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 5월 26일 오후 6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의 엄단 지시에 따라 올해 마약 수사 특진 인원을 50명으로 대폭 늘린 경찰이 마구잡이식 마약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드러났다.
도심 텃밭에서 관상·약재용 양귀비를 극소량 재배하는 80~90대 노인까지 무더기로 마약사범으로 붙잡아 조사 중인 것으로 확인된 것.
경찰 내부에서 조차 "양귀비 1~2주를 키우는 80~90대 노인이 무슨 마약사범이냐" "정권에, 그리고 경찰 지휘부에 보여주기 위한 단속 말고 무엇이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흘러나온다.
26일 <오마이뉴스>는 광주광역시경찰청 산하 경찰서의 마약류관리법위반(양귀비 재배) 피의자 검거 보고서 4장을 입수했다. 5월 12일자, 16일자, 18일자, 19일자 검거 보고서다.
형사과 강력팀 투입... 텃밭에서 양귀비 키운 노인들 검거
4장의 검거보고서에 기록된 피의자는 모두 13명. 도심 텃밭 또는 마당 화분에 약용 또는 관상용으로 양귀비를 키우거나, 저절로 자라난 양귀비를 관상용으로 지켜본 이들이다. 순찰을 돌던 경찰은 양귀비를 발견하고는 이웃 탐문 등을 거쳐 노인들을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 일선 경찰서의 형사과 강력팀은 보고서 1장(5월 18일자 보고서)에서 6명(60~80대 노인)을 붙잡았다고 밝혔는데, 이들이 양귀비 적발 장소로 지목한 곳은 '광주 농성동 화단' '남구 대촌동 텃밭' '나주 남평읍 주거지 화단' 등으로 기록돼 있다. 양귀비 재배 노인 적발을 위해 강력사건을 취급하는 강력팀 형사들이 투입된 것이다.
이와 관련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양귀비 단속은 주로 일선 지구대,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이 했으며, 강력팀 형사들은 지구대 사건을 이첩받아 처리한 것"이라며 "강력팀 형사들이 양귀비 재배 현장을 직접 적발한 사례는 10건 중 1-2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검거보고서에서 붙잡힌 이들을 연령대 별로 보면 60대 4명, 70대 3명, 80대 5명, 90대 1명이다. 단 한 명(사기미수)을 제외하고는 마약은 물론 여타의 범죄 전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 이들이다.
개인별 재배 규모는 1~9주 5명, 10~50주 7명, 92주 1명이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 키웠다, 텃밭에서 저절로 자라난 식물이다, 소화불량에 효험이 있어 몇 주 키운 것뿐'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광주 양동에 사는 90대 노인 박아무개씨와 80대 노인 이아무개씨는 각각 양귀비 2주를 키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텃밭에 저절로 자라난 꽃이 예뻐서 키웠을 뿐"이라고 했다.
검거 후 '아편용인지, 관상용인지' 국과수에 성분 분석 의뢰
경찰에 따르면 양귀비는 아편(마약)의 원료가 되는 품종과 단순 관상용으로 나뉜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들 노인을 일단 마약류 관리법위반 피의자로 불구속 입건하고, 양귀비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절차를 거치겠다고 검거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이같은 마약 수사를 두고는 경찰 내부에서 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주경찰청 소속 간부 A씨는 "신종 마약이 등장하면서 요즘엔 아편을 사용하거나 유통하는 마약사범 자체가 희귀해졌는데, 양귀비를 소량 재배하는 노인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며 "수사 방식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간부경찰 B씨는 "내부 지침에 의해 양귀비 적발 규모에 따라 승진점수가 부여되긴 한다. 근데 저 정도 가지고 특진을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결국 경찰 지휘부에 '우리도 열심히 단속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 한 경찰관은 "정권 관심사안 아니냐. 강력사범을 붙잡고 예방하는데 주력해야 할 형사팀, 강력팀 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양귀비를 비롯한 마약 단속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마약 사범은 분명 강력하게 단속해야 하지만, 일부 수사의 경우 경찰력 낭비가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