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8 18:07최종 업데이트 23.06.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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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해마다 800명 이상으로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산업재해 예방정책' 검색어로 지난 3개월간 1천 건의 뉴스에 대해 연관 키워드를 살펴보면 중대재해, 위험성, 중대재해 처벌법,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안전문화 확산의 순서로 확인된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 경영계가 반대해온 중대재해 처벌법에 대해 시행령 개정을 예고했다. 산재 대책으로 예방 강화에 초점을 두고 안전 관리체계 구축을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 구상은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으로 구체화됐다.

산재 사망 예방은 산업 안전 정책 그 자체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율이 가장 낮은 영국의 보건안전청(HSE)에 의해 공인된 산재 발생 설명 모델인 '영향 연결망 모델'은 정책 수준의 요인과 기업 외부의 환경 요인을 산재 영향 요인으로 강조하고 있다. 정책 수준의 요인에는 계약 전략, 소유권과 통제권, 기업 문화, 조직 구조, 안전·보건 관리체계, 노동 관계, 기업의 이윤율 등이 있고, 기업 외부의 환경 요인으로는 정치적 환경 요인, 규제 요인, 시장 요인, 사회적 요인 등이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 감축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관련 노동 정책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빅카인즈에서 '노동개혁'을 검색어로 했을 때, 빈도가 많은 단어는 근로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노사 법치, 불법 행위 등이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노동 개혁의 4대 원칙인 노동 제도의 유연한 변화, 노사의 공정한 협상력,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전한 노동, 노사 법치주의 등이 현실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구현되는지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 엄정한 집행 필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5월 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서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추어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 개선하게 하는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을 지원하되 중대재해 발생시에는 엄중한 결과 책임을 부과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중소기업, 건설업, 제조업, 추락·끼임·부딪힘, 하청 사고에 대해서 집중 지원 및 특별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중대재해 처벌법은 기업이 안전 범죄를 저질러서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경우에 법인에 대한 처벌과 배상 책임을 강화하고, 재해 예방의 최종 책임자인 경영 책임자 등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정한 법이다. 국민 10만 명이 발의했고, 시민사회의 참여 속에 활발한 토론을 거쳐 2021년 1월에 제정되었다.

지난해 이 법 시행 1년을 맞아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 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전문가 6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법이 우리 사회에서 산재 사망과 시민 재해의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늘리고 사업장의 안전·보건 활동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중대재해 처벌법의 안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대응은 5점 만점에 평균 2.1점~2.8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 장기화,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저조한 기소 현황,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자율 안전관리 강조, 정부의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령 개정 예고 등을 지적했다.

반면 사법부의 판단은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이 법이 기여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건설 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1호 판결에서 비록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사업주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2호 판결에서는 반복되는 산재 사망을 막고자 노력하지 않은 경영 책임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한편 고용노동부의 2022년 산재 발생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업종은 건설업(341명)이었고 이어 제조업(171명), 기타(132명) 순이었다.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388명,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256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산재 사망이 불안정 취약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에는 그동안 중대재해 처벌법 적용이 유예되었던 5~50인 규모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된다. 정부는 중대재해를 유발한 안전 범죄에 대해 신속 공정하게 수사하고 기소해야 한다. 또한 전 관계 부처가 적극적인 산재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근로시간 개편안이 위험한 이유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4월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2023 최악의기업상' 대상으로 선정한 윤석열 정부에 상을 전달하고자 이동하던 중 경찰이 이를 막아서고 있다. ⓒ 이희훈

 
지난 3월 고용노동부는 1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의 근거를 제공한 곳은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라는 고용노동부의 자문기구다. 앞서 언급한 전문가 설문에서 이 연구회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전문가의 87.3%가 취약 노동자에서 산재가 증가하여 산재의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연구회의 권고안에는 특정 직종·직군에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 해당 부문 근로자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취약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선택권이 없어서 과로와 과로 관련 산재가 더욱 증가할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과로의 산재 위험은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인 운송업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특례업종 사업주는 근로시간을 연장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특수고용직은 아예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 화물 노동자들이 요구한 안전운임제는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였다.

화물 노동자들은 차 안에서 침낭에 의지하여 하루 3~4시간 쪽잠으로 버티며 장시간 노동한다. 그들은 장시간 노동, 운전 중의 긴장 상태,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작업 등으로 인해 심혈관 질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학술문헌 검색 사이트인 퍼브메드(Pubmed)에서 '트럭 운전사'로 검색하면 심혈관 질환이라는 연관어가 나올 정도이다.

트럭 운전사의 과로를 줄이는 것은 노동자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도로 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적정운임을 보장하여 그들이 과속·과적·장시간 운송에 내몰리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화물 노동자는 물론 도로 위의 모든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이다. 2022년 이 제도가 일몰규정으로 사라지게 되자 화물연대는 이를 지키기 위해 파업했다.

정부는 파업 초기부터 노사 법치주의를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면서 업무 개시명령을 발동하는 등의 대응을 했다. 이는 국제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운수부문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 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을 채택하면서, 도로 화물 운송업의 모든 화물차 기사에게 노동 조건과 안전·보건을 증진할 수 있는 보수 제도를 수립할 것을 각국에 권고했다. 다단계 도급 구조를 통해 화주로부터 말단의 화물차 기사에게 전가되는 운임 삭감 압박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장시간·위험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권고이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과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요구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전한 노동'이라는 정부 자신의 노동개혁 원칙에조차 위배된다. 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과 산재 사망 분야에서 1, 2위를 다투는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는 것은 산재의 근본적인 위험 요인에 대처하는 것이다.

건설 현장 안전 위협하는 '노사 법치주의'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에 대한 법적 규제, 교육과 홍보, 기술 개발, 노·사·정 협력체계의 구축과 같은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 셔터스톡

 
지난 5월 1일 건설노조의 지대장이었던 양회동씨가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했다. 정부가 건설노조에 대해 노사 법치주의를 적용한 결과는 13차례의 압수수색, 630여 명에 달하는 소환조사, 12명 구속, 채용절차법 위반에 따라 부과된 과태료 1억 3500만 원, 노조 활동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부과한 과징금 2억 6천만 원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사용자 측의 불법행위에 대해 고발하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강요죄'로 수사했다.

노동조합은 안전·보건의 중요한 주체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5인 이상 제조업체 2500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업장에서 산재 예방활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잠재요인은 산재 사고 관리 및 현장 근로자와 관리자 간의 협력지원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꼽았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사업주와 근로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심의·의결하는 회의체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연구보고서가 아니더라도 건설노조가 했던 현장 안전에 대한 활동을 보면 노동조합이 안전·보건의 중요한 주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 4월 28일 산재 사망 추모의 날에 건설노조는 지난 20년 동안 작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발표했다. 대표적인 것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건설 현장 일요 휴무 실시(2001~2004년), 타워크레인 건설기계 등록을 통한 안전 강화(2007년), 타워크레인 벽체 지지 고정 방식 쟁취(2013년), 타워크레인 풍속 제한 하향 조정(2017년)과 전담 신호수 도입(2018년), 정부 발주 공사 입찰시 산재 은폐 반영(2006년), 건설업 산재 보고시 근로자 대표 확인 제외 삭제(2007년), 건설업 원·하청 노사참여 안전보건협의체 도입(2007년), 건설 현장에 화장실, 식당, 탈의실 등 시설 설치 의무화(2007년), 건설업 원청 위생시설 장소 제공 의무화(2011년), 건설 현장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2022년), 건설 현장 화장실 개선, 설치 기준에 근로자수 기준 추가(2023년), 콘크리트 믹서트럭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2009년),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2018년), 배전 전기 노동자 살인 공법 폐지(2016년)

윤석열 정부의 노사 법치주의는 정당한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노조의 안전·보건 활동 위축은 노동자의 안전을 크게 위협한다. 노조에 대해 무리하게 수사하고 처벌하면 취약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이 노사 법치주의가 사용자에게는 관대하다는 점 역시 노동자의 안전에 위협적이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사용자측의 불법행위다. 불법 하도급, 임금 체불, 부실시공 등은 건설 현장의 안전을 저해하고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건설 현장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이라고 본다.

노조법 2, 3조 개정으로 안전 지킨다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및 생명ㆍ안전 위기에 대한 산재ㆍ재난 유가족 및 피해자, 종교ㆍ인권ㆍ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산재예방은 하나의 대책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에 대한 법적 규제, 교육과 홍보, 기술 개발, 노·사·정 협력체계의 구축과 같은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노사의 힘의 균형은 산재 예방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노동자들이 유해 위험 요소를 발굴하고 개선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사고와 질병을 유발할 만큼 무리한 작업 계획에 대해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월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노조법 2조와 3조의 개정이 중요하다. 노조법 2조는 하청업체 노동자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과 쟁의 행위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하여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이 잇따르는 한국의 현실에서 원청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 산재 사망 감축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원청과의 직접 교섭이 필요하다.

노조법 3조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사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의 결과에 대해 엄청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반복된다면 노동조합이 약화될 것이다. 그로 인해 노동 현장의 안전·보건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도 노조법 3조의 개정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 처벌법 완화, 근로시간 개편안, 노사 법치주의와 같은 정책들은 노동자의 안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가 집중되고 있는 불안정 취약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히 우려된다. 더 안전한 노동 현장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김현주 /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 김현주

    
필자 소개 : 김현주는 직업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일을 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입니다. 과로와 건강, 반도체 산업 직업병, 여성 노동자의 건강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학제 연구모임인 노동건강 정책포럼 대표로 활동하면서 산업보건 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중대재해전문가넷의 공동대표로 산재 사망과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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