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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2일 런던베이글뮤지엄 오픈 당일 모습
 2023년 4월 22일 런던베이글뮤지엄 오픈 당일 모습
ⓒ 꽃기린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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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들도 줄 서서 먹는다는 베이글의 성지, 런던베이글뮤지엄(아래 베이글집)이 4월 제주에 상륙했다. 규모도 크고 마을 안쪽도 아니라서 웨이팅을 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을 위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픈 당일 베이글집 '오픈런' 관련 피드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블로거에 따르면 오전 7시 30분에 도착했는데 이미 혼잡하고 주차장은 만차였다고 한다. 첨부한 사진을 보니 매장 밖으로 길게 늘어선 줄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인도까지 이어져 있었다. 오전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베이글을 사는 데 성공했단다. 줄을 선 지 4시간 만이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가게 앞에서 줄을 서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정판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줄 서기 알바가 동원되거나 아예 하루 이틀 전부터 텐트를 치고 대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본 적 있다. 제주도에도 오픈런 인파가 몰린 사례는 이미 많다. 돈가스 가게 연돈이나 블루보틀이 제주에 오픈한다고 했을 때에도 오픈 전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대망의 디데이(D-day)에는 그 맛을 보려는 사람들로 길고도 긴 줄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와 강남에도 있는 이 베이글집은 평일에도 대기줄이 긴 걸로 유명하다. 세상살이에 심드렁한, 제주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티브이나 인스타 등을 통해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이니 그 유명세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그런 베이글집이 제주에도 생겼다고 하니 아무리 신상이나 인기 아이템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 맛이 궁금하긴 궁금하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 베이글집의 제주점은 내가 사는 곳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며칠 전 동쪽에 볼 일이 있어 다니러 간 남편이 돌아오는 길이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짜 맞춘 것처럼 마침 근처라고 했다. 그럼 오는 길이니 베이글집에 들러 오라고 했다. 평일 오후 2시쯤이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남편은 흔쾌히 그러마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대기자가 많아 못 살 것 같다며 매장 주변을 보여주었다. 80여 팀이 우리 앞에 있다고 했다. 오픈 한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인기이다.

"그럼 그냥 대기 사진만 찍어서 와 줘. 오마이뉴스 기사로 쓰게."

베이글은 못 먹었지만 기사로 쓸 소재는 얻었다.
 
런던베이글 제주점 오픈 한 달 후 근황
 런던베이글 제주점 오픈 한 달 후 근황
ⓒ 허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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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먹는 베이글은 더 맛있을까? 줄까지 서서 먹는 이유가 뭘까? 10-20분도 아니고 1-2시간, 길게는 3-4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추정하건데 줄 서기의 시작은 아마 호기심이 아닐까. 어떤 맛일까 궁금한 사람들이 줄을 선다. 남편이 대기를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구매에 성공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뒤따르며 나누는 대화가 재밌었다며 전해주었다.

"맛없기만 해 봐!"
"한 번 먹어보는 거지 뭐."
"무슨 빵 몇 개에 몇 만 원이냐고."


이 둘이 다음에도 또 줄을 서서 베이글을 사러 올지 사뭇 궁금하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그 다음 이유는 '나도 해봤다' 하는 '인증' 욕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개인 SNS에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관련 내용을 업로드 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과 '좋아요' 숫자는 긴 줄의 고됨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줄 서기 꿀팁, 메뉴 추천, 매장 분위기 등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긴 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인증을 통한 인정의 희열 때문에 중간에 발을 뺄 수 없다. 다른 시간, 다른 곳 줄 선 인파에도 이들이 있다.

또 다른 동기는 '아는 맛'일 테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이미 베이글의 맛을 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또 줄을 서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마저 그까짓 거,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맛의 신세계가 그곳에 있는 모양이다. 눈바람의 추위에도, 강렬한 태양빛의 더위에도 맛있는 건 포기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그저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줄을 서는 그 자체가 놀이의 한 종류이고 추억을 쌓는 시간인 것이다. 그날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되어 두고두고 곱씹을 기억의 편린이 된다. 소중한 사간을 왜 낭비하느냐며 누군가는 수군거릴 수 있겠으나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걱정은 의미 없다. 경험이 곧 재산이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지만 핵심은 희소가치이다. 베이글 매장이 전국에 3군데가 아니라 30군데라면, 온라인 주문 배송이 가능하다면 지금과 같이 길게 줄을 서는 광경을 목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04년 12월 신촌에 크리스피도넛 1호점이 생겼을 때를 소환해본다. 도넛 하나 먹겠다고 사람들은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전국에 매장이 없는 지역이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매장 수가 늘어나고 언제, 어디서나 크리스피 도넛을 살 수 있게 되자 관심과 인기는 사그라들어 흔하디 흔한 도넛이 되어버렸다. 크리스피 도넛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셰이크쉑(쉑쉑) 버거가 강남에 처음 오픈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베이글집이 지점을 늘려주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서울 지점에 이어 제주 지점 또한 줄을 서야 (그것도 오래) 베이글을 맛볼 수 있다. 제주 도민이야 오다가다 운이 좋으면 한 번은 얻어걸리는 날도 있을 테지만 촉박한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한 여행객들이라면 웨이팅 시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매장 안으로 입장했는데 찜해 두었던 베이글이 없는 곤란한 상황 또한 염두에 두어야겠다.

누군가는 그 시간과 노력으로 다른 경험을 하겠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베이글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며 끝끝내 줄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줄을 서는 자, 서지 않는 자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친구가 강남 간다고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강남에 뭐가 있는지, 강남에 가면 어떤 점이 좋은지 알아보고 따라나서도 늦지 않다. 내 취향을 아는 게 먼저이다. 남들에게 좋은 게 내게도 좋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모두가 줄을 선다고 해서 그 줄에 나도 꼭 끼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뒤돌아 선 곳에 내 입맛에 꼭 맞는 동네 맛집이 있을 지도 모른다. 긴 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보물 같은 곳.

소풍날 설레는 마음으로 보물을 찾아 나서던 발걸음이 기억난다. 보물은 여러 개이지만 이미 발견된 보물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가 찾은 보물만이 내 것이 된다. 내 인생의 보물찾기, 지금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태그:#런던베이글뮤지엄, #제주, #줄서기,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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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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