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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결성한 '태룡계'참석을 위해 '화려해서 통 안입던 옷'을 입고 나서시는 구순 어머니
▲ 두시간여 준비 끝에 외출 준비를 마치신 구순의 어머니  1972년 결성한 '태룡계'참석을 위해 '화려해서 통 안입던 옷'을 입고 나서시는 구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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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어머니와 51년째 이어온 고향 모임에 참석하다

"너무 화려해서 통 안 입던 옷인데 그럼 한번 입어볼까?" 지난 20일 제51회 태룡계(胎龍契)에 가기 위해 장장 2시간에 걸친 외출 준비를 끝내며 필자의 구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옷이란 옷을 다 꺼내 입어가며 고르는 어머니를 뵈며 이번 외출을 얼마나 고대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80년에 갑론을박해가먀 정한 '계칙과 계비 내역 등이 꼼꼼이 정리된 계장부들
▲ 연륜이 몯어나는 태룡계의 "걔장부"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80년에 갑론을박해가먀 정한 '계칙과 계비 내역 등이 꼼꼼이 정리된 계장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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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룡계(관련 기사 : 4년 재활끝에 고향 친구 모임에 참석하다)는 필자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72년에 어머니들이 쌀을 추렴해 동갑내기 남자 25명으로 구성한 계(契)다.

한마을에서 자란 동갑내기 계원들은 경향 각지에 살면서도 태룡계를 매개로 51년째 끈끈한 연대를 이어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한세월을 살아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다. 그간 유명을 달리한 친구, 탈퇴한 친구로 19명의 계원을 유지하고 있다.

환갑을 목전에 둔 제51회 정기총회는 생존하신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서 열자는 필자의 제안으로 고향인 탑정호반 일원에서 열려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서는 길이다.

"당신 부부가 부모에게 지극정성이어서 장수하시더니 효부상 탄 며느리와 아들의 효행으로 100세까지 사신다. 자리 건사한 후로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떻게 오나? 없는 살림에 혼자 아이들 키우느라 무진 고생했는데 건강은 어떤지"라며 오늘 만날 분들에 대해 일일이 말씀하시고도 "아들 삼형제가 모두 고향 모임을 하는데, 오늘 처음 함께 간다"라고 형님에 여동생까지 통화를 30여 분 이동하는 동안 해낼 정도로 구순의 내 어머니는 마냥 즐거워하셨다. 
 
 육군대학 이전으로 잘 가꾸어진 탑정호반을 구순 어머니들과 짧은 산책을 하며 기념촬영도 했다.
▲ 탑정호반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구순의 어머니들과 고향친구들  육군대학 이전으로 잘 가꾸어진 탑정호반을 구순 어머니들과 짧은 산책을 하며 기념촬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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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回甲)을 앞둔 나이에 '요즘 크는 애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봄 나들이 나서는 소녀처럼 긴 준비 끝에 나섰음에도 일찍 도착한 필자네와 역시 96세의 어머니외 함께 온 서기광(59, 경기도 안산시)네가 몇몇 친구와 함께 짧게 탑정호변을 산책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그런 중 대전에서 온 이병연(59, 대전시 공무원)이 인사를 드리니 필자의 어머니가 "우릴 이렇게 초대해줘 고맙긴 한데 부모님이 안 계신 친구들에게 영 미안햐!"라 말씀하시자 병연 친구가 내 어머니를 왈칵 끌어안아 필자를 뭉클하게 했다.
 
  누구나 부모님 앞에선 영원한 '애덜'일 수 밖에 없음을 일깨워준 유인순(96, 기광이 어머니)님과 기광이
▲ 회갑을 앞에 한 우리를 말 한마디로 "요즘 크는 애덜"로 만드신 기광이 어머니와 기광이  누구나 부모님 앞에선 영원한 '애덜'일 수 밖에 없음을 일깨워준 유인순(96, 기광이 어머니)님과 기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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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는 대로 연신 인사하는 친구들에게 유인순(96, 기광이 어머니)이 무심결에 "한창 크는 애덜은 당최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라고 말해 모두를 한바탕 웃게 했다.

경제개발 초기에 성장기를 맞은 필자는 '한창 크는 애들'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오남매는 보통이던 때, 한 형제라도 세 살 층하만 나면 체격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으니 필자는 경제개발의 첫 수혜 세대라 할 것이다.

기광이 어머니가 무심결에 한 이 말로 회갑을 앞둔 우리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에서 '한창 크는 애덜'로 마음껏 일박이일을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누구나 부모 앞에선 영원히 "요즘 크는 애덜"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가족 외식에도 참석 안하신다는 백수의 아버지와 자리한 승이와 팔순에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아버지와 자리한 연범친구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 미래의 자신 모습을 한 아버지와 나란히 자리한 연범, 승이 친구.  가족 외식에도 참석 안하신다는 백수의 아버지와 자리한 승이와 팔순에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아버지와 자리한 연범친구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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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지팡이 삼은 경식 어머니와 백수(白壽)의 승이아버지도 함께 한 태룡계

고령의 부모님 다섯 분을 한 자리에 모시는 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최고령자인 서종선(99, 서승이 아버지)는 평소 가족 외식에도 일절 참여 안 한다고 해 준비과정부터 큰 부담이었는데 효부상을 수상했던 며느리의 간곡한 설득으로 참여한다고 미리 연락을 해온 터였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도희례(88, 김경식 어머니)님은 문제없다는 경식이의 호언장담에도 필자에겐 큰 걱정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의자만 이용할 수 있다기에 좌식 방을 준비했으나 그 방은 휠체어 이용을 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와병중인 어머니를 지극정성 돌보는 경식이는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어머니와 손으 마주잡고 걸음마 가르치는 아이처럼 구령을 맞춰가며 30여미터 거리를 이동해 입장하고 있다.
▲ 아들을 지팡이 삼고 입장하시는 경식이 어머니  와병중인 어머니를 지극정성 돌보는 경식이는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어머니와 손으 마주잡고 걸음마 가르치는 아이처럼 구령을 맞춰가며 30여미터 거리를 이동해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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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려속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경식이는 먼저 동선과 좌석을 확인 후 마주 선 채 손을 마주 잡고 걸음마를 가르치는 아빠처럼 하나 구령에 맞춰 어머니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보행이 불편한 어머니는 아들과 맞잡은 손과 얼굴로 심리적 안정을 얻어 안정된 걷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걸이가 불안할 때 발에서 시선을 못 떼고 걸어야만 했던 필자의 눈에 참으로 유용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선 걸을 수 없어 아들을 지팡이 삼아 참석한 경식 어머니 손에는 분홍색 메니큐어가 곱게 칠해져 있었다.
▲ 분홍색 메니큐어가 곱게 칠해진 경식어머니 손  혼자선 걸을 수 없어 아들을 지팡이 삼아 참석한 경식 어머니 손에는 분홍색 메니큐어가 곱게 칠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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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자의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 그간의 걱정이 일순간에 사라진 필자가 "아들을 지팡이 삼으니 천리도 가시겠네요"라 말하자 "암만, 효자 아덜이 내 지팡이지"라고 답하는 경식 어머니의 손가락엔 연분홍의 매니큐어가 곱게 칠해져 있었다.

형제가 격주로 교대해가며 간병인과 함께 와병 중인 어머니를 지극정성 돌보고 있는 경식친구를 지팡이 삼아 어머니 도희례(88, 가야곡면 육곡리)의 입장을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함께하는 51회 태룡계'는 시작되었다.

미래의 자신 모습을 한 부모님, 제 부모와 진배없을 필자 어머니의 다음의 '한 말씀'으로 생존한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은퇴를 앞둔 나이에 생존하고 계신 부모님들 모시고 함께 한 제 51회 태룡계는 유년을 함께한 고향친구들만의 아름다운 축제였다.
▲ 회갑을 앞에한 나이에 생존한 부모님 다섯분을 모신 제51회 태룡계   각자의; 자리에서 은퇴를 앞둔 나이에 생존하고 계신 부모님들 모시고 함께 한 제 51회 태룡계는 유년을 함께한 고향친구들만의 아름다운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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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대구, 수원에서 늦게까지 일하고도 참석하는 오늘의 열성으로 태룡계를 잘 가꾸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고 아들 삼형제 중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아들 모임에 참석해서 너무나 고맙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20여년 준비한 하프 마라톤, 내년 퇴직전에 이루자는 약속으로 마무리 
 
 꿈같은 부모님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회갑을 앞에 한 '요즘 크는 애덜'친구들과 일박한 펜션에서 바라본 탑정호
▲ 뷰 맛집으로 유명한 팬션에서 바라본 탑정호반  꿈같은 부모님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회갑을 앞에 한 '요즘 크는 애덜'친구들과 일박한 펜션에서 바라본 탑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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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해둔 숙소는 인근 마을 사람이 운영하는 곳으로 시설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뷰 맛집으로 정평이 나 있는 집이다. 고향 마을에 안주를 주문해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후배가 운영하는 집인지라 덤으로 손질한 딸기를 깨끗하게 손질해다 줘 고향의 인심까지 맛볼 수 있었다.

창 너머 잔잔한 물결, 적당한 취기, 유년을 함께한 고향 친구들과 늦도록 정담을 나누었다.

11월에 딸의 혼사를 알린 윤석필(59, 천안 모 경찰서 중견간부)이 북악산 중턱에 마련한 아지트에서의 7월 중 번개모임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고 오랫동안 혼자 생활하다가 늦 사랑에 빠진 최용호(59, 평택시)의 '그녀'에 대한 이야기도 한동안 우리의 술안주로 올랐다..
  
  마지막까지 함께한 친구들이 헤어지기 전 한 자리에 모였다
▲ 회갑을 앞에한 나이에 가진 51회 태룡계를 마치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친구들이 헤어지기 전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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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밤이 깊어가며 하나둘 잠자리에 들자 필자가 객지에서 고등학교를 함께 다녀 각별한 최용호(58, 평택시)에게 '손으로 국토종단'과 만 18년째 이어지고 있는 필자의 재활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종단 이틀째 숙박지가 그가 사는 평택이어서 종단팀을 방문한 적도 있고 재활할 때 신으라며 유명 브랜드 신발을 선물했던 적도 있는 친구다. 내 인생의 1/3을 온전히 바쳐 준비한 하프마라톤에 함께 출전하기로 오래전에 약속한 친구 중 하나기도 해 그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내심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어린 나이에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서로 함께 생활했으며 장애를 얻고 재활하는 전 과정을 함께 했기에 다음의 짧은 이야기로 내 확고한 뜻을 전달하고 굳은 악수 후 잠자리에 들었다.

"2024년 6월 퇴직 전에 마라톤 할 테니 너도 슬슬 준비해!"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도 게재합니다.


태그:#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 #서치식, #뇌병변2급장애자, #하프마라톤완주, #전주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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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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