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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위원회 지원금 챙기고, 위원회 요직차지... 비즈니스가 된 과거사" 기사
 지난 24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위원회 지원금 챙기고, 위원회 요직차지... 비즈니스가 된 과거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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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자기 내가 후원하고 있는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이 지역에 있는 작은 시민단체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있었을까. 연일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보니 갑자기 시민모임 위상이 높아지기라도 한 것일까. 팩트 체크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기사들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일개 후원회원이지만 여러 사람이 시민모임을 함부로 말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펜을 든다.

우리 부부는 시민모임의 회원이다. 한 달에 1만 원씩의 회비를 내고 있다. 전신이었던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창립한 2009년 3월부터 후원했으니 세월이 꽤 흘렀다. 당시 광주광역시 중학교 역사교사로 근무하던 나는 시민모임 결성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몰랐던 근로정신대 피해 문제에 대해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꺼이 회원이 되었다.

시민모임은 광주에서 결성된 작은 시민단체이다. 상근 활동가라야 대표 1명, 사무처장 1명 등 고작 2명에 불과하다. 이 단체는 기업과 정부의 어떤 후원도 없이 지금까지 오롯이 회비로 살림살이를 꾸려가고 있다.

초창기에는 제대로 된 사무실조차 없었다. 이 단체 저 단체, 신세를 지면서 6년 동안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도 싸고 괜찮은 사무실을 찾아 옮기느라 여러 번 이사도 했다. 지금이야 후원회원이 늘어 연 1억 원 남짓 회비가 걷히고 있는 모양이지만, 초창기에는 몇몇 뜻있는 사람의 십시일반으로 운영됐다.

한 달 살림살이라야 100만 원도 안 되는 말 그대로 그냥 '모임'이었다. 없는 형편에 실비를 제외하면 상근자에 대한 활동비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던 이국언 현 이사장의 월급은 몇 년 동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살림살이 월 100만 원 수준의 시민모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규모와는 상관없이 너무도 큰일을 해왔다.

'전범기업 미쓰비시' 전후 65년 만에 협상 테이블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회원들이  2010년 6월 17일 오전 광주 서구 미쓰비시 광주전시장 앞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범국민 10만 서명운동' 용지를 쌓아놓고 일본 항의 방문 계획을 밝히고 있다.  시민모임 항의방문단은 23일 주주총회가 열리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직접 찾아 10만 명 서명용지를 전달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회원들이 2010년 6월 17일 오전 광주 서구 미쓰비시 광주전시장 앞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범국민 10만 서명운동' 용지를 쌓아놓고 일본 항의 방문 계획을 밝히고 있다. 시민모임 항의방문단은 23일 주주총회가 열리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직접 찾아 10만 명 서명용지를 전달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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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임 초기에는 주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데 집중했다. 그 하나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자동차 광주 전시장 앞에서 펼친 릴레이 '1인 시위'였다. 점심시간을 할애해 이심전심 자발적으로 나선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20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끈질기게 이어진 시민의 발걸음에 결국, 미쓰비시자동차는 전시장을 철수했다. 또한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는 항의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다. 13만 명이 넘는 국민의 서명이 이어졌고,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서 미쓰비시에 전달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당시 무려 조선인 10만여 명을 강제 동원한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이 해방 후 최초로 강제동원 피해자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2010년 11월, 시민모임 결성 1년 반 만의 성과였다. 해방 이후 정부도 해내지 못한 그 협상을 이끌어낸 단체가 바로 '시민모임'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는 시민모임 앞에 겸손하고 미안해야 한다.

생소한 '근로정신대 문제' 전국화의 주역

막상 협상은 시작됐으나 정작 협상단이 일본을 오갈 항공료 한 푼 없던 시절이었다. 어디서든 그 비용을 빌려야 했다. 마침 그때 나는 얼마간의 돈이 수중에 있었다. 집주인 사정에 전셋집을 갑자기 옮기게 되면서 생긴 여윳돈이었다. 방법이 딱히 없던 시민모임 처지에 적지 않은 금액을 빌려줬고, 한동안 그 돈으로 일본 협상을 다녀왔다.

그것도 몇 달 가지 못했고, 이번에도 국민들이 나섰다. 미쓰비시 협상 기금 마련을 위한 '10만 희망 릴레이'라는 길거리 모금운동으로 비용을 충당해야 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문화일보는 이런 사정을 알고나 있을까. 정부는 시민모임이 모진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주어진 책무를 다해 온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그때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가려 '근로정신대' 문제는 한국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시민모임은 우리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오히려 일본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현해탄을 넘나들며 힘겹게 투쟁하던 근로정신대 문제를 전국화 시킨 주역이다. 이를 통해 일제 피해자 문제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임을 인식시켰다.

역사정의 실현, 피해자 인권 회복 
  
한국미쓰비시중공업 금요시위 1주년 기자회견이 2010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한국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진행됐다. 회견을 마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에 항의차 올라갔으나 문을 걸어 잠그고 대응하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당시 자원봉사자였던 배주영 전 시민모임 사무차장이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한국미쓰비시중공업 금요시위 1주년 기자회견이 2010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한국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진행됐다. 회견을 마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에 항의차 올라갔으나 문을 걸어 잠그고 대응하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당시 자원봉사자였던 배주영 전 시민모임 사무차장이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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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으로 확장해, 근로정신대 문제 뿐 아니라 일제에 피해를 입은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그리고 그 길에 뜻을 같이하는 여러 후원회원과 여전히 고난의 행군을 이끄는 이국언 이사장이 있다. '1만 원'이라는 나의 작은 돈을 이렇게 값어치 있게 써주는 시민모임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야말로 가성비가 짱이다.

지금은 포항으로 근무지를 옮겨 시민모임에 예전처럼 많은 신경을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시민모임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권은 가장 우선의 가치이다', '역사는 늘 현재이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내가 역사 수업을 하는데 늘 지표가 된다.

최근 이런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시민모임에 대해 함부로 말을 내뱉고 있다. 시민모임의 회비 운영을 비판하는 한 기자는 결성 취지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자의 기본은 팩트 체크일텐데, 시민모임의 결성 목적이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과 역사정의 실현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시민모임은 한국과 일본에서의 소송 지원,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협상 및 투쟁, 청소년들의 교육 활동, 지방자치단체들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조례 제정 촉구, 국회 및 정부를 상대로 한 활동, 시민들과 함께하는 각종 서명, 집회, 토론회, 구술채록, 교양자료 발간, 강제동원 현장 답사 등 초지일관 한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비용을 모두 평범한 시민들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다. 워낙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굵직한 현안이 많다 보니 재정 또한 넉넉할 리 없다.

여당과 보수언론 제대로 알고 말을 보태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해 "피해자를 위한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목적이 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난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해 "피해자를 위한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목적이 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난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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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임이 사리사욕을 채운다고 주장했던 여당의 지도부에도 묻고 싶다. 이런 많은 일을 하고, 사무실을 운영하며, 두 사람의 생계 급여를 주는 데도 빠듯한데, 대체 이 살림에서 사리사욕을 채울 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국회의원으로서 대단한 힘을 가진 당신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왔나. '근로정신대피해자 지원법'이 여당의 반대로 1년 9개월이 지나도록 상임위 안건 상정조차 안 되는 상황에서, 여당 의원인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도 하는데, 당신은 1만 원짜리 후원이라도 하고 말을 하는가.

그리고 특별히 언론인들에게 당부한다. 비판의 기본은 사실에 대한 근거이다. 자랑스러운 시민모임에 대해 모욕하고, 역사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회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하시라. 그리고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제대로 알아보고, 기사를 쓰고 말을 보태시라. 

대부분의 언론인들과 의원들은 나만큼 시민모임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참에 1만 원짜리 후원회원이라도 가입해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나서 말을 보태는 것이 어떠신가.

- 배주영(포항 환호여자중학교 역사교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결성 당시 초대 사무차장)

[관련기사]

약정 딴지걸고, 지원금 문제삼고... 강제징용시민단체 공격하는 언론들(https://omn.kr/243u3)
"정부보조금 한푼 없이 달려온 14년, 공격 받을 일인가"(https://omn.kr/243cm)
'시민단체가 돈 요구' 조선일보 보도 따져보니(https://omn.kr/242z0)
 

태그:#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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