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22년 전 두 소녀의 절박했던 SOS 요청은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순간의 방심과 실책은, 뼈아픈 후회와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과연 이제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서 운명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6월 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두 소녀의 마지막 약속 - 대구 여중생 실종 사건'이라는 부제로 22년 전 사라진 두 여중생의 실종 장기미제사건을 조명했다.
 
2001년 당시 16세 동갑내기 중학교 3학년인 민경미와 김기민 양은 대구 지역에서는 남다른 외모로 '얼짱'으로 통하던 단짝친구였다. 그런데 그해 12월 7일 두 사람은 하교 이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자정 무렵 대구 팔달시장 인근에서 헤어져 택시에 올랐다. 당시 두 사람을 마지막 모습을 목격했던 친구는 그날따라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집에 꼭 가라'로 소리치며 당부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친구들은 더 이상 두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두 소녀는 모두 집에 귀가하지도 않고 학교에도 결석하며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아동이 아닌 만 15세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실종이 아닌 '가출'로 분류되었고 수사는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비슷한 시기에 대구에서 강력범죄 등이 연이어 발생하며 수사력이 분산되면서 실종사건에 대한 관심은 더 소홀해졌다.
 
경찰은 당시만 해도 CCTV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두 소녀가 탔던 택시를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두 소녀가 대구 북부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함께 동행했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런데 경미양의 집은 터미널에 오는 길목에 있었고 기민양의 집은 터미널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가족들은 두 사람이 왜 엉뚱하게 집도 아닌 터미널에서 내렸는지 의아해했다.
 
가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럴 만한 환경도 이유도 없다"며 단호하게 부인했다. 경미양이 실종되기 불과 1시간 전에 PC방에서 엄마에게 보낸 메일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불만이나 가출을 암시하는 표현은 일절 없었다.
 
22년 전 그날의 단서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가능성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두 소녀가 택시에 내리고 나서 강력범죄에 노출되었을 가능성, 두 번째는 당시 경찰의 추정처럼 가출을 위하여 터미널에서 내려서 가족들과의 연락을 일부러 끊었을 가능성이다.

제작진은 두 소녀와 함께했던 친구들의 증언과 기억을 통하여 22년 전 그날의 행적을 추적했다. 당일날 두 사람 모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당시 경미양의 남자친구였던 반승훈(가명)씨는 기민양이 그날따라 평소와 달리 화장에 구두까지 신고 소개팅에 나가는 듯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또한 기민양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굳이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했다고.

두 소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북부터미널은 22년 전만 해도 심야버스 노선이 없었고, 그들이 도착했을 무렵은 이미 버스가 끊긴 시간이었다. 친구들은 "선약이나 갑자기 생긴 약속이 아니라면, 그 친구들이 굳이 터미널에 내릴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제작진은 친구들의 제공한 과거 사진과 자료를 토대로 당시 두 소녀가 어쩌면 북부정류장에서 만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한 정보를 추적했다. 여기서 제작진과 연락이 닿은 제보자인 김상현씨(가명)는 알고보니 실종 전날 경미-기민양이 만났던 또다른 친구라는 게 드러났고 이는 가족-친구-경찰들도 지금껏 몰랐던 사실이었다. 김씨는 22년 전 실종 당시에도 경찰로부터 관련된 연락이 받은 일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어쩌면 실종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단서를 또 하나 놓쳤음을 보여준다.

김씨는 실종 당일날 낮에 두 소녀와 함께 카페에서 잠시 만났는데, 여기서 기민양이 '아는 오빠'라고 칭했던 한 의문의 남성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가 소유한 고급차량에 함께 탑승하여 떠났다는 일화를 증언했다. 다른 친구들 역시 기민양이 이전부터 '아는 오빠'의 차량을 종종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실종 직전에는 기민양이 경미양에게 그 오빠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줄 수 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두 소녀는 이후 저녁에 PC방에서 다시 만나 친구들과 헤어진 후 두 사람만 함께 택시를 탔다. 그렇다면 기민양과 경미양이 굳이 늦은 시간에 집이 아닌 북부정류장에서 내린 것은 바로 그 '아는 오빠'와 다시 만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문제는 친구들도 '아는 오빠'의 정체를 실제로 목격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 다이너스티 차량이라는 차종에 대한 어렴풋한 증언 외에는 별다른 단서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두 소녀가 실종되고 보름 정도가 지난 때 뜻밖의 연락이 전해졌다. 모르는 번호로 기민양의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수화기 너머로 "엄마 나 좀 살려줘. 지금 부산역에 있어"라고 구조를 요청하는 기민양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기민양의 가족들은 곧바로 부산역 일대를 찾아서 하루종일 돌아다녔지만 딸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고 경찰 역시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또한 몇 달 후에는 경미양으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두 번째 구조 요청이 왔다. 경미양의 메신저 아이디로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는 "너무 무섭다. 나 좀 찾으러 와달라"라는 다급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친구가 위치를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상대는 대화방을 떠났다. 기민양의 친구는 "20년 동안이나 주변에 이야기할 정도로 생생한 기억"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이 두 소녀들로부터 전해진 유이한 구조 요청이자 마지막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추가로 경미양의 남자친구였던 반승훈씨는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자신을 "경미의 새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함께 있다고 이야기하는 의문의 남성에게 전화를 받고 말다툼을 벌였던 사건을 고백했다. 안타깝게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던 두 소녀의 당시 휴대폰 통화내역은 모두 분실된 상태였고, 통신사에서는 최근 13개월 이내의 전화나 문자 기록만 조회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는 오빠' 존재에 주목한 전문가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여기서 전문가들은 '아는 오빠'의 존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범죄심리분석가는 "두 소녀가 아는 사람을 만나서 차량에 탑승하여 이동한 것까지는 자발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당사자의 의사나 사전 계획과 다르게 상황이 진행되며 장기적인 실종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두 소녀가 친구들과 헤어질 때까지 기다리며 그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여성인권 활동가인 신박진영 전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실종패턴상 '성 인신매매'의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오빠라는 사이로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피해자들이 그 사람을 따라갔다가 사라졌다. 이 패턴이 너무 동일하다. 다른 가능성은 없어보인다"라며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다른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관련 피해 여성들은 두 소녀의 실종사건을 듣고 본인들의 피해사례에 유사하다는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는 오빠가 차를 가지고 와서 같이 놀다가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납치된 곳은 바로 '성매매 집결지'였다. 피해자들은 업소에 강제로 유입되어 성매매 일을 해야만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경찰의 단속이 무색하게 성매매 업소에 미성년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했을 때, 고급차량을 몰고다니는 '아는 오빠'의 정체는 바로 미성년자들을 유인하여 성매매 업소에 넘기는 '소개업자'이고, 경미와 기민양은 그 시절 만연한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성매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이 구조요청을 하다가 적발되고 난 후 더욱 심한 감시에 시달렸을 것이고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을 맡고있는 대구경찰청 미제팀은 당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남은 자료가 부실하여 단서를 추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2000년대 초반 당시 대구지역 유흥업소 등의 상황을 증언해줄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는 "당시 활동했던 이들은 대부분 징역을 다녀온 이후 손을 씻었고 당시 소개업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유흥업계 종사자들이 구인시에 이용하는 온라인 카페를 찾아서 현재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자료를 일일이 검색했지만, 실종된 기민양과 경미양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은 두 사람이 적어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전문가들은 애초에 '경제적인 목적(가해자 기준)'으로 시작된 범죄인 만큼 피해자들이 살해되거나 사망했기보다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그런데 살아있다면 어느덧 22년이 흘렀고 30대 후반의 성인이 되었을 두 사람이 지금까지도 업소에 감금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왜 두 사람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못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변해버린 자기 모습'과, 가족과 지인들에게 돌아가도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의 가능성을 거론했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립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 되면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 실제 다수의 성매매 피해자들은 가족들과 자의반 타의반으로 단절된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들의 '심리적인 무력감'을 언급했다. 초기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감금과 통제가 이어지면서 희망을 잃고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는 것. 강제 성매매 피해여성 중에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자구력을 잃고 병원이나 시설에 수용된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경찰 측은 아직 두 소녀의 개인정보를 통한 생활반응 조회에서는 특별히 드러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AI를 통하여 두 소녀의 실종 전 10대 시절 모습을 토대로 재현해낸 현재의 모습을 공개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혹시나 어딘가에서 지내고 있을 두 소녀를 향하여 보내는 메시지에서 "네 잘못이 아니니까. 지금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으니 무사히 돌아와달라. 보고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제작진은 두 사람이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지금까지 한순간도 변함없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22년 전 그때처럼 꼭 용기를 내서 다시 구조 신호를 보내주기를" 호소하면서, "이번엔 반드시 그 구조 신호에 응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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