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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오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대구공항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한 아시아나항공기에서 한 승무원이 문에 안전바를 설치한 뒤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오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대구공항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한 아시아나항공기에서 한 승무원이 문에 안전바를 설치한 뒤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다.
ⓒ 대구공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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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비상구 출입문이 열렸다. 당시는 엔진이 터지거나 뭔가 부딪혔다고 생각했다."

지난 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아시아나항공 탑승객 권근환(행정사)씨는 비상문이 열리던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지난 5월 26일 제주에서 대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OZ8124편이 대구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승객 이아무개(33)씨에 의해 비상구 출입문이 열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일부 승객이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비상문을 연 이씨를 아시아나항공 측이 비행기에 내린 후에야 경찰에 뒤늦게 신고한 점 등 대응이 미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상문 열림 관련해 안내 한마디 없었다"

업무 차 제주도를 방문했던 권씨는 피의자 이씨 좌석에서 5열 정도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권씨는 "비상문이 열리고 갑자기 바람이 비행기 안쪽으로 빨려들어 오는 느낌이 왔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비상구가 열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약 30초 정도 지난 후 '비상', '비상'이라고 소리치는 것만 들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후 "이씨가 제압되고 승객들이 내릴 때까지 상황을 알리는, 기장이나 승무원에 의한 기내 방송이 한번도 없었다"며 "아시아나의 대응 매뉴얼이나 시스템이 잘 작동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행기에 내리기 전에 기장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통상적인 기내방송을 했을 뿐, 문이 열린 것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안내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칫하면 수백 명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승무원 지시에 따라 달라. 착륙할 때 충격이 있을 수 있으나 안심하라'며 상황 설명이라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권씨와 같이 출장을 간 동료 김아무개씨의 증언도 유사했다. 당시 사고가 난 비상문에서 앞쪽으로 다소 떨어진 좌석에 앉아있던 김씨는 "비상문 개방과 관련해 어떠한 안내나 대응 방송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저는 그저 승무원만 바라보며 대응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가 비행기가 착륙했다. 시간이 지난 후 다급하고 숨찬 목소리로 "안전하게 착륙했다"는 방송이 나왔다"며 "비상문이 열렸던 당시에는 승무원이 육성으로 '앉으라'고 한 소리만 들었다"고 전했다.

승객 기절하고 호흡곤란 왔는데도 119 즉시신고 안해
 
지난 5월 26일 제주에서 출발해 대구에 도착 예정이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비상 출입구를 강제로 열었던 범인 이아무개(33)씨가 이날 오후 1시 3분께 대구공항 버스 승강장에 앉아 있는 모습(제보자 제공).
 지난 5월 26일 제주에서 출발해 대구에 도착 예정이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비상 출입구를 강제로 열었던 범인 이아무개(33)씨가 이날 오후 1시 3분께 대구공항 버스 승강장에 앉아 있는 모습(제보자 제공).

특히 권씨는 피의자 이씨가 특별한 조치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으로 나왔던 것에 대해 큰 의구심을 표했다.

앞서 알려진 것처럼 당시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씨가 비상문을 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비상문이 열리자 안전벨트를 풀고 뛰어내리려 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승객으로 판단했다. 실제 이씨는 기내에서 1~2분간 실신까지 했다. 권씨는 당시 상황을 '제압'이 아닌 '구조'였다고 표현했다.

"갑자기 '도와달라'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 안전벨트를 풀고 달려갔다. 당시는 그 사람(피의자 이씨)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 구조한 것이고 나도 (구조에) 동참했다. 중앙 통로에 눕혔고 승무원이 이씨에게 '괜찮으냐'며 안심을 시켰다."

기내에는 이씨뿐만 아니라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승객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시아나항공은 즉시 119에 환자 발생을 신고하지 않았다. 119 최초 신고는 오후 1시 8분경에 이루어졌다. 앞선 낮 12시 50분 승객들은 이미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항공사 측은 사고 후 20분, 착륙으로부터는 18분이 지나서야 119 신고를 한 것이다. 구급차는 5분 후인 오후 1시 13분경에 도착했다.

권씨는 "이씨가 뛰어내리려고 했던 그 때, 이미 비행기의 바퀴는 지상에 닿아 있었다. 이씨에 대해 충분히 대응했다면 119 신고도 곧바로 했어야 했다"며 "일부 승객은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는데 착륙하고도 한참 지난 후 119 신고를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권씨 일행의 의아함은 실신했던 이씨가 공항밖에 나와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더욱 커졌다. 권씨는 "비행기 안에서 실신했던 사람이 밖에 나 있어서 놀랐다. 당시에는 아시아나 측이 케어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료 김씨 휴대전화에는 이씨가 1시 3분쯤 공항 밖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이 찍혀있다. 자칫했다간 이씨가 공항을 유유히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권씨와 김씨 모두 이런 지적이 승무원의 헌신을 깎아내리는 결과로 이어질까봐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위기 매뉴얼 등 아시아나항공 측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입을 모았다.

권씨는 "이씨가 추락하려고 했을 때 승객들과 함께 승무원들이 함께 막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라면서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겠지만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도 맞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정확한 진실과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한다"며 "긴급상황 발생 시 정상적인 프로세스가 가동된 것인지, 개선이 필요하진 않은지, 상공에서 비상문이 열린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도 "안타깝고 화가 난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승무원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당시 일어난 사태를 생각하면 정말 승객들과 승무원들을 위한 조치였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아시아나 "늑장 신고 아냐... 육성으로 안전지시 계속 했다"

이와 관련 아시아나항공 측은 <오마이뉴스>에 보낸 입장문에서 "(낮)12시 50분부터 손님이 하차하기 시작했고 내리는 손님 중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는 승객이 있어 환자를 파악한 후 구급차를 요청했다"며 119에 늑장 신고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이씨가 이상한 행동을 해 '보호 손님'으로 지상 직원에게 동행하며 지속적으로 관찰하도록 하고 (오후)1시 10분쯤 사무실로 유도해 감시하면서 1시 20분쯤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비상문이 열린 후 승객들에게 안전조지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육성으로 주변 승객에게 자리를 지키고 벨트를 착용할 것을 지속적으로 지시했다"며 "기내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승무원이 즉시 제지하는 것이 원칙이고 착륙 후 비상구에 추락 방지를 위해 안전바를 설치하고 승무원이 지키는 등 안전조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태그:#아시아나, #비상구 출입문, #항공보안법, #안전조치, #대구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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