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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잊고 지냈던 오랜 꿈이다
 글쓰기는 잊고 지냈던 오랜 꿈이다
ⓒ 허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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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회사 생활, 결혼 이야기, 육아 고민 등 여러 주제로 글을 쓰는 데 그중에는 나이 마흔에 접어들어 글을 쓰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마흔가짐이라 이름 붙였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저편에서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뿌리내리고, 자라기 시작한 건 아마도 중학교 졸업식 날 들었던 말 한마디였던 것 같다. "글 계속 써. 어떤 식으로든" 하며 내 두 손을 꼭 잡아주셨던 중2 때 국어 선생님.

국어 선생님은 남중에서 여중으로 전근 오셨는데 오빠의 중1 담임 선생님이시기도 했다. 성씨가 김, 이, 박처럼 흔하지 않았고, 얼굴도 닮은 구석이 있었는지 남중에서 전근 오신 선생님들은 네가 허아무개 동생이냐며 단번에 나를 알아보시곤 했다.

오빠는 전교 3등을 벗어나지 않는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나는 전교 30등 안팎을 오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오빠는 잘하는데 너는......"이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달고 중학교 3년을 보냈다. 오빠의 동생이라는 부담감과 오빠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로 속내가 시끄러운 나날들이었다. 더구나 사춘기 아닌가.

수학을 특히 못했다. 요즘 말로 '수포자'가 바로 나이다. 대신 국어 시간을 좋아했고 국어책 안에 든 소설이나 시를 특히 좋아했다. 가끔 글쓰기 숙제를 위해 제출한 했던 노트를 다른 친구들이 돌려받을 때  나는 받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런 날에는 교실로 들어오시는 선생님 손에 내 노트가 들려있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반 아이들 앞에서 내가 쓴 글을 읽어주셨다.

거기까지였다.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독후감으로 몇 번의 상을 받은 건 학생들 격려 차원이었을 테고, 중학교에서는 그마저도 없었다. 그런 내게 글을 계속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다소 의아했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흘려버렸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아서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들기만 했던 때였다. 내가 무얼 잘하는지 나 자신을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

나이 스물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고, 서른에 직업을 바꾸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굵직한 경험 이후에 맞이한 마흔이라서였는지 삶에 큰 변화가 없었다. 지금까지 인생길은 험난한 굴곡이었는데 갑자기 평평한 길을 만난 것 같았다. 먹고사는 게 중요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느라,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느라 그동안 아등바등 걷기만 해서 평지에서는 어떻게 걸음을 떼야할지 몰랐다. 일단 멈추고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흘려버린 줄 알았던 그 말, 글을 계속 쓰라는 짧은 말이 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싹을 틔웠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이십여 년이 걸렸다. 소란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차분하게 내려앉자 현재의 속마음이 보였다. 나는 글이 쓰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배우는 걸 좋아해서 이것저것 해 본 게 많다. 그런데 끝장을 보도록 매진해 본 건 없다. 어릴 때 배운 피아노가 그랬고, 어른이 되어 배운 영어가 그렇다. 아이를 낳고 오랜 염원이었던 첼로를 시작했지만 역시나 길게 가지 못했다. 돈이나 시간, 때론 둘 다가 문제가 되어 중도에 포기했는데 사실은 마음이 문제였다. 배움에 간절함이 없었다. 삶에 피아노나 영어, 첼로가 없어도 괜찮았다.

글쓰기도 얼마가지 않아 시들해지겠거니 했다. 네까짓게 무슨 글을 쓰냐는 내적 갈등도 있었다. 소리 없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글쓰기는 필요에 따른 배움이 아니라 자연에 따른 본능처럼 느껴졌다.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 글을 쓸 때 가슴이 뛰는 사람이었다. 비로소 내가 된 것 같았다.

2년이 다 되도록 글쓰기를 놓지 않고 있다. 쓸수록 재미있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시민기자 또한 글쓰기를 시작하고 이룬 성취이다. 지난 기사 '사십 대가 되고 같은 옷을 두 벌씩 사기 시작했어요'(https://omn.kr/23y9u)를 읽은 한 독자님께서 원고료로 응원을 해 주셨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지 고민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한 개인의 소망에 응답해 주신 것이리라. 난생 처음 받아본 독자님 격려는 감동 그 자체였다. 글쓰기를 계속해도 된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받은 원고료는 다시 기부를 했다. 어디선가 꿈을 키우고 있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즐거운 일,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일이면 된다. 책 한쪽 읽기일 수도, 그림 그리기일 수도, 달리기일 수도 있다. 지금 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을 살아내느라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다면, 잠깐 멈춰 숨을 고르며 나 자신이 하고픈, 되고픈 것에 귀를 기울여보자. 나를 찾는 시간은 잠시면 된다.

태그:#꿈은이루어진다, #마흔가짐, #글쓰기, #시민기자,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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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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