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2 06:46최종 업데이트 23.06.0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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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의 인사이트>(https://chungjae.com)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충재 기자는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 엠플러스에서 열린 제5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관통하는 단어는 '결단정치'다. 국가 중대사가 대통령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집행되는 방식이다. 대통령실은 이런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부각시킨다. 여당도 이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분위기다.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는 모습이 지금의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의 결단정치는 타고난 기질 탓이지만 대통령 당선이라는 성공 경험에 기인한 바 크다. 정치 초짜의 대통령 선거 승리는 자신의 특별함을 믿는 계기였을 것이다. 무오류와 판단의 정확성, 앞날에 대한 예측 등에서 자신감으로 가득찬 그에게 실타래처럼 꼬인 국정 현안은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터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주변의 조언이 귀에 들어왔을 리 없다.  

중국의 '4불가' 방침... 윤 대통령 한계 드러내 

매사에 깨알같은 지식을 자랑하는 윤 대통령은 막중한 현안에 너무나 쉽게 결론을 낸다고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는 외교안보 사안의 방향도 직접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 밀착과 중국 경시로 요약되는 외교정책은 윤 대통령 작품인 셈이다. 노동·연금·교육 개혁과 신산업 성장 정책의 큰 방향도 직접 틀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참모들이 작은 일까지 대통령의 판단을 구하는 일이 당연시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의 미래를 가르는 과제들이 쾌도난마처럼 풀리기를 바라는 건 요행에 가깝다. 미국과 일본만 쳐다보는 '몰빵외교'의 후유증은 점차 한국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통보했다는 '4불가(不可)' 방침은 윤 대통령의 결단정치의 한계를 드러낸다. 당분간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요원하다고 판단하고 추가적인 충돌을 관리하겠다는 게 중국의 방침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미일 관계가 확고해졌으니 이제 중국에 눈을 돌리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먼저 일본에 내주면 나중에 받게 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도 공수표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과거사를 포기한 댓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수산물 수입 요구로 돌아오게 생겼다. 일본은 한발 나아가 경색된 남북관계에 끼어들어 이익을 취하려는 속셈으로 북한에 정상 간 대화를 제안했다. 북한이 이에 화답하면 한국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한미동맹 올인 전략도 뒤통수를 맞는 양상이다. 국내 주요 기업이 수백 조원을 투자했는데도 돌아온 건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에 따른 수혜를 한국 기업이 누려선 안 된다는 엄포다.  

윤 대통령의 결단을 앞세운 무리수는 국내 정치에도 주름을 안기고 있다. 노동개혁으로 포장한 '노조 때리기'는 되레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광양제철소 앞에서 벌어진 경찰의 노조 간부 폭행 사건으로 한국노총마저 등을 돌렸다. 오죽하면 여당에서조차 반노조적인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 교체를 요구하겠는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무리한 면직과 MBC 사옥 압수수색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언론을 홍보의 수단으로 여기는 윤 대통령의 잘못된 언론관이 결단의 배경이 됐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 걱정되는 건 '결단'에 가려진 '독재'의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1년 만에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학계, 시민사회단체, 종교계로 시국선언이 번지는 상황은 군사독재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검찰, 경찰을 동원한 '공안통치', 사정기관이 총출동하다시피 한 '공포정치', 국민의 입과 귀를 가리는 '암흑정치'가 바로 독재의 맨얼굴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결단이 헌법이나 법률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저항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수단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그가 자주 내세우는 '자유'는 편협한 극우적 이념과 유사하다. 냉전시대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자유란 단어에만 집착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연설 때마다 '국민'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권위주의 통치 행위를 합법화하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결단정치'로 미화된 초법적인 통치는 거센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은 권력의 기세와 억압에 눌려 있지만 차곡차곡 쌓인 분노는 언젠가 분출되기 마련이다. 현명한 지도자는 그런 기류를 미리 읽고 대처하는 법이다. 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국정 기조의 대전환이다. 이제 '결단'을 내려놓고 다양성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가치를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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