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6 11:12최종 업데이트 23.06.0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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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의 향기가 풍성해졌는가 하면, 땅과 바다가 환경파괴로 신음한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4·3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한편으로는 새 공항 건설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천혜의 땅 제주도를 살기 좋은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주 사름(람)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기자말]

작품 발표 해녀박물관에서 스케치한 후 마을로 돌아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캔버스에 그림을 완성했다. 왼쪽부터 고순자·김인자 할머니, 그림 선생, 홍태옥·오가자·강희선 할머니, 장문경 큐레이터. ⓒ 소셜뮤지엄

 
  서울에서 내려온 '그림 선생'과 제주토박이 홍태옥 할머니는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다. 그림 선생은 이미 서울에서 할머니 학교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고, 홍 할머니는 8년 전에 동네 주민센터에서 마련한 '어르신 그림책 학교'를 다니면서 '그림 맛'을 본 터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21년 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던 최소연 작가가 학생들을 데리고 한동네에 사는 홍 할머니 집을 찾아가면서 시작됐다. 최 작가와 동료 예술가들이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할머니의 집 빈 창고를 일일 미술 스튜디오로 전환해 내는 프로젝트였다. 최소연 작가가 회상하는 당시의 풍경이다.


"홍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학생들과 함께 할머니 집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젤을 펴 놓고 드로잉 스튜디오를 차린 겁니다.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돌담길을 그리고, 할머니와 인터뷰하면서 빗자루를 왜 만드셨는지도 묻고, 가마솥이며 창고 안의 여러 물건도 그렸고요.

이렇게 할머니 집에서 그림 그리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토요일 마당에서 홍태옥 할머니가 학생들과 함께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셨는데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창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 홍 할머니를 찾아가 '삼촌 그림 좀 그려보세요' 하며 스케치북과 색연필과 물감을 드리고 함께 그렸지요. 홍태옥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다른 할머니들도 너도나도 그려보겠다고 나서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할머
니의 예술창고'라는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림 선생과 두 할머니 강희선 할머니 집 거실에서 그림판(캔버스)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그림 선생과 강희선·홍태옥 할머니 ⓒ 소셜뮤지엄

 
연필도 못 잡아본 할머니들의 변신

그림 그리기에 나선 할머니들은 모두가 80세 이상으로 혼자 살고 계신 분들이다. 이 할머니들은 왜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섰을까. 최소연 화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할머니들은 어렸을 때 4·3을 겪는 등 험난한 세월을 지내오느라 학교에 갈 수가 없었고, 따라서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신 거예요. 그런데 그림이 시각예술이다 보니 이를 통해 소통이 되는 겁니다. 별것 아닌 그림을 그려놓고도 자꾸 설명하시더라고요. 이 집은 내가 언제 지었고, 그때 아저씨는 뭘 했으며 등등 얘기를 늘어놓으시는데, 당신들의 삶이 기록된 사진 한 장 없으신 거예요. 창고에 들어가 보면 지금은 보기 힘든 옛 물건들이 많이 보이지만, 이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이 그림을 통해서 뭔가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들을 그림의 세계로 이끈 데는 최소연 작가 특유의 친화력도 큰 몫을 했다. 최 작가의 별명은 '반사'다. 암울한 기운을 반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할머니들과 친해지는 과정이 정겨워 보인다.

"그림 수업을 통해 할머니들과 차츰 친해지면서 일상적으로 할머니 집을 드나들게 되었어요. 오다가다 드나들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들르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고, 그러다 보면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고, 제가 제주 사투리를 쓰며 '삼촌'(제주에서 나이 많은 어르신을 부르는 말) 하고 말을 건네면 환대하시고, 이렇게 인간적으로 친숙해지면서 '삼촌들하고 공부 좀 해볼까' 하니 너무 반기시는 겁니다."

연필도 잡아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그림 선생은 어떻게 가르쳤을까. 또 작가의 눈으로 본 할머니들의 그림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저는 미감이라는 단어를 중시하는데요. 예술에 대한 감각, 미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스스로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이 잘 안되면 다음 날 또다시 시도하시더라고요. 독학하시는 셈이죠. 저의 역할이 있다면, 그림 재료 제공해 드리고 사용법이나 알려드릴 뿐이지 직접 그림에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할머니들은 머릿속에 있는 걸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것들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림 수업 시간에 관찰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정도입니다. '음악 하는 사람은 귀로 잘 들을 수 있어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어요. 그림을 잘 그리려면 눈으로 잘 관찰해야 해요' 하면 무슨 뜻인지 스펀지처럼 흡수를 잘하십니다. 할머니들은 저한테 인생 첫 스승이라고 표현하시지만, 저는 이렇게 놀라운 '학생'들을 만나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가들은 오랜 수련을 통해 훌륭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잖아요. 그런데 이 할머니들은 최소 80년이 넘는 삶의 경험이 있다 보니까 뭘 그려도 말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그림이 된다는 겁니다. 인생의 경험이 녹아든 표현 방법을 쓰고 계시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하고 질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들처럼 계속해서 그림으로 생활을 기록하다 보면 어느 날 우발적으로 굉장히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선흘리 할머니들을 상대로 한 그림 수업 '할머니의 예술창고'는 2021년에 시작해 올해 세 번째 해를 맞고 있다. 홍태옥 할머니를 시작으로 8명까지 늘었다가 5명으로 줄어들기도 했고, 최근엔 10명으로 늘어났다. 장소도 할머니의 창고에서 하다가 모이기에 유리한 노인정으로 옮겼고, 날짜도 일정한 요일을 정했다가 할머니들이 쉬는 날로 옮겼다(제주의 할머니들은 대부분 나이에 상관없이 일한다). 이런 모든 과정에 할머니들의 의견을 존중해 자발적으로 참여토록 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소셜뮤지엄 기획으로 〈37년생 홍태옥〉이란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사진과 글/그림 홍태옥, 엮은이 최소연'으로 나온 이 책에는 홍 할머니가 평생을 함께해 온 삶의 동반자이자 작품 소재가 된 신장, 이불보, 부엌, 솥, 바름구덕, 빨래마께, 스댕다라, 비짜루, 구루마, 소막기둥, 멍석, 화로 등이 그림과 사진으로 정감있게 펼쳐진다. '솥'을 그린 그림에는 이런 글을 덧붙였다.
 
보리쌀 삶아놨다가 조금 풀어지면 좁쌀이나 쌀섞었다가 밥해먹어 큰솥은 국하고 매주도 삶고 까만솥에 두번삶고 가운데솥엔 밥도 해먹고 이짝거는 배추짤라 반찬도 하고...
   

할머니의 마당미술관 지난해 11월 선흘리에서 열린 할망해방일지 전시회에서 최고령 조수용 할머니(93세)가 50년 된 하귤나무와 무 그림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소셜뮤지엄

  
"이것이 해방이쥬"

할머니들의 그림 이야기는 2022년 11월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TV 화면에는 이젤을 펼쳐 놓고 목탄을 잡은 아마추어 화가가 등장하고, 할머니들의 그림방 벽면에 가득 붙여 놓은 다양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직접 농사지은 오이, 무, 보리, 콩과 꽃, 나무에 심지어 팬티까지 할머니들의 생활 주변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

5부작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는 홍태옥 할머니의 뒤를 이어 그림의 세계로 뛰어든 동갑내기 절친 강희선 할머니, '으라차차 할머니'라는 별명처럼 씩씩한 최고령 조수용 할머니(93세), 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실력이 부쩍 늘고 있는 고순자 할머니까지 9명의 할머니들이 '그림 선생'과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새로운 그림 세상을 열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펼쳐졌다.

TV 방영에 즈음해 할머니들의 그림을 보여주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최소연 작가가 속한 소셜뮤지엄과 볍씨마을협동조합이 기획한 이 전시회의 명칭은 '할망해방일지'. 2022년 11월 매주 토요일 선흘리 할머니들의 집이 7개의 미술관으로 변신하자 전국에서 관람객이 찾아왔다.

토요미술관이라고 불린 선흘리 할머니들의 미술관은 살아있는 동안 그림을 그릴 거라는 고순자 할머니의 올레미술관을 비롯해, 분홍색을 특히 좋아하는 부희순 할머니의 분농미술관, 조수용 할머니의 마당에서 펼쳐지는 마당미술관, 소를 길렀던 강희선 할머니의 소막에 설치한 소막미술관, 홍태옥 할머니의 자택인 홍미술관, 김인자 할머니 집의 인자화실, 오가자 할머니의 창고미술관 등이다.
  

소막미술관 소를 키우던 강희선 할머니 집 소막에 그림 작품을 전시해 소막미술관이 생겼다. ⓒ 황의봉

 
어쩌면 이 '할망해방일지'라는 전시회 제목이야말로 선흘리 할머니들의 그림 그리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당시의 상황을 최소연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강희선 할머니의 일기 중에 '답답한 생활을 하다가 기쁜 일이 찾아오면 이것이 해방이쥬'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삼촌, 해방?' 하고 그 단어를 딱 잡은 거죠. 그 다음 주 수업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전시회 제목을 해방으로 하면 어떨지 물어봤어요. 공감하시더라고요. 지금 일제강점기도 아닌데 해방이냐고 했더니 모두 그렇다는 겁니다. 마음속에 품은 말이 그림으로 흘러나오니 이것이 곧 해방이라는 거예요. 할머니들에게는 이 그림 그리기가 인생살이에서 맞은 해방이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할망해방일지 전시회가 끝난 후 할머니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부 전시작품들은 팔리기도 했고, '할망 화가'들은 유명해지셨지요. 제주엔 집에 찾아오는 사람을 환대하는 문화가 있어요. 덩그러니 큰 집에서 혼자 고독하게 사시다가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그만큼 기뻐하셨던 것 같아요. 전시회가 끝난 후에도 종종 방문자들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들이 반가워하시면서 그림 이야기를 나누시는 겁니다. 집안 이곳저곳 공간을 소개하시기도 하고요. 사실 선흘리 같은 작은 마을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누가 어느 집에서 그림을 사 갔다더라, 우리 집에도 들렀다 갔어, 하면서 굉장히 흥미로워하세요. 그리고 제 이름은 모르시지만, 그림 선생으로 부르시고 항상 밥 먹었냐고 챙기십니다. 또 마을 분들도 저를 선흘 사람으로 품어주시고요."

제주의 8090 할망들을 그림의 세계로 끌어들인 최소연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예술가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리더십과 친화력도 타고났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화가 최소연은 제주에 오기 전 화려한(?) 경력을 지닌 미술가이자 사회운동가라고 해도 될 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선흘리 마을에서 그림 선생과 할머니들의 그림 그리기를 옆에서 지켜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쓴 글을 보면 최소연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할머니에게 이 환대의 드로잉 스튜디오를 선물한 이는 '반사'라는 별명을 가진 예술가다. 세상의 나쁜 기운을 반사하는 의미로 그런 별명을 붙였다. 반사는 미술가지만 다른 사람들을 그림 그리게 하는 애니메이터이자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한때 미술 전시장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스이기도 한 카페를 운영했는데 젠트리피케이션 와중에 접어야 했다. 그 와중에 재난학교를 만들고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임대차법을 개정해 내기도 했다."
  

홍태옥 할머니의 그림방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그림 선생과 환하게 웃고 있는 홍태옥 할머니 ⓒ 황의봉

 
최소연 작가는

제주로 내려오기까지 최소연 작가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예술가였다. 국제레지던시의 초청으로 2년간의 뉴욕 연수, '접는 미술관' 활동, 대학에서의 강의, 테이크아웃드로잉&뮤지엄 공동대표, 할머니학교 교장, 재난학교 대표 등으로 미술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접는 미술관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전시하는 서양 유명 미술관의 본질을 주목하라는 취지에서 시작한 활동으로 뉴욕, 브리즈번, 파리, 서울 등지에서 미술관을 '접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이에 동감한 시민들이 모여 새로운 미술관, 동네미술관을 만들자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2006년에는 그가 강의를 나가던 성균관대 학생들과 현대미술가들이 함께 동네 전체를 일종의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명륜동에서 찾다' 프로젝트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명륜동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과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이어서 2007년에는 올해의 예술상 상금을 토대로 서울 성북동에 테이크아웃 드로잉 1호점을 열었다. 테이크아웃 드로잉은 가볍게 들고나와 즐길 수 있는 커피처럼,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문화공간을 상상하며 만든 이름이다. 작가들에게 두 달 동안 카페를 전시 공간으로 내주고 작가 지원금을 주며 마지막에 개인전을 여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카페를 찾아온 손님들이 체류(레지던시)중인 작가와 창작 과정을 접하고 대화를 나누며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테이크아웃 드로잉 프로젝트는 예상외로 많은 '관객'이 다녀가는 성과를 거뒀다. 1년 뒤에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 2호점이 들어섰고, 이어서 한남동에도 테이크아웃 드로잉&뮤지엄이 들어섰다.

미술관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카페 공간으로 진화해 나가던 이 프로젝트는 한남점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된다. 주인이 몇 차례 바뀌면서 건물 가격이 급등하고 결국 카페는 퇴거 요구를 받게 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과 맞부닥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건물주와의 지난한 싸움이 이어지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소연 작가는 비슷한 처지의 임차인들과 연대하고, 한남 포럼을 열면서 재난학교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포럼을 여는 등 임대차법 개정 운동에 참여해 소기의 성과를 올리게 된다.

설치 미술가로, 전시 기획자로 활약하던 최소연 작가가 제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 업체에서 의뢰한 문화기획 연구와 제주연구원에서 사각지대 시민이 참여하는 예술교육 요청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또 이 무렵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지자 '예술가로서 난민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없을까?' 하는 문제 의식에서 난민과 제주도민이 참여하는 워크숍과 전시 작업을 주도하면서 서울과 제주를 자주 왕래하게 됐다. 
 

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 할머니들과 그림 작품을 새긴 할망해방일지 전시회 현수막이 선흘리 마을 입구에 걸려 있다. ⓒ 소셜뮤지엄

 
그리고 2018년 선흘리의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와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으로부터 함께하자는 요청을 받은 게 마침내 할머니들의 그림 선생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할머니들과의 그림 수업은 이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5월 27일 한 명의 할머니가 더 참여해 10명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10월엔 또 한 차례의 할망해방일지 그림 잔치판이 벌어질 예정이다. '그림 그리는 인류'를 가장 좋아한다는 최소연 작가. 문화예술과 시민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취지에서 소셜뮤지엄을 발족하고, 한국의 공공미술 1세대로 꼽히는 그가 제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그려나갈 다음 작품은 어떤 빛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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