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2 04:35최종 업데이트 23.06.0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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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계 각국의 노년층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노년의 삶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각국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노인의 경험을 사회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오마이뉴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전 세계 노년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편집자말]

부산 연제구 노인복지관에서 열린 어버이날 행사에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어르신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2023.5.8 ⓒ 연합뉴스

  
지구촌 모든 나라에서 문명화와 함께 기대수명과 평균수명이 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엔 예외적으로 급속히 성장한 경제 수준만큼 기대수명도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속도로 늘었다. 1960년 당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52.4세에 불과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튀르키예(50.7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0년 뒤 1970년에는 62.3세로 크게 늘었고, 1980년에는 65.4세, 1990년에는 71.9세를 기록했다. OECD가입 당시인 1996년만 해도 74.3세로 29개 회원국(현재는 38개국) 가운데 24번째였지만 2020년에는 83.6세를 기록해 일본, 호주에 이어 한국은 세 번째 장수국이 됐다. 
   

OECD 주요국들의 기대수명 추이(출처: 유엔 경제사회국 World Population Prospects 2022 자료 토대로 그래프 작성) ⓒ 유엔경제사회국

 
주목받는 지표 '건강수명'

기대수명이 느는 것은 인류의 희망이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다. 잘 먹고, 잘 누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꿈 또한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이다. 한마디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최근 주목받는 또 하나의 지표가 건강수명이다.


기대수명과 달리 건강수명이란 말 그대로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삶을 영유하는 기간을 말한다.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처음 제안한 지표인데, 2019년 자료에 따르면 같은 해 한국의 기대수명/건강수명은 83.7/73.1세였다. 즉 한국인의 평균은 생애 마지막 10.6년을 건강 문제로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 산다는 의미다.

질병 또는 쇠약으로 살아야 하는 마지막 10년은 앞서 비교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독일인은 10.8세, 프랑스인은 10.4세, 스웨덴인은 10.5세, 이탈리아인은 11.1세를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낸다. 같은 해 84.2세로 세계에서 가장 기대수명이 높은 일본도 건강수명은 74.1세로 비슷한 결과다.

특이한 것은 기대수명이 짧은 나라의 국민들도 역시 병약한 삶의 기간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같은 해 인도인들의 기대수명은 70.9세인데 건강수명은 60.2세, 가봉인은 각각 66.5세, 57.5세였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기대수명이 짧은 레소토인의 경우도 기대수명 50.7세에 건강수명 44.1세로 조사됐다.

결국 대부분의 인류는 기대수명의 길이와 관계 없이, 의료체계의 수준과 관계 없이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질병 또는 쇠약 속에 산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삶의 유지를 위한 의료복지 못지않게 병약한 삶의 기간 돌봄을 위한 의료복지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특별한 질병을 치료하거나 급격한 건강 악화에 개입해야 하는 의술의 경우와 달리 자연적으로 병약하고 쇠약해지는 심신 상태를 관리해야 하는 건강 돌봄에 있어서 간호술의 역할이 인류 복지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히 빠른 속도로 인구 감소, 노령화,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부 선진국의 경우 가족 단위의 노약자 돌봄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소득 복지 국가에 들어선 나라들은 의료뿐 아니라 돌봄까지 포함된 통합적 건강복지 체계를 오래전부터 다듬어 왔다.
  

일본 도쿄의 한 거리를 노인이 걷고 있다. 2023.5.2 ⓒ 연합뉴스

 
통합 돌봄(Integrated care) 개념이 최근 들어 한국에서 활발히 공론화되고 있지만 이미 20여 년 전부터 특히 유럽에서 다양한 관련 연구와 토론이 이어졌다. 현대 사회의 각 영역 간 관계가 다원적이고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위계적 또는 단선적 관리의 한계가 지적되고 따라서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돌봄 체계가 요구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통합 돌봄 체계는 필연적으로 지역 돌봄을 전제로 한다.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노령 인구를 예상할 때 기존의 의료시설이 충분한 돌봄 서비스를 감당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 차원에서도 지역 통합 돌봄의 효율성은 증명된다. 미국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증 환자의 경우도 상당 부분 가정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가정에서 적절한 돌봄이 사전에 이뤄진다면 많은 입원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국가가 감당해야 할 노인 의료비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2020년부터 3년여 전 세계 보건 체계를 뒤흔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은 시설 중심의 돌봄 체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시설 중심에서 대상 중심으로 돌봄 서비스의 축이 이동할 수 있음을 또는 시설과 가정에서의 돌봄이 혼용될 수 있음을 의도치 않게 보여준 것이다.

돌봄 대상자들의 선호도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거 2017년 실시된 국내 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약자의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했다. 이러한 성향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하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인의 76%, 네덜란드인의 83%가 병원보다는 가정에서 생을 마감하기 원한다고 대답했다. 다른 조사에서는 프랑스인의 85%가 자기 집에서 늙어가길 원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사전 예방, 관리, 관찰 차원의 지역통합 돌봄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국가도, 병원도, 가족도, 환자도 더 만족하게 될 보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 통합 돌봄 체계 필요성의 골자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보건 체제보다 간호 업무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이미 현재도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간호사 수는 부족한 편에 속한다(이 주제와 별개지만 의사 부족은 더 심각하다).

스위스, 노르웨이, 독일에서는 인구 천 명당 간호사 수가 각각 18명, 17.9명, 11.8명이다. 한국의 경우 천 명당 7.9명이다. 한국보다 인구 대비 간호사가 적은 OECD 회원국으로 리투아니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그리스, 멕시코가 뒤를 잇는다.

간호법 논쟁 아쉬워
  

간호사 ⓒ 보건의료노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국내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간호법 논쟁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의사직, 간호사직, 간호조무사직 등 직능 간 갈등 소지는 물론 조심스럽게 접근할 문제다. 하지만 보건 서비스의 역할 차원에서 '지역사회 간호' 문구가 쟁점이 되는 것은 통합적 돌봄 체계로 가는 흐름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문제다.

한 걸음 더 나가보면, 간호사의 단독 개업 가능성 쟁점 또한 자연스럽지 못하다. 현재 논쟁의 중심에는 의사 측의 '절대 반대'와 간호사 측의 '가능성 전무'가 맞서고 있다. 의사 측에서는 현재의 간호법 추진의 연장선에는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간호사 측은 간호법과 단독 개원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현행법상 간호사의 단독 개원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 간호업무 개업은 허용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병원 소속의 간호사와 별도로 상당수 간호사들은 독립적 간호 클리닉을 열어 가정은 물론 의료시설의 간호 업무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활동 영역은 의료행위가 아니다. 앞서 논의한 지역 돌봄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뿐이다.

혹여 간호사의 불법적 의료행위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에 단독 개업을 반대한다면, 현재 많은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간호사들의 불법적 의료행위부터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소위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이 의사들의 묵인하에 또는 지도하에 벌이고 있는 불법적 의료행위는 왜 문제 삼지 못할까? 의사의 묵인 또는 지도 하에 행해지는 불법은 괜찮다는 걸까? (지난 5월 3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다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됐지만, 결국 부결로 폐기됐다.) 

직능 간 공평한 역할 분담과 적절한 처우는 당연하고 엄격하게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한 공정한 중재도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직능들의 사회적 역할이 공정한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보건 업무 종사자들의 존재 이유가 보건복지의 이상적 지향에 걸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한 보상과 정당한 기여는 건강한 사회의 두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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