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01 16:46최종 업데이트 23.06.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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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시장이 있다. 노동력이 거래되는 노동시장이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특징적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두 개의 노동시장이 공존하고 그 사이에 커다란 차이와 벽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나는 고용이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시장이며, 다른 하나는 고용이 불안하고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이다.

두 개로 갈라진 노동시장의 견고함은 노동시장 간 차별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3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 임금의 43.7%에 불과했다.


차별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주된 원인으로 기업규모를 꼽는다. 이는 단순히 기업이 크고 작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소수 원청 기업의 경쟁력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기보다 원청 기업과 거래하며 사업을 영위한다. 사실상 원청이 정해주는 가격에 공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적은 중소기업이 높은 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또 다른 원인은 고용 형태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대신 기간제, 하청과 용역, 1인 도급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을 수십 년간 남용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의 임시직·비정규직 비율은 28.3%나 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8%)보다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역대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앞의 두 가지 원인을 제거하면 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갑자기 바꾸기도 어렵고,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줄이는 것도 기업의 반대가 극심해서 정부가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전통적인 대안은 간과되어 왔다. 바로 노사 간의 자율교섭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이루는 방식이다. 경기를 하려면 공정한 규정이 있어야 하듯이, 노사도 공정한 교섭을 통해 기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노동자의 생존권을 함께 이룰 수 있다.

50%의 임금과 0%의 사용자 책임
 

한국의 임시직·비정규직 비율은 28.3%에 이른다. OECD 평균(11.8%)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 셔터스톡

 
작은 사업장 노동자와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 노동자를 대변할 노동조합이 없거나 노동조합이 있어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용자와 교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우리 삶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제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 백화점·마트의 위탁 판매 및 시설관리·청소·경비 등 용역 노동자들이 있고, 택배원, 학습지·방과후 교사, 방문 판매원, 스포츠 강사, 미용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다. 음식배달원과 대리운전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도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하청은 법적 개념이 아니며 원청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원청 업무 중 일부를 도급받아 수행하기 때문에 법적 개념으로는 도급에 가깝다. 그러나 진짜 도급 회사는 많지 않고 대부분의 하청 회사는 인력을 채용하여 원청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용역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하청 업체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정도의 규모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일할 때 쓰는 장비조차도 원청 소유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에 가까운 것이다. 하청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하청·용역·파견 노동자는 노동자 신분으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라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 신분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최대 근로시간, 휴게시간, 연월차 휴가 등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원청 회사가 하청·용역·파견 노동 등 간접노동을 선호하고 심지어 근로계약이 아닌 위·수탁 계약을 체결해 노동력을 활용하는 이유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원·하청의 시간당 임금 총액은 원청 기업을 100으로 할 때 하청 업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원청의 52.8%에 불과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구나 원청 사업주는 법적으로 사용자 의무를 갖지도 않는다. 하청·용역·도급 노동자의 법적 사용자는 하청 업체 사업주이며, 파견 노동자는 파견 사업자가 사용자이고, 특수고용 노동자는 사용자가 없다. 원청은 계약의 파기와 단가를 결정할 수 있어 업체의 생존은 물론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를 무려 50% 가까이 절감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사용자로서의 의무도 갖지 않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간접고용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다.

노동 3권의 유린과 늘어나는 차별
 

5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등을 촉구하는 기습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원청 기업을 상대로 시장 임금과 지불능력을 고려하여 공정한 용역 단가와 임금 책정 등을 요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먼저 원청 기업은 하청 기업이 대형화하거나 전문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청 회사의 교섭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청 회사의 대부분은 많아 봐야 50여 명 내외이다.

원청 기업은 하청 회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것도 경계한다. 하청 회사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원청 회사는 하청 회사와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노조 결성을 원천 차단하기 일쑤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더라도 하청 노조의 파업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은 3% 내외에 머물러 있고 그만큼 처우개선은 더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용자와 교섭하여 노동자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권리이지만 현실에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은 계약 해지와 해고를 의미하므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간접고용 노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안 간접고용 노동자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고용 형태 공시자료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소속 외 근로자(대부분이 하청노동) 수는 2022년 93만 5천 명 수준이다. 여기에 300인 이하 사업장의 용역·호출 노동자의 수가 거의 110만 명이 되므로 그 수를 합치면 200만 명이 넘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수는 이미 2018년 220만 명이 넘었고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공공부문과 건설업 등을 제외하더라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수는 420만 명 이상이다. 이는 2022년 임금 노동자 2172만 명의 19.3%에 이르는 인원이고 비정규직 812만 명의 52%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간접고용이 늘어나지만 차별이 개선되지 않으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도 원청이 공동 사용자 책임
   

민주노총 배달플랫폼지부 배달노동자 300여 명이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배달료 거리 깎기 중단' 촉구 집회 및 오토바이 행진을 하고 있다. 2022.5,2 ⓒ 이희훈

 
늘어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차별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사 당사자가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교섭구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 권한이 있는 원청 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동자 간의 불평등한 교섭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원청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여 사용자로서 져야 할 정당한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 부여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이미 하청노동자의 산업안전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에서조차 원청에 공동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안전과 노동 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주라면 사용자 의무를 갖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청 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조의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삶을 바꾸려면 노조법 개정을 꼭 이뤄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데는 초기업 교섭의 활성화도 도움이 된다. 초기업 교섭은 말 그대로 기업별 교섭이 아닌 여러 사업장의 공동교섭, 산업 차원의 교섭을 의미한다.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업종 단위로 교섭을 하게 되므로 사용자의 지불능력을 떠나 동일 가치의 일을 하면 동일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교섭 방식이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간 임금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기업 교섭보다 초기업 교섭을 통해 사용자의 부담을 동등하게 만들고 노동자 간 차별도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초기업 교섭이 활성화되면 노조를 만들어도 교섭이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초기업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사업주도 임금을 가지고 회사 간 경쟁하지 않아도 되니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노동자 천국 되어 기업 망한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에 기여한다. 단체협약이란 노사 간 교섭을 통해 결정하는 집단적인 계약으로 보통 근로기준법보다 강한 보호 조항을 가진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은 협약의 적용 대상을 노조 조합원만이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이니 당연히 취약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여 이중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단체협약 효력확장은 부분적, 단계적으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초기업 노조의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이라면 초기업 교섭 단체협약을 해당 사업장 노동자 모두에 적용하는 방식 등으로 효력을 확장할 수 있다. 또한 사내하청 기업이나 자회사의 노동자에게도 복지 등의 조항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원청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지게 하고 초기업 교섭이 활성화되면 노동자 천국이 되어 기업이 다 망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만 실은 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은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고 초기업 교섭과 단체협약 효력 확장도 사용자의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고용관계가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경제가 위기일수록 어려움을 분담해야 한다. 일하는 국민의 안정된 삶이 없다면 기업과 국가도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산율 세계 최저, 40세 미만 자살률 세계 1위, 노인 빈곤율 OECD 1위 국가를 벗어나려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
 

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정흥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흥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강의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등에 관해 연구합니다. 주요 저서로 <오줌인형 잡기> 등 6편의 편저가 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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