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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인 내가 매년 시도하는 학급 도전이 하나 있다. 스마트폰 3주 안 쓰기. 전화와 문자 메시지만 가능하고, 데이터와 와이파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 여부는 데이터 사용 기록을 검증 자료로 판단한다. 성공 시 나는 문구점에서 만 원 전후로 학생이 원하는 것을 사준다. 지난 십 수년간 성공한 아이는 두 명 밖에 되지 않는다. 

도전의 목적은 스마트폰으로 게임과 SNS에 과몰입하는 폐해가 심각하니, 3주 간 금욕 생활을 해보자는 것이다. 참여 여부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다. 단, 부모님의 동의 하에만 진행할 수 있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참가비는 당연히 없고, 감시자가 일일이 따라붙지 않는다. 이 재미없어 보이는 도전은 매우 높은 확률로 인기를 끈다. 

3주 간의 스마트폰 금욕 수행

별것 아닌 것 같은 도전에 아이들이 빠져들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전욕구 혹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시작은 수업이다. 국어 시간에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에 찬성하는가'를 주제로 두고 토론과 글쓰기를 시킨다.

학급 분위기나 구성원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찬성한다. 스마트폰을 수거하거나 전원을 끄게 하는 행위는 자신의 영혼을 빼앗기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제법 비장하다. 

▲ 과학 수업 시간에 태양계 자료를 찾아보거나, 실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 방과 후에 부모님과 연락할 수단이 필요하다. 아동 대상 사고가 많으므로 안전 상의 이유로 필수다.
▲ 스마트폰이 필수인 세상에서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제대로 된 사용 습관 형성이 더 중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담임인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아이들은 자신의 논리가 먹혀들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만약 학습과 보호자 소통 용도로만 휴대폰을 쓴다면 백 개라도 더 사주지요. 문제는 스마트폰 이용 기록을 보면 90% 이상이 게임, 유튜브, SNS이니까 그렇죠. 여러분들이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중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나요?"

학생들은 주먹을 꼭 쥐고 발끈한다. 어떤 아이는 매우 강하게 반발하며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며, 결코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는다"라고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다. 그럼 나는 결코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으니 실제적인 행동 증거를 보여달라고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행동 증거란 '3주 간의 스마트폰 금욕 수행'이다. 

3주는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렇지만 금욕 수행에 성공하면 꽤 쏠쏠한 선물과 함께 '무려 스마트폰을 끊은 전설적인 학생'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겠다고 하면 교섭은 끝이다. 남학생을 중심으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호기로움이 교실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가 된다. 
 
맹세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까지 들어간 '스마트폰 금욕 수행서'
 맹세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까지 들어간 '스마트폰 금욕 수행서'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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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서약서를 쓸게요! 선생님도 여기 사인해 주세요. 3주만 지키면 되죠?"

나는 올해도 이런 방식으로 우리 반 다섯 명으로부터(여기는 강원도 바닷가 마을 시골 학교다) 지극히 자발적으로 작성된 서약서를 받았다. 한 녀석은 기간을 3주가 아니라 3년으로 하겠다고 고집 피웠다. 나는 '대단히 멋진' 결심이지만 남들과 똑같이 3주로 해야 공정하다며 겨우 말렸다. 

"부모님 동의가 필수입니다. 전화나 문자는 통화는 가능하고요. 아예 전원을 꺼놓고 장롱에 넣은 뒤 3주 후에 찾아도 상관은 없어요."

서로 다른 필체로 작성된 서약서는 사뭇 진지했다. 맹세라는 단어를 쓰는가 한편, 인증이라는 낱말도 보였다. 굉장한 진지함에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아이들로서는 나름 심각한 결심인 것이다. 초등학생들의 힘준 미간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해 주고 싶어 진다. 

아빠들의 열성적인 반응

담임 입장에서도 우리 반 아이들이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 좋다. 우선 아이들이 잠을 푹 잔다. 새벽까지 게임하느라 다크 서클 달고 등교하는 녀석도 사라지고, 자극적인 행동 빈도도 줄어든다. 여학생 간의 트러블은 보통 SNS가 엮여있다. 얼굴을 마주 보고 하지 않는 채팅은 오해와 비난을 부른다. 스마트폰 디톡스 기간에는 자연스럽게 여학생 간 관계 폭력 문제가 가라앉는다. 

그렇지만 실상 우리 반의 스마트폰 금욕 도전은 허점투성이다. 유혹을 못 이긴 아이들이 부모님이나 친구, 형제의 스마트폰을 빌려 쓸 수 있다.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스마트 패드나 PC를 이용하여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에 접속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요즘에는 TV도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디지털 세계로 도피할 수 있다. 

담임은 그저 아이들과 부모님이 서명한 서약서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종이 쪼가리 하나 믿고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선물까지 주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약속이 전부이기에 도전은 진실해진다. 학급 아이들이 대다수 참여하고, 부모님이 이름을 반듯하게 적어낸 서약서는 놀랍게도 완수욕구를 자극한다. 

어차피 집에서도 아이들 '스마트폰 지도'는 고질적인 갈등거리다. 학부모는 학교에서 먼저 스마트폰 디톡스 같은 걸 시도하면 매우 반기는 편이다. 물이 들어온 김에 노를 젓는다고, 부모님들은 한 술 더 뜬다. 

"아빠가 말이야, 너 이번 도전 성공하면 십만 원 준다."

담임이 제공하는 일 만 원 상당의 학용품 선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격적인 제안이 덧붙여진다. 이상하게도 엄마들보다 아빠들 사이에서 더 열성적인 반응이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아빠들도 스마트폰이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끼고 사시는 구나하고 생각했다. 당장 담임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나부터 스마트폰이 없으면 곧잘 불안해지니까.

"선생님, 우리 아빠도 같이 스마트폰 안 하겠대요"
 
프로젝트 수업 시간에 사용한 데이터를 제외하면 3주 간 기타 용도로 사용한 기록은 없다.
 프로젝트 수업 시간에 사용한 데이터를 제외하면 3주 간 기타 용도로 사용한 기록은 없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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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와서 스마트폰을 끊어가는 자신을 자랑했다. 이제 겨우 일주일 참았는데 머리가 한결 맑아진 것 같다며 IQ가 10은 높아졌을 거라고 콧대를 세웠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스마트폰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하는 잘난 체는 얼만든지 받아 줄 용의가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빠도 같이 스마트폰 안 하겠대요."
"지금 내기하고 있어요."


스마트폰 금욕 도전은 어느새 가정의 도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 자신이 무려 스마트폰 사용을 참고 있으며 다른 게임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자부심에 가득 찬 어린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삶에서 디지털 기기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약속의 3주가 흘렀다. 아이들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어서 빨리 데이터 사용기록을 살펴보라고 했다. 나는 확인에 앞서 슬쩍 운을 띄웠다.

"집에서 컴퓨터로 몰래 게임 엄청 한 건 아니겠죠?"
"엄마, 아빠한테 맹세해서 집에서 할 수도 없어요. 다 보고 있거든요."


확신에 가득 찬 시선이 담임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눈동자가 한결 맑고 또렷했다. 활력이 흐르고, 어떤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생생한 무엇이 건강한 초등학생에게는 있었다. 

'맞아,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의 눈은 이런 빛깔이었지' 
 
스마트폰 프리 도전 성공 기념 선물
 스마트폰 프리 도전 성공 기념 선물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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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아이들을 살피며 운동장 주위를 살짝 걸었다. 그러면서 풍요의 시대가 우리 아이들에게서 빼앗아간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어떤 요소는 너무 풍족하기에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필요 이상으로 공급되는 음식과 편의는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 게임이나 흡연, SNS처럼 인간의 뇌에 작용하여 쾌락 시스템을 중독의 흐름으로 내모는 것들은 위험하다.

내가 직업 교사로서 지켜본 바, 아이들에게 실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물건 1위는 '스마트폰'이다. 마약은 초등학생에게 거의 닿지 않고, 청소년 흡연율도 5%가 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필수품으로 보급되어 있다. 특히 보호자가 관리하지 않는 스마트폰은 게임, 포르노, SNS, 유튜브, 사이버 폭력과 너무도 가깝다.

어른이 당장 술과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처럼 아이들도 이미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과 결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탄산음료와 합성첨가물로 범벅된 정크 푸드를 자주 주지 않는 것처럼 스마트폰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문방구에서 스마트폰 금욕 성공 선물을 사서 차에 싣고는 나도 다짐했다. 취침 전까지 전원을 켜지 않겠다고. 물론 나에게는 성공했다고 선물을 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눈빛을 단 몇 초라도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소중한 것들은 무언가를 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은 그 이름만큼이나 스마트하지 않다. 스마트폰을 저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아이들은 더 스마트해진다. 적어도 나는 이번 스마트폰 프리 도전에서 그렇게 느꼈다.

태그:#스마트폰, #중독, #초등학생, #도파민, #금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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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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