모의 삶의 공간은 서서히 조용해진다. 서서히 낡아진다. 더 이상의 새로움이 찾아들지 않는다. 부모의 나이 만큼 그들의 삶의 자리도 같이 나이를 들어간다. 화사하게 빛을 내던 가구들이 서서히 퇴색해 간다.

부엌의 그릇들이 유행에 뒤지고, 그 안의 어른들이 퇴색해 간다. 집주인과 집안이 같이 늙어간다. 그 풋풋함이 퇴색해가고, 얼굴에 팽팽함이 주름으로 서서히 바뀌는 그 시간들… 더이상의 드라마가 없어지는 시간들… 일상이 평안해 지면서 지루해진다.

젊은 날, 노부부를 보며 늙어감에 대해 잠시 잠시 생각했었다. 내 짝과 같이 얼굴에 주름이 짖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제 내 짝과 함께 33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우리의 머리는 반백을 넘어 백이 되어 간다. 탈력을 잃은 얼굴은 작아지고, 그 위에 주름이, 얼굴에 금이 간다. 로맨스가 사라진 마음에 평안함, 안쓰러움 그리고 잔잔한 위로가 생긴다.

더 이상의 로맨스는 없지만 불안, 초조, 걱정 같은 괴로움이 사라졌다. 세상에 내어 줄 것만 남았다. 꽃분홍의 설렘은 아니지만, 잔잔한 평안이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고, 가구를 바꾸는 대신에 집안에 식물을 들인다.

가구를 옮겨 새로운 기분을 내어 본다. 바빠 아무것이나 먹던 입에 좋은 것을 넣어주려 노력한다. 젊은 날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초조가 사라진 곳에 평안함과 평화가 찾아온다. 지혜가 찾아와 삶을 들여다 보게 된다. 촐싹 거리던 마음이 지긋해 진다.

우린 삶의 긴 여정을 같이 했다. 몇 번의 결혼 기념일이 더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남과 북 만큼이나 다른 우린, 같이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공간을 만들고, 가꾸고, 서로를 챙기고, 토닥거리며 33년의 꿈같은 시간을 함께했다. 마침 집에 잠시 들린 둘째와 함께 셋이서 해피 아우어를 했다. 맥주 맛이 참 좋았다.

태그:#삶의 길이, #삶, #나이 들어감 , #지루한 삶, #기계가 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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