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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종 정신으로 공공언어 바로잡기 운동을 펴고 있는 세종국어문화원과 함께 우리 시대 <우리말글 가꿈이를 찾아서>를 연재한다. 공공언어 바로잡기에 애써온 단체와 우리말글 운동가들을 찾아 성과와 의미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말]
한글문화연대 국어문화원 이건범 원장이 ‘큐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방안에 관한 토론을 이끌고 있다.
▲ 한글문화연대 국어문화원의 쉬운 우리말 대안어 찾기 토론 모습 한글문화연대 국어문화원 이건범 원장이 ‘큐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방안에 관한 토론을 이끌고 있다.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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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한글문화연대 국어문화원을 찾았더니, 마침 이건범 원장은 연구원, 우리말 가꿈이 회원들과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팻말이 걸린 방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한글문화연대는 2000년에 김영명 교수, 방송인 정재환 등이 주축이 되어 세운 시민단체이며 현재 이건범 대표가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부설 국어문화원 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언어는 인권이다'
 
한글문화연대 계간지 <쉬운 우리말을 쓰자> 표지 1-6호.
 한글문화연대 계간지 <쉬운 우리말을 쓰자> 표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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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연대가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사용한 '큐레이션'을 바꿔 달라는 시민의 제안을 받아 박물관에 개선을 요청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와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하는 중이었다. 2일의 공문을 보니, 박물관 주장은 'e뮤지엄 큐레이션'은 개인 이용자의 기획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단순 정보 추천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큐레이션'의 대체어로 건의받은 '추천, 정보 추천, 오늘의 작품소개'로 변경 시 이용자에게 혼동을 줄 가능성이 있어 변경이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토론의 결론은 박물관의 반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박물관 논리대로 다양한 대안어가 혼동을 줄 정도로 어려운 말이라면 아예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춤 추천, 오늘의 추천 등 상황에 맞게 쓸 수 있는 말이 있거나 통용되고 있는데 '큐레이션'과 같이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많은 관람객을 끌어 들어야 하는 전시 목적에도 맞지 않습니다." (김명진 부원장)

이런 어려운 말은 전문가용 용어 같아서 전시 문턱을 높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추가 대담에서 이건범 원장은 이렇게 쉬운 우리말로 바꾸자는 운동을 민족주의, 국수주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면서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팻말 내용을 언급했다. 불필요한 외국어 남용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일종의 인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국어가 우리 민족 문화로서 소중하다며,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이제 인권이나 소통 측면에서 언어 운동, 한글 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이건범 원장은 한글문화연대 가입한 지 23년째이고, 대표를 맡은 지도 10년이 넘었고 국어문화원이 생긴 지는 10년이 다 되어 그간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건범 원장은 땅꺼짐(싱크홀), 안전문(스크린도어), 심장자동충격기(AED 자동제세동기) 등 안전 용어를 바꾼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안전문'은 서울지하철이 '스크린도어'라고 쓰던 것을 한글문화연대의 강력한 투쟁으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개적으로 약속해서 바뀐 사례로 이제는 그야말로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고, '땅꺼짐'도 대부분 언론에서 쓰고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자동심장충격기'처럼 다급할 때 사용하고 생명과 직결된 용어까지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은 문화 사대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 경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한글문화연대는 그간 공공기관에 잘못 쓰인 용어나 말에 대해 공문을 보내 시정을 요구해 공공기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그런 운동을 지속하면서도 언론의 공공언어 순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운동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그 맥락을 이렇게 말했다.

"외국어 사용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먼저 쓰기 시작해서 언론으로 보도를 하는 용어들이 있고 공공기관에서는 쓰지 않지만, 기자들이 학계나 기업 등에서 또는 외국 기사에서 원어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단 언론 기자들이 바꿀 수 있는 용어 60개를 다음과 같이 선정해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목록을 살펴보니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전화사기), 피싱(→ 전자금융사기, 금융사기, 사기), 메신저 피싱(→대화방 금융사기), 스미싱문자 결제사기(→문자 사기) 등 금융 경제 관련 용어부터 스쿨존(→어린이 보호 구역), 가드레일(→보호 난간) 등 안전 관련 용어, 업사이클(링)(→새 활용), 리사이클(링)(→재활용) 등과 같은 환경 생활용어까지 다양하게 제시되었으며 용어 목록은 한글문화연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목록 외에도 '쉬운 우리말을 쓰자'라는 계간지를 발간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5천 부를 발행하여 전국의 국어책임관 4천여 명과 그 밖의 관련 기관에 발송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님의 처지에서 생각해볼까요 
 
쉬운 우리말 사례와 다른 나라 운동 사례를 만화로 그린 한글문화연대 홍보책자
 쉬운 우리말 사례와 다른 나라 운동 사례를 만화로 그린 한글문화연대 홍보책자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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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호로 발간된 6호에는 2023년에 꼭 바꿔야 할 목록 50개가 나와 있었다. 김명진 부원장은 50개 용어 선정 기준은 온 국민이 함께 쉽게 바꿀 수 있는 용어 위주로 선정했다고 한다. 50개 용어 가운데 50% 정도가 "MOU(→업무협약), SOC(→사회기반시설, 사회간접자본), AI(→① 인공 지능, ② 조류 인플루엔자), R&D(→연구 개발), ESG(→환경·사회·투명 경영, 사회 가치 경영), ICT(→정보통신기술) 등과 같은 로마자 용어에 집중되어 있다. 김명진 부원장은 "이런 용어들이 약어라고 편리하다고 마구 쓰고 있지만, 어차피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으니 간결함이 의미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3월 10일에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세종국어문화원 등이 뜻을 모아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을 꾸렸고 국립국어원도 협의에 참여한다. 4월 7일에 첫 회의를 열어 경제협력개발기구를 영문 이름 약칭인 '오이시디(OECD)'로 쓰는 일이 많은데, 이 대신 '경개협'이나 '경협기구'와 같이 우리말로 줄인 이름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지나친 영어 남용을 비롯한 공공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해 왔지만 가장 중요한 대안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이건범 원장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제 영어나 로마자를 모른다면 우리 사회에서 아주 무식한 사람 취급받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요. 공무원들도 기자분들도 부모님 처지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공무원들은 국민에 대해 봉사자로서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다면 부모님을 무시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알 권리 존중은 이미 전세계적인 흐름으로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태그:#공공언어, #한글문화연대, #국어문화원, #쉬운 우리말, #안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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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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