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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젠슨의 책 <유류품 이야기>
 로버트 젠슨의 책 <유류품 이야기>
ⓒ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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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예고 없이 닥친다. 그리고 희생자를 만들어 낸다. 그 희생자는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다.

남은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남긴 흔적을 찾기 위해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온다.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만약 재난의 규모가 크다면 슬픔과 탄식, 안타까움도 깊어진다.

로버트 젠슨의 책 <유류품 이야기>(한빛비즈 출간)는 대형 재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먼저 저자부터 알아보자. 저자 로버트 젠슨은 미 육군 장교 출신이며 세계 최고 재난수습기업 '캐니언 인터내셔널' 회장이자 공동 소유주다. 재난수습 업무만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로버트 젠슨을 통해 알았다.

그는 9.11테러·허리케인 카트리나·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2010년 아이티 대지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형 재난 현장을 누볐다. 그는 그 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하고, 시신과 유품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역할을 했다. 이 책 <유류품 이야기>는 저자의 자전적 고백이다.

그가 책 전체를 통해 줄곧 강조하는 메시지는 '죽음에 예의를 갖추라'는 당부다. 그게 남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끈이라면서.

"그들의 시신을 다룰 때는 잔인하게 갑자기 끝나버린 삶 속에서 그들이 못다 한 말과 못다 한 일이 부디 한으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는 동시에 재난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부분은 사람들도 이해한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응 자체가 또 하나의 사고가 되어선 안 된다. 대응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적절한 자원이 동원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사고 자체를 통제할 수 없지만 대응은 통제할 수 있다. 악화를 막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앞서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고백이라고 적었다. 세계사에 남을 재난의 현장에서 유류품을 수습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세월호 참사, 그리고 10.29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는 경험은 9년 간격으로 참사를 겪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대량 사망사건에 직접 영향을 받은 생존자는 고개를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외면하려고도 해보지만 결국에는 그에 따르는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한동안 - 어떤 사람은 이 한동안이 다른 사람보다 길다 - 이 사람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시스템이 이들을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이 시기가 얼마나 길고 힘들게 이어질지가 달라진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한다면 지금 정부 고위직, 특히 이태원 참사 수습 업무를 맡은 정부관료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었으면 한다. 왜냐면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재난 대응 시스템이 붕괴했음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할 대목은 우리 사회가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낸다.
 
"유족은 상실이 아니라 상실에 대응하는 방식에 화가 난다. 유족에게는 이렇게 화를 낼 권리가 있다. 대응 시스템에서 더 잘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기대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유족들은 그들을 돌보고, 이 사고를 잘 견디며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안심시켜 줄 사람을 기대한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데 실패한다."

"사회란 인간으로서 서 있는 자리의 문제"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퇴행의 징후가 보이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기점이 9년 전 세월호 참사부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든 대형 참사가 나면 정치권과 국가 시스템은 본능적으로 참사의 파장을 줄이려고 반응한다. 참사는 늘 정치적 책임론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정치권력, 더 나아가 국가 시스템 전반은 희생자를 폄훼하는 방식으로 참사에 대응했다. 9년 뒤 벌어진 10.29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존중 받지 않아도 좋을 죽음은 없다. 죽음을 폄훼하고 진영간 갈라치기로 죽음을 이용하면서 우리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문제의식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찌르고 들어온다.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산 자를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죽은 자와 그들의 물건을 매립지에  파묻는 쓰레기처럼 취급한다면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운명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사회란 결국 공동체, 유족, 혈통 등 우리가 인간으로서 서 있는 자리의 문제다.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를 독수리에게 뜯겨 먹히도록 놔두어도 상관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해버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능하는 데 중요한 무언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정부 담당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고 적었다. 9년을 주기로 참사를 반복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참사로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작지만, 강력한 단초가 이 책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뉴스M>, 그리고 제 개인 브런치에 동시 송고합니다.


유류품 이야기 - 재난 수습 전문가가 목격한 삶의 마지막 기록

로버트 젠슨 (지은이), 김성훈 (옮긴이), 한빛비즈(2022)


태그:#로버트 젠슨, #유류품 이야기,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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