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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60세 정년을 꽉 채우고 비로소 일로부터 해방되었다. 30년 넘게 돈을 벌 수 있었으니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은퇴한 걸 아는 지인이 나를 만났을 때 하는 안부 인사 첫 마디는 대개 '잘 지내세요?'나 '건강하시죠?'다.

그러다 서먹한 분위기가 가셔지면 십중팔구 조심스러우면서 궁금하다는 투로 '요즈음 뭐하면서 지내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가볍게 대답하곤 한다.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했으니 이제 30년은 놀아야죠."

'요즈음 뭐하면서 지내세요?'라는 물음을 던지는 지인들의 속마음은 대략 은퇴하더라도 돈 버는 일을 계속해야 하지 않나?라는 것과 소일거리로 좋은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도이지 싶다. 은퇴하더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생활에 드는 돈이 실제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이유 외에도 몸이 건강한데 '논다'라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일하는 게 사는 의미인 셈이다.

소일거리로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는 부류도 말하는 행간을 들여다보면 출근할 데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 매일 등산하거나 골프를 칠 수도 없고, 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책 읽고 산책하고 집안일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여유롭고 자유로워 너무나 좋다고 하면 무언가 근사한 것을 기대해선지 분위기가 머쓱해진다.

정년퇴직은 비로소 나로 자유롭게 설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십 년을 직장에서 일한 개인에게 국가가 이제는 더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한(?)을 공식적으로 준 셈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도 정년까지 일했으면 절대빈곤으로부터의 걱정에서 벗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살다 보면 실수나 욕심 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형편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경우도 많으나 대개 그렇다는 말이다.

은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어리석은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일은 대개 잘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러다 적으나마 수입으로라도 이어지면 덤이다. 시골(미국 버몬트)로 들어가 손수 집 짓고 자연과 더불어 자급자족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낸 스콧 니어링은 교수로서 정년 은퇴가 아닌 해직자 신분임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나는 내가 선택한 주제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직접 짜고 변경할 수 있는 일정에 따라 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 264쪽,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스콧니어링 자서전>(2000)

이렇게 말한 스콧 니어링의 당시 나이는 불과 서른넷. 해직 사유가 반전 논문을 발표해서인데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가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격동의 시기(1917년)였음을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간다. 이후 스콧 니어링은 10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간 자유로운 삶을 실천적으로 보여줬다.

보수언론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언론인 이필재도 자신의 책 <진보적 노인>에서 노년의 권리는 자유로움에 있음을 강조한다. 현역에 있으면 기성 체제에 순응해야 생존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사실 젊어서는 생존을 위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 적응하고 그들이 만든 잣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 (중략) 그렇게 사느라 때로는 부끄러워 나는 하늘을 우러르기는커녕 짐짓 외면했다." - 81쪽, 이필재 지음, <진보적 노인>(2021)

저자는 현역 때 가지지 못했던 자유로움이 무척 아쉬웠던 것 같다. '가슴이 하는 소리(저자의 표현)'를 담아낸 그의 글에서 '자유로움'의 소중함과 고마움이 느껴진다. 은퇴한 상황이라도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만 있다면 자유로움은 삶을 풍족하게 채울 수 있는 무기다. 자유로운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의 자유로움은 꼰대 의식을 줄여줄 터이니 사회에도 이롭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동네 도서관에 가고 산책한다. 가끔 집을 벗어나 서울 나들이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써보고 멍때리면서 여유도 부려보고. 누가 뭐라든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무엇보다 돈이 안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은퇴생활, #정년퇴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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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산책을 좋아하며,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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