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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뵙는 50대 중반의 지인 한 분이 자기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바쁘게 살아오며 제대로 의미를 새기지 못했던 일화들을 정리해 보고 싶으시단다. 중년이란 중간 지점에서 한 번쯤 삶을 점검해 보는 참신한 방법으로 보였다. 희로애락의 지난 일들을 회상만 하다 보면 아쉽거나 뿌듯한 감정이 일다가도 대개는 곧 휘발되어 번듯하게 남는 건 없으니 말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 하면 무엇이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쓰면 될 터이다. 혹시, 쓰고는 싶지만 어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게 여겨지는 분이 있다면 가이드가 되어 줄 책이 있다. 2018년에 출간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책 표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책 표지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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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생의 저자는 일본의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1974년 <문예춘추>에 당시 수상 다나카의 비자금과 정경유착을 폭로하는 글을 발표해 정권을 실각시킨 것으로 유명한 분이다. 그는 1983년 철저한 취재와 탁월한 분석으로 새로운 저널리즘을 확립한 공로로 31회 기쿠치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애서가로도 잘 알려진 그의 주요 저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죽음은 두렵지 않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등이 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이 책은 저자가 맡아 가르쳤던 한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릿쿄대학은 2008년 시니어 세대를 위해 마련한 독특한 교육과정인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을 개설하였는데, 저자는 이곳에서 '자기 역사를 쓰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였다. 이 책은 정리된 강의 내용과 학생들이 직접 작성 제출한 자기 역사의 사례들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책은 자기 역사를 기록하는 의의를 짚어보는 1장과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에 관한 2장,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다룬 3장, 이렇게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억을 소환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 외에도 시대별 인간관계 클러스터 맵, 중요 에피소드를 기록한 수첩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저자는 글 첫머리가 막연할 때는 우선 부모님 내지 가계와 관련한 일반적인 이야기로 기술하기를 추천한다. 보다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연표 만들기를 권한다. 이때 살아온 생애를 자신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시대를 구분하되 동시대에 일어났던 사건과 상황들도 한 축으로 함께 기입할 것을 권한다. 준비 작업으로 앨범, 일기, 편지, 연하장, 쓴 글, 사진파일, 업무파일 등 과거 자료들을 찾아볼 것도 제안한다. 
 
   책에 제시된 자기 역사 연표의 예
  책에 제시된 자기 역사 연표의 예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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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학생들이 직접 쓴 자기 역사들을 사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각 사례들을 읽는 재미가 크다. 개인의 생활사 기록에 시대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한국인으로서 잘 접하지 못했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중 일본 본토의 서민 생활사 기록이 눈에 띈다. 전쟁 당시 헤어져 있던 부부간에 나눈 편지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는데, 숯과 설탕 같은 물자 배급, 공습 훈련, 전쟁 지원을 위한 지속적인 헌납 등 당시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를 중심으로 다룬 사례도 여러 개를 보여준다. 이 사례들 또한 일본 경제 부흥 시기 각 분야의 산업발달 과정이 녹아 있어 눈길을 끈다.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육아휴직을 쟁취하기 위해 앞장섰던 여성의 기록이나 싱글맘으로 두 자녀를 키워내며 깨우친 삶의 지혜가 담긴 사례도 있다. 이런 생생한 사례들은 독자로 하여금 실제로 자기 역사를 써 보도록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지점으로 읽힌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 역사 쓰기는 두 가지의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삶의 첫 번째 무대를 면밀히 다시 들여다 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해 보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라는 점, 또한 과거지사를 거듭 반추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인생은 무엇이었는가?'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며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례자들이 직접 쓴 글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스러워졌다. 누가 읽지 않아도 좋다. 읽을 필요도 없다. 한 인간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280쪽)
"과거에 일어난 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일을 생각하는 나 자신의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 일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도 했다...(중략) 지금의 내 관점에서 과거를 다시 보고 어떻게 시각이 달라져 왔는지를 포함해서 작성하는 일이 자기 역사이다."(112쪽)

자기 역사 쓰기는 결국 자신의 삶을 미화하거나 후손에게 남겨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주요 개념설명을 한 번에 파고들지 못하는 점이다. 

연표나 인간관계 클러스터 맵의 개념을 뒷부분의 사례와 연계 설명하느라 단어는 미리 나왔으면서도 자세히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뒷부분으로 미루다 보니 보기에 따라 일목요연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누구보다 이 책은 퇴직 전후의 50,60대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데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해 듣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 미리미리 묻고 기록해 두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한다. 

기록을 위한 큰 틀의 힌트를 얻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혹시 글은 쓰고 싶은데 주제가 고민이신 분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삶을 기록하는 방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은이), 이언숙 (옮긴이), 바다출판사(2018)


태그:#자기 역사 쓰기, #중년, #다치바나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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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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