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7 11:23최종 업데이트 23.06.07 11:23
  • 본문듣기

지난 4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중심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50만 명의 폴란드 사람들이 참여했다. ⓒ 마테우슈 마로카


지난 4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정오에 열린 반정부시위에 무려 50만 명의 폴란드 사람들이 참여했다. 

첫 자유선거 34주년에 맞춰 진행된 이날 시위에 대해 외신은 극우 포퓰리즘 정부에 항의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는 제1야당인 시민강령당(PO) 도날트 투스크 대표가 소집했지만 다른 야당들과 노동조합까지 다양한 집단이 참여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마테우슈 마로카(36)를 지난 5일 메신저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폴란드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이날 시위를 '폴란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항거'였다고 했다. 

또한, 아무도 자신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시민들이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집권 여당의 전임 정부 탓이나 맹목적인 종교인들의 투표, 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 등 그가 전한 폴란드의 이슈가 낯설지 않았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빼앗아"
 

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반정부시위 모습 ⓒ 마테우슈 마로카

 
- 지난 4일 열린 반정부 시위를 '폴란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항거'라고 했는데 폴란드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인가?
"6월 4일은 폴란드에 있어 중요한 날이다. 1989년 부분적으로나마 처음으로 의회 선거가 열린 날인데 이로 인해 50년 이상 속해 있던 구소련에서 폴란드가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전 총리이자 전 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이었던 야당 대표 도날트 투스크(2007~2014년 폴란드 총리로 재임하고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5년 임기를 마친 뒤 폴란드 국내 정치로 복귀했다)가 이 특별한 날에 바르샤바에서 반정부 행진을 하자고 지난 수개월 동안 촉구해 왔다.

지금의 정부는 조금씩 우리의 민주주의를 빼앗아 가고 있으며 유럽연합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난 4일에 우리가 모인 이유다."

- 여당이 권력을 가진 것은 폴란드인들이 지난 8년간 지지했기 때문 아닌가?
"현 집권여당인 법과 정의당(PiS)은 노인과 실업자 등 대부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이들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절대 만족시키지 못하는 대규모 사회복지 패키지를 도입했다. 게다가 이들은 폴란드에 있는 모든 지역과 가정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공중파를 점유해 거대한 정치선전의 도구로 삼아버렸다."

- 여당은 왜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나?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거나 특별한 이슈가 있었나?
"지난 8년간 집권여당은 전체 시스템을 마피아식 구조로 만들어 모든 국영기업에 그들이 지정한 사람들을 꽂아 넣었다. 또한 모든 피고용자는 임금 중 일부를 여당에 기부해야만 한다.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너무 단순화되어 버려 정작 문제가 무엇인지 볼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수차례나 헌법을 위반하였고 이제는 지방법원에 소환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회가 그들 손에 있고 대통령과 헌법재판소를 자신의 정치인들로 채워 버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힘이 있다. 32%의 유권자들이 이들을 지지하는데, 이 지지자들은 대부분 종교 신봉자들로 매번 선거 때마다 이들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나쁜 의도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 큰 권력 부여"
 

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반정부시위 모습 ⓒ 마테우슈 마로카


- 현재 폴란드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가?
"지난주 여당 의원들은 의회 다수당 정치인들, 다시 말해 집권여당에서 온 정치인들이 포진한 위원회를 설립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위원회는 전임 정부에 러시아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시민이든 소환하고 기소할 수 있으며, 최대 10년간 국가에서 고위직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판결은 행정법원에만 항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이렇게 되면 혐의의 진실성이 아니라 소송절차의 형식적인 측면만을 문제 삼을 수 있게 된다. 심의도 대부분 공개되지 않아 대중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 큰 권력이 부여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법을 위반하는 것을 보고도 유권자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이런 짓을 계속 벌일 것이다. 지금 거리에 나온 사람들만이 집권여당이 다음 선거를 왜곡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폴란드 내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자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한발 물러나 수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 편집자 말)

- 왜 이런 일을 벌이는가?
"앞서 말한 위원회를 설립하는 법을 폴란드에서는 흔히 '투스크법'이라 부른다. 야당 대표인 도날트 투스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투스크를 막으려는 법이며, 여당 의원들이 확정해 버렸다.

투스크는 자신이 권력을 다시 잡으면 지난 8년간 이전 정부가 했던 행위에 양심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야당은 약 27%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장악한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폴란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안 좋은 일이 투스크 때문이라 사회 다방면에서 투스크를 비난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질문에도 '투스크 잘못'이라는 답이 나올 정도다."

"우리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같은 일 반복하지 않기를"
 

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반정부시위 모습 ⓒ 마테우슈 마로카


- 시위 현장은 어떠했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며 무엇을 외쳤나?
"5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분위기는 굉장했다. 모든 이들이 아주 점잖게 행동했다. 사람들이 외친 슬로건은 '우리는 참을 만큼 참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바르샤바 전체가 마비될 정도였다.

12시에 도심에서 행진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바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지하철도 꽉 차서 탑승이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걸어가기도 했다. 나와 가족, 친구들은 약 12km 정도 걸었다.

주요 행진은 오후 4시까지 지속되었지만 시민들은 저녁까지 남아 있었다. 이들은 폴란드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부모님은 바르샤바에 10시까지 도착하려고 아침 5시에 일어나셨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 지금 폴란드의 시위에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다면?
"지난 세기에는 위선적인 정치선전의 시대가 되돌아온다거나, 사람들에게서 민주주의를 빼앗는 일은 결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폴란드나 헝가리 또는 튀르키예의 사례를 보라.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다른 나라들도 우리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