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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돌담길
 종묘 돌담길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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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석사 논문 대상지는 돈의동 쪽방촌이었다. 서울시에 남아 있는 5개의 쪽방촌 중 유일하게 개발 압력이 약했다. 개발 압력이 약했던 이유는 주민의 반대가 심해서도 아니고, 돈의동이 개발로 인한 잠재력이 없기 때문도 아니다. 

현장 연구를 수행한 어느날이었다. 대중교통 인파가 몰릴 시간대를 피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돈의동에서 혜화쪽으로 가기 위해 종묘 돌담길은 끼고 걸었다. 뚜벅뚜벅 걷다가 문득 돈의동 쪽방촌 개발 압력이 약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를 모신 사당이다. 1963년 사적 125호로 지정되었다. 종묘가 사당이라는 걸 모른다 할지라도, 절제된 건축 양식에서 사당이라는 장소성이 잘 드러난다.

맞배지붕은 가장 단순한 지붕 형태다. 인근 경복궁 근정전의 팔작지붕이 화려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종묘의 맞배지붕은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물이다. 19칸의 사당이 줄지어 있어 총길이가 101m에 이른다. 

바로 이 종묘라는 문화재 때문에 돈의동 쪽방촌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 압력이 약했던 것이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물 높이 규제
 
세운4구역 공사현장
 세운4구역 공사현장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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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MBC, 한국경제 등 언론사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문화재청장을 만나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서울시로부터 공식적인 협의를 요청 받은 사실이 없음을 밝혔다. 또한 "세운지구 건축높이 완화는 세계유산 종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지정문화재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문화재청장과 협의하여 조례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정해야 한다. 문화재청의 협조 없이는 높이 규제 조례도 손 볼 수 없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의 역사문화 보존지역은 100m 이내로 명시되어 있다. 종묘는 국가지정문화재이다. 역사문화 보존지역 내 건축물은 높이 규제가 있다. 문화재보호구역 경계지표면에서 문화재 높이 기준으로 앙각 27˚ 선 이내로 건축할 수 있다. 앙각 27˚는 거리 대 높이의 비율이 2대1에 가까운 각(수학 삼각비 tan27˚의 값이 0.5임)이다.
 
문화재보호구역 경계지표면에서 문화재높이 기준으로 앙각 27도 선 이내로 건축할 수 있다.
 문화재보호구역 경계지표면에서 문화재높이 기준으로 앙각 27도 선 이내로 건축할 수 있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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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종묘 문화재 경계면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건축 행위를 할 때, 건축물의 높이는 53.2m다. 100m의 1/2에 해당하는 50m에 종묘의 높이 3.2m를 더하면 건축 가능한 높이가 나온다. 건축법 상 1층 높이를 4m로 계산하면 13층 정도 된다.

서울시가 문화재 인근 건축물 높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이유

물론 서울시가 단순히 문화재 인근 몇몇 부지 개발 사업성만을 위해 높이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주장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지난해 4월 서울시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은 종묘에서부터 퇴계로 일대까지의 부지를 고밀∙복합 개발하고 녹지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도심 내 미래 산업을 진흥시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녹지를 통해 시민들의 쉼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서울시 녹지는 매우 부족한 편이기도 하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면적 대비 녹지 면적 비율이 뉴욕 맨해튼은 26.8%, 센트럴 런던은 14.6%이지만, 서울 사대문 안은 3.7%에 그친다. OECD 통계(2021)를 봐도 서울시 1인당 녹지비율이 낮은 편이다. 서울시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도심지 내 녹지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OECD 도시별 1인당 녹지 비율
 OECD 도시별 1인당 녹지 비율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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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지를 녹지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2000년에는 서울시 최초의 도심부 계획인 도심부 관리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에서 처음으로 북악산~종묘~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 조성을 제안했다.

이후 2007년 수립된 '도심재창조 종합계획'에서 네 개의 축을 소개하는데 그중 녹지문화축이 바로 현재 서울시가 발표한 녹지생태도심 부지다.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도심부를 연결하여 녹지 경관축을 확보하여 도심 생태를 창조하겠다는 도시계획이다. 

이 도시계획 틀에서 다시 문화재 인근 건축 높이 규제 완화 문제를 다시 보자. 서울시가 문화재 인근 건축 높이 규제 완화를 제안하고 협의하는 일련의 상황은 2007년 녹지문화축, 2022년의 녹지생태도심을 완성하기 위한 첫 걸음에 해당하는 셈이다.

종묘에서부터 퇴계로까지 해당하는 1km 중 좁게는 서울시 조례상 100m, 넓게는 문화재보호법상 500m가 규제로 걸쳐 있다. 공사가 문화재에 미칠 영향이 확실하다고 인정된다면 500m를 초과하여 범위를 정할 수 있다. 

이는 종묘 주변 지역의 개발은 문화재청의 협의 없이는 100m뿐만 아니라 500m, 그보다 더 큰 범위도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 인근 건축 높이 규제 완화 문제는 단순히 반경 몇 100m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애초에 2007년과 2022년에 그렸던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2006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은 강북도심을 뜯어고쳐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세운상가도 그중 하나였다. 정치적으로도 오세훈 시장의 오랜 숙원 사업이기도 한 것이다. 

'종묘~남산 조감도'는 지역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도시계획
 
녹지생태도심 조성 이미지 예시안
 녹지생태도심 조성 이미지 예시안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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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도시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시비평가 제인 제이콥스를 비롯해 많은 도시 연구자와 운동가들은 도시를 유기체로 비유한다.

지금의 도시계획은 어떤가?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여 생태축을 구성하여 서울의 녹지 생태를 되살리겠다는 철학은 일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1km 구간의 도심지 내 생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시계획으로 보인다.

개발 사업을 교조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영향평가는 개발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절차다. 개발 사업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마찬가지로 개발 사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미 연구계에서 사회영향평가, 사회환경영향평가, 지역사회영향평가 등을 논의한 바 있지만, 아직 제도적으로 안착되지는 못했다. 

조감도에는 그러한 노력이나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도시를 유기체로 인식하기보다는 하나의 물리적인 건축물로만 인식하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조감도에는 1km 안에 삶터를 일군 시민, 그리고 이곳을 공공공간으로 여기는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세운지구 개발을 위해 선진지로 답사를 다녀온 지역은 프랑스 파리시의 리브고슈(Rive Gauche)다. 리브고슈 프로젝트는 1991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약 30년 간 진행되고 있다.

브누와 에르네크(Benoit Ernek)는 프로젝트 개발 주체인 SEMAPA(파리도시개발공사)의 건축도시계획가다. 그는 2014년 연구 논문에서 리브고슈 사례를 통해 "개발자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되 주민과 사용자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리브고슈 프로젝트의 핵심인 것이다. 서울시가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발 사업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유산영향평가(HIA)'
 
을지로 내에 영업 중인 인쇄소
 을지로 내에 영업 중인 인쇄소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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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평가해야만 한다. 문화재청은 필요시 유산영향평가(Heritage Impact Assessments, 이하 HIA) 제도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와 동시에 이번 정부의 규제혁신 정책 기조에 따라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우려스럽다.

HIA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운영하는 제도로 잠재적 개발이 세계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제도다. 앞서 언급한 환경영향평가, 지역사회영향평가와 유사한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해남 대흥사와 공주 공산성의 HIA를 수행한 바 있지만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만 마련되어 있을 뿐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아직까진 효용성이 없는 상태다.

개발 사업 이전에 반드시 지역사회와 문화유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밀하게 평가해야만 한다. 그럴싸한 조감도 한 장으로 개발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개발 사업의 영향 평가를 면밀히 검토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도시계획적 안전망이 있었으면 좋겠다.

도시계획이 누군가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서 되겠는가. 도시계획은 도시와 시민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만 한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빠진 도시계획에 도시의 미래가 있겠는가.

* 참고자료
- 문화재청, 2020, 세계유산영향평가 도입방안 연구
- Ernek Benoit, 2014, Paris Rive Gauche Project: (Re)developping the City on the City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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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운상가, #종묘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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