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7 20:54최종 업데이트 23.06.0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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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전해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5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을 의결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반대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야당 의원 1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 유성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 24일에 국회법 제86조 제3항에 근거하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2조 및 제3조를 개정하는 법률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 붙여 심의하도록(즉 부의하도록) 국회의장에게 서면으로 요구하는 안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상태에서 민주당·정의당 등 환경노동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였다.

국회법에 따르면 이와 같은 요구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되면, 국회의장은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노란봉투법에 반대하기 때문에 본회의에 부의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지만, 노란봉투법이 본회의에 부의되면 현재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본회의 통과는 거의 확실할 것이다.

노란봉투법, 왜 생겨났으며 어디까지 왔나?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회사에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시민들이 모금 운동인 '노란 봉투' 운동을 한 데에서 연유했다. 2009년 파업의 여파가 수년 후에도 파업 참여 노동자들의 생계를 파괴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큰 틀에서 보면 IMF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한국 정부가 '파업에 민사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손배가압류법으로 인해 배달호 노동자가 분신 사망하는 등의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민주 정부는 '파업에 민사적으로 대응'하고자 했지만 이후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파업을 공권력이 강경 진압한 후에 민사적으로 한 번 더 징벌하는 악습이 나타났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을 향한 판결이 그 예시였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을 도우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과 입법 노력은 그간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였지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투쟁에 힘입어 드디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려는 역사적 순간에 이른 것이다(관련기사: "작년도 올해도 '이대로 살 수 없다', 470억 손배소 취하하라" https://omn.kr/241ut).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이 2022년 9월 1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회사의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법이다. ⓒ 공동취재사진

 

만약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대통령이 공포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을 민법이라는 시민법의 틀 내에 가두고 있는 현재의 노사관계(법) 질서의 한계를 깨고 노동3권이 명실상부하게 보장될 수 있는 현대적인 노사관계(법)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을 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없을 공산이 크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를 통과하여 정부로 이송되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주의자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자유시장주의 법질서의 근본을 이루는 민법으로부터 노사관계(법) 질서가 벗어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터이다.

하지만 헌법 제33조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 위에 민법이 있을 수는 없다. 노란봉투법에 대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 위에, 노동3권이라는 기본권 위에 민법을 올려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계약법리에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민법의 공동불법행위자의 연대책임에 어긋난다고 한다면, 이는 명백히 민법을 기본권 위에 올려놓겠다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다. 헌법이 모든 법률의 최상위에 있다는 법학의 상식을 부정하지 않고서야 이러한 태도를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아마 노란봉투법 제2조에서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자에게 단체교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헌법 제17조의 직업선택의 자유에 의해서 보호되는 사용자의 영업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노란봉투법 제3조에서 민법 제760조와 달리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쟁의행위에 가담한 근로자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연대책임으로 하지 않고 각자의 고의·과실·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서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노란봉투법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고, 노동3권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에서 노란봉투법 제2조 및 제3조가 사용자의 영업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란봉투법 제2조는 사용자를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고 하고 있다.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영향력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사용자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근로조건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만을 사용자라고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영업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없다.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력과 결정력이 있는 자라면 교섭에 응하여 성실하게 교섭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단체교섭의무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까지 포함하지 않는다. 단지 성실하게 교섭을 하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결코 과도한 제한이라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노란봉투법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근로조건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기준은 법적인 기준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최근 5차례 걸쳐서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여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 대해서 사용자라고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기준은 사용자인지를 판단하는 효과적인 기준으로서 작동할 수 있을 것임을 잘 보여준다.

* 중앙노동위원회 2021.6.2. 중앙2021부노14(CJ대한통운사건), 중앙노동위원회 2022.3.24. 중앙2021부노268(현대제철사건), 중앙노동위원회 2022.12.6. 중앙2022부노156(롯데글로벌로지스사건), 중앙노동위원회 2022.12.7. 중앙2022교섭42(현대제철사건), 중앙노동위원회 2022.12.30. 중앙2022부노139(대우조선해양사건)

본질적으로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식적인 근거를 들어서 단체교섭의무를 부정하는 것은 노동법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동법은 관계의 "형식"이 아니라 관계의 "실질"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형식 논리는 강자의 논리이다. 형식은 강자가 약자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약자는 강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사관계가 기업 단위로 형성되고 부당노동행위가 횡행하기 때문에 이를 구제하는 특별한 절차를 두고 있는 나라들에서 형성된 노동법의 특징이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것이다. 미국, 일본이 그렇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단체교섭의 당사자를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 한정하지 않았고 그 확장을 인정하였다.

노란봉투법이 '위헌'이라는 논리가 그릇된 이유

노란봉투법 제3조는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책임을 정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에서는 "폭력이나 파괴로 인하여 발생한 직접 손해"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이 경우에도 이들 행위가 노동조합에 의하여 계획된 경우에는 노동조합 이외에 노동조합의 임원이나 조합원, 그 밖의 근로자에 대하여 그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여 철저하게 손해배상책임을 단체 책임으로 국한했다.

하지만 조만간 국회에 부의될 노란봉투법은 민법 제760조의 공동불법행위자의 연대책임을 적용하지 않고, 손해에 대해서 개별 행위자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른 책임만을 지도록 하고 있다.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대폭적인 제한을 포기하고 사용자의 노조 탄압에 악용될 가능성에 집중하여 손해배상청구권에 새로운 제한을 둔 것이다.

민법 제760조가 규정하고 있는 연대채무는 이른바 부진정연대채무로서 배상의무자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채무 전액을 갚아야 한다. 사용자는 노동조합과 임원·조합원들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에 이 점을 악용하여 조합을 탈퇴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채무를 면제해 주면서 나머지 임원·조합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채무 전액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것을 넘어서 궤멸시키고자 하였다.

민법 제760조가 이러한 목적과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면 국가는 당연히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용자의 이와 같은 남용적 활용을 방지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 노란봉투법 제3조에서 손해배상책임을 개별 배상의무자의 기여도 등에 따라서 정하도록 하여도 사용자는 여전히 전체 손해액을 보전받을 수 있는 법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권이라는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민법 제760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분명 재산권으로서 헌법 제23조에 의해서 보호받지만, 노동3권 보장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제23조 제1항은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하면서도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고 있으며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재산권의 사회적 기속성을 특별히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도 유의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이 볼 때 노란봉투법의 내용과 노동3권 보장의 의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노란봉투법 제2조와 제3조가 사용자의 영업 자유와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위헌이라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재고해야 한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누차에 걸쳐서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계약관계의 존재라는 형식 논리 그리고 손해배상청구권이라는 재산권 보장만이 상대적으로 더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적으로 설 자리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1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한국의 노동법도 '사회법 질서'를 형성해야 한다

결국 노란봉투법을 반대하는 논리로서 남은 것은 노란봉투법이 적용되면 불법 쟁의행위가 난무하여 노사 관계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논리뿐이다. 그러나 이는 공포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성실하게 교섭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하여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면 노동조합도 근로자도 그렇게까지 결사적으로 투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란봉투법 제3조에 의하더라도 여전히 개별 배상의무자는 자신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서 손해배상책임을 지기 때문에 손해배상의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불법 쟁의를 감행할 것이라는 것도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동법은 민법으로 대표되는 근대 시민법 질서를 수정하여 독자적인 제3자의 법영역인 사회법 질서를 형성하였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법) 질서는 여전히 시민법 질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집단적 노사관계(법) 질서가 근로계약을 체결한 두 당사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전개되고 있는 점이나 파업을 집단 그 자체의 행위라기보다는 각 개인의 노동력 제공 중지라는 부작위의 합이라고 함으로써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개인에게도 부담시키려고 하는 점은 노동법 질서가 시민법 질서에 갇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노란봉투법은 이러한 노사관계법 질서를 정상화·현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노사관계법 질서의 정상화·현대화 없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도 없을 것이다.

* 필자 소개: 정영훈은 헌법재판소와 국회미래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노동법을 연구했고 현재는 국립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있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와 개별 노동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서 특별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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